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사이드쵱 (223.♡.219.231)
2025년 2월 22일 PM 12:32 · 수정됨(14:03)
경어체가 아님에 양해부탁드리며 투병기는 이제 마치겠습니다. 앞으로는 중소기업 탐방에 대해 글을 써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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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로 인해 눈에 문제가 생겼다.
눈안에 신생혈관이 자라나면서 망막을 잡아당기는 있는병이고 자칫 실명힐수 있다고 했다.
레이저치료실로 들어갔다.
카메라 후래쉬를 터트리는거처럼 내눈에다가 엄청 지져댔다. 신생혈관을 태우는거라 하셨다.
당시 양산부산대병원에 안과에 교수가 없다고 말해
전원해야한다고 해서 부산대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그렇게 부산대병원으로 가서 8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수술을 6번정도를 했다. 전신마취도 아닌 눈애 국소마취만 하며 3-4시간동안 산송장이 되어 수술방에 누워있었다. 무척이나 지루하고 고달픈일이었는데 안구에 두멍을 3개 뚫어 파이프를 심은 다음 그안으로 수술도구를 넣어하는 수술이었는데 안괴애선 하이레벨 수술이라고 하셨다.
지금도 종종 카톡으로 그 수술에 대해 궁금한분들이 물어본다. 당시 네이버카페에 수술후기를 적었었고 많은분들이 문의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후 몇년지 지나 작년에 그 교수님이 돌아가셨다
40대에 젊은나이에도 의료대란으로 인해 혼자 폭탄을 짊어지신것이다. 뉴스에도 나왔듯이 과로사로 추측하고 있었고 집사람이랑 나는 알고 있었다
임산부나 노약자가 오면 항상 등받이 있는 의자를 빼서 환자에게 주셨던 분이기에 환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울거고 참의사셨다. 원래는 부교수님이셨지만 진료도중 교수님으로 바뀌셨고 그분께 진료받기 위해 제주도를 포함애 전국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러다 교수님이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잠깐 가셨는데
양부대가 아마 그때 제일 봄날이었을거같았다.
최초에 내가 진료받을때만 해도 차리만 날리던 과였는데 이젠 오전애 가면 오후나 되서야 집에올수 있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릴 빌어 그 교수님의 명복을 빌어본다.
눈에는 여전히 폭탄을 가지고 있어 직장다니기가 힘들었다. 집사람이랑 부업을 시작했다.
자동차 부품이었는데 플라스틱 봉 같은데에 스냅링 같은걸 끼워넣고 스펀지를 하나넣으면 한개 4원인가 그랬던거 같다. 하루종일해도 돈 만원벌기가 쉽지않았다. 스냅링 끼우는게 도구가 있음 편하지만 그런 스냅링이 아니라 오로지 손가락힘만 필요한 스냅링이어서 나중엔 손가락 끝이 남아나징 않았고 남편우로 가장으로 그걸하는 아내의 모습이 슬퍼 그만두자고 했다.
친척의도움을 받고 엄마의 도움 그리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 처절하게 11개월을 버텼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첫번째 눈수술이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밤에 침대애 누워 뒤척이다. 나쁜마음을 먹었다. 나 하나 없음 우리가족이 몇일이야 슬퍼하겠지만 또 지나고나면 짐 하나를 더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거 같다.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열었고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하물며 아프기전 내가 가공하던 재품까지 생각이 났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아빠 뭐해?”
난 딸과 함께 잤었다. 지금도 한번자면 누가 엎어가도 모르는 아이인지라 내가 배란다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을때 찬바람이 들어오면서 깬것인지 인기척에 깬것인지는 모르겠다
당시 6살이었던 딸을보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종종 나만 없으면 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되면 집사람이 큰방으로 들어와 큰애를 깨우면 큰애가 짜증내는소리 밖에선 작은애가 티비를 틀어논소리와 아내가 우리를 위해 아침을 준비한 음식들 향 이 모든것들이 나를 다잡아줬다.
어느새 5월이 됐다. 첨 뇌경색 발현이 6월1이었으니
11개월이 지났다.
그러다 지금 다니는 공장의 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사실 이 사장은 내가 첫번째로 다닌 공장의 직원이었고 어찌보면 연결고리가 그첫번째 다닌회사다.
공장을 차렸다는 건 알고있었지만 연락이 온건 처음이었다. 아픈건 들어서 알고 있고 일 할수 있을정도만 되면 우리랑 같이 일해보지 않갰냐고 했다.
직접 집으로 찾아와 나룽 픽업해와서 공장을 견학시켜주고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곤 근로계약서에 날인을 하고 지금까지 이 공장애서 일을 하고 있다.
사실 한 2주간은 무척이나 힘들어했었다
08시부터 20시까지 쇳밥을 먹는다는게 여간 힘들이 아니다. 여름에는 쇠를 가공하기 위한 자동차만한 크기부터 집채만한 기게가 공장안에 십수대가 있어 기계들이 뿜어대는 열기와 싸워야 했고 겨울엔 차가운 쇳덩어리와 손끝이 얼거같은 기운과 싸워야했지만 그거보단 11개월 쉬었다 다시 일하는게 너무나 적응이 안됐었다
직장동료는 거진 80프로가 앞전공장에 다니던사암들이라 친분이 있어서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소심트러플A형인 나한테 이거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았다.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지만 아파서 쉬는동안 신용대출 받았던게 있었고 집사람이 4대보험되는 정직원 일자리를 구하게되면서 휴먼시아에서 쫓겨날 처지가되어 집을 구했고 앞으로 가야할길이 멀기만하다.
힌번 무너진둑은 겉잡을수 없이 무너져버렸지만
어떻게든 살아야하고 그러기에 버텨야한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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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시
25.02.22 · 1.♡.1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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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써니사이드쵱
→ 요시 작성자
25.02.22 · 223.♡.219.231
그래야겠지요 -
Mmetalkid
25.02.22 · 113.♡.77.84
세상 모든 아부지들 힘내자구요. {emo:damoang-emo-007.gif:60} -
Bblueship
25.02.22 · 180.♡.248.31
글 잘쓰시네요. 힘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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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버텨진다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