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의 지도성이 끝나야 우리나라 완전히 민주화된다...
홍성아재

Lv.1 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2월 16일 PM 09:47 · 수정됨(02. 17. 13:33)

조회 2,330 공감 0

예전에 35년 전 감옥에 있을 때 얘기입니다.

저는 1층 독방에 살았고 당시 최대 민중운동조직 대외협력국장을 맡으셨던 분이 3층에 계셨어요.

이 분이 저녁에 통방할 때 그러시더군요.

"나도 서울대 다니다 잘리고 다른 대학을 나왔지만, 모든 시민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서울대 출신이 지도해야 한다는 사고는 잘못된 거야. 서울대 나온 친구들 그 아집에 운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

오랫동안 민중운동을 해오신 운동가이자 전직 신부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셨어요. 

"서울대 출신의 지도성이 없어지기 전에는 우리나라 완전히 민주화되기 힘들겠어."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사노맹을 시작으로 인민노련, 삼민동맹, 노동계급 활동가들이 대거 구속이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만들겠다고 회합하다가 다 잡혀온 겁니다. 예전에 한 번 적었듯이 그때 조직 대표급들이 만난 회의 기록이 고스란히 안기부에 넘어가 다들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말해줬던 그 조직 중 한 조직의 중앙위원이었던 형이 그러시더군요.

"다 대학(서울대) 다닐 때부터 알던 사람들이어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필명을 쓰고, 신분을 감추려고 해도 다 알게 된다"고. "그래서 더이상 비합법 조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이죠.

옛날 운동조직들, PD는 말할 것도 없고 NL들도 서울대가 지도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도 생긴 거죠.


서울대 출신이 똑똑한 건 맞아요. 학습을 해도 이해력도 빠르고, 외국어를 빨리 익혀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서 나온 이론서적을 빨리 수입하는데 앞장서서 남들보다 앞서기도 했죠. 당시에는 전위조직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똑똑한 사람들이 전위조직을 이끌며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 민주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국가권력이 안기부나 경찰, 검찰을 통해 탄압하던 시절이니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울대 출신이 여기저기 소위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운동을 주도하고 지도하는 건 맞지만, 그게 나중에 거의 패밀리 수준이 되어 버리고, 아집이 되어버리면 주변 활동가들이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위에서 말한 선생님 말씀이 그런 점을 지적한 거죠.

꼭 서울대만 그런 건 아닙니다. 고려대 출신도 수준 차는 있지만 어느 정도 마찬가지겠죠. 소위 말하는 SKY의 운동에서의 점유율이란 게 있었으니까요(NL의 경기동부그룹이 외국어대 용인캠 주도로 운영되는 건 극히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전위조직의 시대가 아닙니다. 똑똑한 이론가가 아니라 올바른 정책을 취합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정책을 선별해 실천할 수 있는 소위 막스 베버가 얘기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가 필요합니다. 정치를 대중에게 이해시키고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비판 받을 수 있는 사람, 대중에게 검증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론은 똑똑한 사람들이 정책연구를 통해 만들어 가면 됩니다. 꼭 우두머리일 필요는 없죠.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서울대 출신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가 지금 정치를 이끌어 갈 수 있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런 활동을 안한 사람은 자격이 없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구요. 제가 보기엔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다른 유형의 정치인이 필요한데도 시대착오적으로 집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사고, 아집 벗어던질 때가 되지 않았나요?


댓글 (9)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25.02.16 · 58.♡.198.9

    도덕 지능이 떠오르는 시기 같아요
  • 홍성아재

    홍성아재 Lv.1 → 매일두유 작성자

    25.02.16 · 112.♡.175.67

    네 그러네요.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홍성아재

    25.02.16 · 58.♡.198.9

    능력(?)이 좋아도 세상을 욕망과 고통으로 물들이면 고통을 대량생산 하는건 능력일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 Gesserit

    Gesserit Lv.1

    25.02.16 · 219.♡.191.66

    그래도 옛날 서울대 출신들은 중산층 가정도 많았고 서민들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지금 명문대는 강남 특정 지역 & 상류층 가정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출신 특목고로 묶여 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지나친 사교육으로 특정 계층 및 구역 안에서 단절되어 자란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이 사회지도층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솔직히 미래가 더 걱정입니다. 안농운 같은 부류의 인물이 더욱 양산될테니까요.
  • 홍성아재

    홍성아재 Lv.1 → Gesserit 작성자

    25.02.16 · 112.♡.175.67

    저는 서울대 출신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런저런 일하다가 나이 먹어 복학해보니 옛날 지방 출신이 가득했던 교정에 강남 출신 아이들이 빼곡하더군요. 학교 후문 쪽에는 이런 애들이 끌고 온 차가 산 위아래로 가득하고. 후배들이 경험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라서 모교라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 래인맨 Lv.1

    25.02.16 · 61.♡.208.123

    과거 진보-민주 진영이 일반인들의 예상보다 훨씬 학벌 주의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 Blizz

    Blizz Lv.1

    25.02.17 · 108.♡.134.4

    사람들이 지도자로 안 뽑으면 그만 아닌가요? 서울대 출신만 뽑아야 힌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 SOForce

    SOForce Lv.1 → Blizz

    25.02.17 · 61.♡.118.45

    그래서 마지막 문단에 써놓은 것처럼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서울대 출신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 지적하는 거겠죠.
  • M

    mountpath Lv.1

    25.02.17 · 61.♡.70.248

    엘리트가 세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운동권에도 있었고, 그것이 가져온 폐해가 적지 않았지요
    다만 독재세력과의 싸움으로 그것을 수면위로 떠올려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던 것 뿐이지요
    공부잘한다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에도 여전이 공부잘하는 엘리트에 대한 환상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