코미 (211.♡.64.83)
2025년 2월 5일 AM 08:38 · 수정됨(17:04)

무용총 수렵도에 나오는 저렇게 뒤돌아 활쏘기입니다.
고대에는 등자나 안장이 없었고, 있어도 지금에 비해서는 조잡했기에
유목민족이 아니고서야 단지 말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뒤돌아 쏘는 파르티안 샷은 농경민족들에겐 꿈과 같은 기술이었죠.
적에게 창이나 칼 들고 돌진해 적을 공격한 후 도망치는 척을 하며 유인하고
그 때 적들이 걸려들면 이렇게 뒤돌아 활 쏘고
안 걸려들면 다시 창이나 칼을 뽑아 돌격하는 것은 농경민족들에겐 지옥같은 전술이었죠.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 수백명의 무사들이 저러면 파괴력이 10배의 병력을 동원한 것과 같거든요.
고구려는 이렇게 유목민의 기술과 농경민의 기술을 전부 구사하다 보니
중국 입장에서는 정말 위협적이면서도 거슬리는 상대였죠.
저 고구려의 기마술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까지 이어지고 발전해 갑니다.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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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망꼬망
25.02.05 · 61.♡.120.114
- 앙
앙게이
25.02.05 · 211.♡.186.1
그림에 등자도 있고 안장도 있는데요? -
코코미
→ 앙게이 작성자
25.02.05 · 211.♡.64.83
고대에는 등자나 안장이 없었고, 있어도 지금에 비해서는 조잡했기에
라고요... -
달달려옹
→ 코미
25.02.05 · 118.♡.10.36
[https://s3.damoang.net/data/editor/2502/comment_1995115044_ClPN8Tjg_aab8e5dac6d6f7292fcb51ebdfb073f98a777a2c.jpeg]
고대에 등자 안장이 없고 있어도 조잡하다는 하다는건 유럽적인 인식입니다. 그 이전 고대시대부터 북방 기마민족들은 다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
태태드창식이
→ 달려옹
25.02.05 · 211.♡.169.15
등자는 중국에서 최초 만들어진것 아닌가요? -
두두루미235
→ 태드창식이
25.02.05 · 222.♡.127.189
지금의 중국이라는 나라를 국경으로 본다면 너무 넓은 범위인데, 아마 유목민족인 몽골 거란 여진 이렇게 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뭐, 자료를 통해서 보면, 북방 유목민족이 처음 만들었다는 설로 모용 선비 유적에서 등자가 출토되어 이게 기원지로 이야기 되고는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당시 선비족이 등자를 갖고 있었다면, 고구려의 개마무사도 철갑을 사용한 중갑기병이기 때문에 마찬가지 고구려에서도 이전부터 등자를 사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태태드창식이
→ 두루미235
25.02.05 · 211.♡.169.15
말씀하신것처럼 중국이라는 의미가 너무 크네요 ㅎ
지금의 중국 국경이라고 생각하면 될듯 하구요.
말씀하신것처럼 유목민족에서 최초 등자를 사용했다고 봤던걸로 기억합니다. -
HHTTR
→ 두루미235
25.02.05 · 121.♡.146.90
https://ko.wikipedia.org/wiki/%EB%93%B1%EC%9E%90
등자는 bc 4c 에 모용족이 쓰던 것을 발굴했는데, 중국에는 2-3c 정도, 유럽에는 8c 에나 전파되었다고 하니
의외로 전파속도가 굉장히 느린 발명이었네요.
고구려는 북망유목민족하고 접촉이 많았던데다 무용총 벽화는 5c 무덤 추정이니 충분히 등자를 쓰고 있던 시절이기도 하겠습니다. -
두두루미235
→ 태드창식이
25.02.05 · 222.♡.127.189
@HTTR
제생각은 당시 BC 4세기전이면 당시는 고조선 시대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영역이 고조선 영역일 가능이 매우크고요. 고조선 멸망후 생긴 선비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등자의 최초는 고조선이라는 것이죠.
관련 내용은 "https://www.joongang.co.kr/article/5182936" 고조선과 선비족의 관계 내용입니다. -
SsCloud
25.02.05 · 115.♡.243.51
등자와 안장 덕분에 저 기술 발휘가 가능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진짜 농경민족들에겐 사기적인 기술입니다.
보통은 말 위에서 타는것만도 버거운데 활까지 쏘고
거기다 뒤돌아서 쏜다?...유럽이 몽고에 발렸던 이유중 에 하나도 저 파르티안 기사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