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평화의 몇가지 예들
눈가리고아앙

Lv.1 눈가리고아앙 (61.♡.210.14)

2025년 2월 19일 PM 01:30 · 수정됨(02. 20. 03:55)

조회 1,276 공감 0

우러전 관련해서 조금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부분이 있어 끄적여봅니다.


1. 3차 포에니 전쟁

포에니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지중해패권을 둘러싼 대전쟁입니다

칸나이 전투로 유명한 한니발이 자마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한 2차 포에니전쟁 결과

로마가 카르타고에 제시한 가혹한 강화조약중 '무허가 교전금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동맹국 누미디아가 카르타고를 자꾸 군사적으로 침범하고 건드리자 

자위적으로 행한 군사행동을 빌미로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에게 선전포고를 떄립니다

아마도 '가장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관점에서 카르타고는 굴욕적으로 사과와 함께 강화를 요청했고

로마는 무기몰수등의 조건을 내밉니다

전쟁을 두려워한 카르타고는 이에 따랐으나 그 결과는 로마의 수도 추방령이었고

지배층 상당수가 도망친 카르타고 수도에서 3년여의 격렬한 수비전을 벌이던 카르타고 시민들은 전쟁중 사망하거나 패전후 모두 노예가 되고 그 땅은 폐허이하의 땅이 되어버립니다


2.  오사카의 겨울/여름 전투


전국시대 말기 히데요시 사후 일본은 도요토미 계 vs 도쿠가와 계로 갈라지게 되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요토미 계열의 이시다 미츠나리가 패하고 전국대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잡게 됩니다

그러나 에도(현 도쿄)가 근거지인 이에야스의 영향력은 교토 서부나 규슈까지는 그렇게 공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정복할 군사적, 물적 역량은 부족했기 때문에 꽤 오랜시간 힘을 기르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서군측의 상황을 보면 히데요시와 요도도노(오다 노부나가의 조카딸)의 아들이 있었으나 어렸기 때문에 차차를 위시하는 반 섭정구조로 도요토미 가문의 세력은 컸지만 결속력과 지배력은 다소 부족했습니다

몇몇 영주들이 내부에서 경쟁하며 서로 파먹는 일도 발생할 정도로요

그렇게 십수년 두 세력의 차이가 벌어지다가 결국 1614년 두 차례에 걸친 오사카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오사카성의 방여력에 확실한 승부를 내지 못하던 도쿠가와는 서양대포를 이용해서 일종의 허장성세를 펼치는데

이 와중에 운나쁘게도 차차의 주변에 있던 시녀들이 눈먼 대포알때문에 폭사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성이 동요하자 이에야스는 강화조건을 거는데

그중 하나가 전술적으로 도저히 넘기 힘들었던 오사카 성의 '해자'를 메우고 '외성'을 허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 '나쁜 평화'가 작동하여 

적지않은 가신과 지휘관들이 결사항전만이 살길이라 간언했음에도

많은 낭인들과 군병유지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문제와 보신주의에 빠진 차차는

해자와 외성의 해체를 받아들이고 도쿠가와는 재빨리 실행해버립니다

그 후 안되겠다싶어 다시 해자를 파고 외성을 세우려 하지만

기다렸던 도쿠가와는 해자도 외성도 없는 오사카성을 3배의 병력으로 들이치고

도요토미 가문은 멸망하고 도쿠가와의 에도막부가 열리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수명연장의 지푸라기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잘못된 선택들의 누적으로 결국 피할 수 없게된 비극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나쁜 평화가 패전의 서막이었던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진즉에 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미 평화상태가 아니었던 것이죠


어느 한쪽을 두둔하거나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만

우리에게 러우전쟁의 의미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정하는 것 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그동안의 발자취를 조금 긴 호흡으로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양측에서 벌인 실수를 피할 수 있느냐에 집중되면 좋겠습니다


ps. 전문가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정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21)

