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공화국이 제정으로 바뀌게 된 이유
FV4030

Lv.1 FV4030 (210.♡.27.130)

2025년 2월 14일 PM 05:46 · 수정됨(21:59)

조회 1,231 공감 0

로마공화국은 사실상 원로원 중심 체제였습니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가문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했고, 가문을 빛내려는 젊은 입문자는 낮은 행정관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더 높은 고관으로 가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일종의 연공서열이었죠.

하지만, 로마의 젊은이들이 손쉽게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전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로마가 마주한 막강한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연공서열식으로 된 장군의 지휘로는 어림없다는 것을 알게 된 원로원은 자신들의 원칙을 깨고, 젊고 재능 있는 사람을 지휘관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한니발과 상대한 그 유명한 스키피오도 그런 인물이었죠.

그러다 보니, 재능있고 젊은 야심가들이 원로원에서 빠르게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고, 거기다가 그들 밑에서 병사로 참전하여 삶을 바꿔보려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사실상 카이사르가 로마의 최정점에 가면서 제정은 시작되었고, 이를 결국 완성한 것은 아우구스투스죠. 하지만, 아무리 황제라도 원로원을 무시하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사실상 로마공화정은 귀족정이었죠. 이런 걸 보면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되더군요.

댓글 (7)

  • moxx

    moxx Lv.1

    25.02.14 · 122.♡.208.3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대한니발 전쟁을 지휘하게 된건 이전에 지휘했던 장군들이 줄줄이 패하고 더 이상 가용한 장군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자원하고 나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말씀처럼 당시 일반적으로 군단 지휘권(임페리움)을 가질 수 있는 경력의 나이대에 못 미치긴 했지만 어쨌든 원로원에서 절차를 만들어서 법적 정당성을 만들어주고 지휘권을 부여했었고요. 정작 포에니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원로원의 지속적인 견제와 탄핵으로 말년에 그리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로마군단에 대한 지휘권 부여는 다시 기존 절차대로 이행이 되었죠. 제정으로 가게 된 계기가 된 마리우스와 술라 집권 시기의 혼란과는 시기상 간격이 있습니다.
  • FV4030

    FV4030 Lv.1 → moxx 작성자

    25.02.14 · 210.♡.27.130

    스키피오 때는 견제가 되었죠. 로마는 가문 구조가 젊은 친구들이 야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고 전쟁도 환영하던 나라라 카이사르 같은 인물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봅니다. 말씀대로 마리우스-술라를 거치고 하나하나 견제망이 걷혀지면서 제정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이미 조짐은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원로원도 그건 알았지만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죠.
  • 트라팔가야

    트라팔가야 Lv.1

    25.02.14 · 58.♡.217.6

    마리우스의 개혁도 원인 중 하나 아닌가요.
    (빈민의 군입대, 군대의 사병화와 장군 개인에 대한 충성 체제)
  • FV4030

    FV4030 Lv.1 → 트라팔가야 작성자

    25.02.14 · 210.♡.27.130

    맞습니다. 로마 가문 구조의 야심 뽐뿌질, 계속된 전쟁이 이에 기름을 부었고, 전쟁에 이기려면 군제 개혁도 해야했고, 원로원이 세워둔 장애물들은 걷혀질 수밖에 없었겠죠.
  • 원두콩

    원두콩 Lv.1

    25.02.14 · 211.♡.14.7

    공화정을 무너뜨리려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루투스로 인해 왕정이 저지되었다면
    공화정 영웅으로 후대에 길이길이 칭송 되었겠지만
    왕정이 들어서는 바람에 승자의 기록에 의해 만고의 역적으로 묘사되었죠.
  • FV4030

    FV4030 Lv.1 → 원두콩 작성자

    25.02.14 · 210.♡.27.130

    그러나 우리에겐 글래디에이터라는 명작 영화가 생겼... 쿨럭. 그렇다고 합니다.
  • 은비령

    은비령 Lv.1

    25.02.14 · 175.♡.75.77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뀐 큰 이유중의 하나는 너무나 거대해진 제국의 크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로원의 의결을 거치는 동안 먼 지방의 이슈들이 묻히거나 의결이 무의미 해지는 경우가 많아서라고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로마의 가도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고요.
    그걸 절감한 카이사르가 제정의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