슝슝 (223.♡.208.2)
2025년 2월 22일 AM 12:52 · 수정됨(10. 29. 12:44)
금요일 퇴근길에 몸은 천근만근이라 지하철을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근처로 가족으로 보이는 세 명이 다가왔습니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그런데 그 여성은 뭔가 부산스러웠습니다. 말투와 행동을 보니 발달장애가 있는 듯했고, 부모님은 조용히 그녀를 다독이며 진정시키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했고, 저와 그 가족은 같은 칸에 올랐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 가족과 거리를 멀리 두고 서 있었는데, 마침 제 앞자리에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도 행동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할머니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짜증을 내고, 정거장에 정차할 때마다 좌석을 쿵쿵 차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할머니는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퇴근 시간 지하철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색해졌습니다.
그때, 멀리 앉아 있던 20대 여성, 그러니까 저와 함께 승차했던, 발달장애가 있어 보이는 그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순간 긴장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여성은 조용히 호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더니 아이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거 먹어요."
어눌한 말투였습니다. 그렇게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고 그 여성은 바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리를 피우던 아이가 조용해졌습니다. 할머니도, 지하철 안의 승객들도, 그리고 저도 순간 멍해졌습니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그 여성을 바라봤던 제 시선이 부끄러웠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제가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과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그저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짧은 순간이 제 시선을 바꿔 버렸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말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그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꿔 놓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었습니다.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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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명곤
25.02.22 · 211.♡.81.251
- 슝
슝슝
→ 북명곤 작성자
25.02.22 · 211.♡.198.75
정말 많이 놀랐어요. 발달장애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 여성분께서 그런 판단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충격이었죠. 그런데 이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어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달까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됐어요. 앞으로 지하철에서 떼쓰는 아이를 보면 속으로 짜증만 낼 게 아니라, 나도 주머니에 사탕 몇 개쯤 넣어 다니는 여유를 가져보자는 거요. 그런 사소한 배려가 언젠가 또 다른 따뜻한 순간을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요. -
RRanomA
25.02.22 · 125.♡.92.52
저도 마치 제 멍청한 대가리를 어머니께서 '정신차려' 하면서 때린 듯한 느낌을 받은 글입니다. -
나나그네
25.02.22 · 182.♡.66.93
신이 천사를 보내주신다면
높지 않고
빛나지 않고
똑똑하지 않고
빼어나지 아니한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그런 모습으로 보내주실 것입니다. -
북북명곤
→ 나그네
25.02.22 · 123.♡.220.53
공감이 많이 됩니다 ㅎㅎ -
브브래드베리
25.02.22 · 211.♡.75.40
여성분과 아이,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
VVagabonds
25.02.22 · 1.♡.15.50
아름다운 명작 단편소설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현실에서 만난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근사하네요. 고맙습니다. - 슝
슝슝
→ Vagabonds 작성자
25.02.22 · 223.♡.208.2
문득 예전에 방송된 '양심 냉장고'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오버랩되었습니다.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는 새벽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에서 유일하게 멈춰 선 차량, 그리고 그 주인공이 장애인 부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 방송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많이 바뀌었었죠. -
CCityCat
25.02.22 · 119.♡.242.156
와..... 이거 뭔가 저도 띵합니다 -
Nnice05
25.02.22 · 211.♡.81.222
그저......
감사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갑자기 또 다른 각성이 된것같은...
나이 헛 먹었네요. 저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