  • kmaster

    kmaster Lv.1

    25.02.19 · 1.♡.134.156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실패는 독립 후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었죠 그게 가장 큰 실책이고 힘을 포기하고 돈과 평화를 선택 한 결과가 결국은 돈도 잃고 평화도 잃고 영토도 잃어버리게 된거죠
    차라리 그때 힘들 더라도 핵은 가지고 있어야 했어요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결국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그 어떤 이유로든 힘을 포기하면 결국 평화도 잃어버린다는 것 적을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적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는 줄 수 있는 정도의 군사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외교 ? 그딴거 결국 힘없으면 공염불일 뿐이죠
  • 눈가리고아앙

    눈가리고아앙 Lv.1 → kmaster 작성자

    25.02.19 · 61.♡.210.14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핵포기가 아마도 결정적이었다고요
    그런데 또 해당상황에서는 결정하기 힘든 국민들의 마음도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봅니다
    결국은 리더십문제로 귀결되려나요?
  • kmaster

    kmaster Lv.1 → 눈가리고아앙

    25.02.19 · 1.♡.134.156

    리더쉽 문제도 있지만 당시 유럽쪽의 평화 분위기에 취해서 꾸준히 군사력을 유지 하지 못한게 문제죠
    그걸 누구 탓 하기도 힘든게 지금 유럽 국가들 군사력 상황만 봐도 아직 까지 평화 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그런면에서는 폴란드가 그나마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봅니다
    평화는 누구에게 의지해서 지킬 수 없는 것이고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자는 보호받을 가치도 없는 법인데 유럽쪽이 나토라 쓰고 미국이라 읽는 곳에 너무 많이 의지 했죠 나토 이외에 구 소련 출신 국가들도 뒷배도 없으면서 덩달아 같이 취했으니 더 문제였고요 거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오래된 원한이 있지요
  • Blizz

    Blizz Lv.1 → kmaster

    25.02.20 · 108.♡.134.4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유럽의 무임 승차가 결국 푸틴의 야욕에 오케이 사인을 준 거죠.
  • 프레이얼스터 Lv.1 → kmaster

    25.02.19 · 118.♡.25.79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한 건 핵무기만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사용하거나 발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모두 러시아에 있어서 쓸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는 그냥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서도 재래식 전력이 우리보다 떨어지는 이유가 핵무기 구입과 유지비용으로 국방비의 30%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쓸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에게 의미가 없는 일이라서 포기한 겁니다.
  • kmaster

    kmaster Lv.1 → 프레이얼스터

    25.02.19 · 1.♡.134.156

    유지가 불가능 했더라도 저렇게 포기하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유지하는데 우크라이나가 유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프레이얼스터 Lv.1 → kmaster

    25.02.19 · 118.♡.25.79

    북한은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코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러시아만 가지고 있었고, 우크라이나에게는 없었습니다.
    사용코드가 없으면 핵무기는 그냥 핵물질이 담긴 용기일 뿐입니다.
  • 글렌1 Lv.1

    25.02.19 · 211.♡.192.63

    역사에 이프는 없지만 우크라는 나토 가입 시도만 안했어도
    전쟁은 안 났을거라 봅니다.
    정치적으로 지지율 떨어지면서 반러 감정으로 지지율 올리려다 보니 그런게 아닐까 싶지만요
  • kmaster

    kmaster Lv.1 → 글렌1

    25.02.19 · 1.♡.134.156

    나토가입은 젤렌스키가 아니라 그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일이고 그 원인은 과거 친러 성향 대통령의 부정 부패와 러시아의 수탈에 가까운 횡포와 동부쪽 러시아계 주민들과 서부쪽 우크라인들과의 갈등 때문이죠
    동부쪽이 도시지역에 공업지역이라 부가 몰려 있고 동부쪽 러시아계 자본가들에 의한 서부쪽 우크라계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경제적 불평등이 컸어요 거기에 이후 반러 성향 우크라계가 집권한 후에는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탈락시키는등 역으로 동부 러시아계를 차별한 역사가 있고요 상당히 오래된 갈등과 원한입니다
  • 프레이얼스터 Lv.1 → 글렌1

    25.02.19 · 118.♡.25.79

    나토가입은 2019년 포로셴코 대통령 시절에 의회에서 헌법을 개정해 넣은 겁니다.
    나토가입이 문제였으면 포로셴코 때 전쟁을 했었어야죠.
    3년이 지난 후에 이걸 빌미로 전쟁을 한다는 건 그냥 명분용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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