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앙근 (106.♡.214.34)
2025년 2월 21일 PM 05:13 · 수정됨(18:25)




“열해를 갈고 나니 칼날은 푸르다 마는 쓸 곳을 모르겠다. 춥다 한들 봄 추위니 그 추위 며칠이랴. 자지 않고 생각하면 긴 밤만 더 기니라. 푸른 날이 쓸데없으니 칼아, 나는 너를 위해 우노라.”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중국 뤼순 형무소에서 순국하기 전 남긴 것으로 알려진 절명 시다.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단재 기념사업회)는 21일 충북 청주시 낭성면 귀래리 단재 묘소·영당에서 단재 선생 추모식을 했다. 이날은 89년 전 단재 선생이 순국한 날이다. 이날 추모식에는 황운하 단재 기념사업회 상임대표, 류윤걸 광복회 충북지부장, 부윤경 홍범도 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윤건영 충북교육감과 시민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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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선생은 대전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서 나고 자라다 청주 낭성 귀래리로 이사해 유년을 보냈다. 대전엔 복원된 생가, 동상 등이 있으며, 청주엔 사당·묘소·기념관 등이 있다. 대전과 청주엔 동시에 ‘단재로’가 있다. 청주에선 단재초가 개교한 데 이어, 내년 3월 대안형 공립고 단재고가 문을 연다.
단재 선생은 일제 강점기 언론인, 역사학자, 독립운동가 등으로 나라 안팎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제에 항거한 지식인이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는데, 예관 신규식(1879~1922), 경부 신백우(1889~1962) 등과 더불어 청주 동쪽 마을 세 천재라는 뜻의 ‘산동삼재’로 불렸다. 이들은 고령 신씨 집성촌에서 자랐으며, 독립운동에 힘썼다.
단재 선생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권업신문’, ‘신대한’ 등에서 언론인으로, ‘조선상고사’를 쓴 역사학자로, 한문 잡지 ‘천고’를 낸 문학인으로,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강령인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한 독립운동가·혁명가로 살다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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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마음을 울리는 시네요. 멋지십니다.
대전출신인데 생가가 있는줄몰랐네요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위키펌>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B1%84%ED%98%B8
신채호(申采浩)는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으로서 한말 애국계몽운동과 일제 하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했으며, 한국사 연구를 통해 민족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신채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말 『대한매일신보』에 사론을 싣고, 『소년』에 「국사사론」을 연재했습니다.
최영, 이순신, 을지문덕 등 국난을 극복한 민족영웅에 관한 전기를 썼습니다.
『조선사(朝鮮史), (朝鮮上古史)』 총론을 완성했습니다.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를 발간했습니다.
유교적 사대주의 사관과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는 열쇠를 “독사신론”과 “조선상고사” 등 많은 사론에서 제시했습니다.
신채호는 민족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체계적 논리를 제공하며, 새로운 역사해석의 새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또한, 인간 해방이라는 이념하에 식민지 조국의 현실과 자본주의, 국가주의 등 여러 억압과 착취의 현실을 고민해 왔습니다.
사후
신채호의 유족들은 1919년 이승만이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일을 놓고 이승만을 ‘매국노’라며 격한 반발을 했다.
1962년 -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됨.
2009년 3월 1일 - “왜놈이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스스로 무국적자가 된 지 97년 만에 가족등록부에 이름이 올라감으로써 국적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 박자혜와 아직도 혼인관계가 등재될 수 있는 법령이 없어서 방치되어 있으며 그의 후손들은 사생아로 기록되어 있다.
옥고와 최후
그는 1929년 5월, 신채호는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등의 혐의로 10년형의 언도를 받고 만주국 펑톈 성 다롄 부 뤼순((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커우구))에 있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1935년 그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형무소 당국은 “보호자가 있으면 출감시키겠다”고 했으나, 그의 보증인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신채호는 가석방을 거절하였다. 1936년 2월 18일, 감옥 독방에서 뇌일혈로 쓰러졌으나 방치되었고, 사흘 뒤인 2월 21일 감방 안에서 혼자 있을 때에 사망하였다. 뇌일혈 및 동상, 영양실조, 고문 후유증 등의 합병증이었다. 향년이 57세였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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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XIT
25.02.21 · 211.♡.14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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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eoPD
25.02.21 · 101.♡.140.15
제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선조 할아버지!
저도 '호'자 돌림인것이 정말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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