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out (210.♡.54.33)
2025년 2월 24일 AM 12:42 · 수정됨(12:00)
6학년 되는 아들과,
아들 친구 두녀석과 서대문 형무소에 다녀 왔어요.
해설사 선생님을 모셨구요.
오늘따라 바람은 매섭고,
형무소는 더 춥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린 여학생으로 보이는 사진속 열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며 눈물이 솟구쳐 오르더군요.
앳된 얼굴들, 젊은 얼굴들, 고문으로 얼그러진 얼굴들…
여러 역사적인 사실들을 자세히 듣고 보며
순간 순간 몸서리가 쳐졌고 몹시 괴로웠습니다.
해설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연도를 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역사의 흐름을 아는 것이다.
기억하는것이 중요하다. 기억하는 사람만이 행동할 수 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은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셀 수 없이 목숨을 빼앗겼다고 생각해
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끔찍한 만행이 이렇게 남아있는데
일왕의 생일잔치가 서울에서,부산 파라다이스에서
열리고, 기미가요를 불렀다니, 독립의사들께 부끄
럽지 않은가 분노가 치밀더군요.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한 누군가가 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
고 있고, 겨우 돈가스를 얻어 먹으며 일본에 고개
를 조아린 자가 대통령이라니, 곧 탄핵될거라지만
하루도 참아주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간이 어떻게 괴물이 될 수 있는가
역사가 현재에 무엇을 말하는가를
생각해 보개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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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아빠
25.02.24 · 112.♡.64.121
정말 좋은 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치원 때 갔던 현충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 합니다. -
Nnightout
→ 산이아빠 작성자
25.02.24 · 210.♡.54.33
아이들과 궁에도 가고 박물관, 미술관도 많이 갔지만 어제 서대문 형무소는 특별했습니다. 6학년이 될 나이가, 또렷이 기억을 하겠지요. 현충원도 다녀와야 겠어요. -
대대중그린
25.02.24 · 118.♡.128.97
아드님과 친구들이 보고 나서 뭐라고 했을지도 궁금해지네요! -
Nnightout
→ 대중그린 작성자
25.02.24 · 210.♡.54.33
사실, 아들과 아들 친구 1명은 두번째 였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묻지는 못했는데,
지난번 학교에서 단체 견학 후에
소감문 쓴 것을 슬쩍 본 적 있습니다.
‘일본의 만행과 이 역사를 잊지 않아야 겠다, 열시들께 감사한다’이런 내용 이었는데
오늘 다시 물어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대중그린
→ nightout
25.02.24 · 1.♡.97.45
갓기들이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좋은 부모님에게 좋은 아들 콩콩팥팥이쥬 -
아아기고양이
25.02.24 · 223.♡.84.115
사진 속 권오설 선생은 자녀가 요절해 양자인 아드님이 계시는데 어려서부터 정말 힘들게 사셨고 집에 불도 여러번 났으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하셨다고 과거를 회상하셨었는데 멀리 대구에서 안동까지 버스를 타고 오셔서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방금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었네요.
https://m.khan.co.kr/article/200501231722401#c2b
지금은 비록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예전에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다니고 후손들도 뵙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시민들 만나서 이야기 나누던 때가 기억나서 댓글 달았습니다.
이번 서대문형무소 방문이 아드님과 친구분들께도 무척 인상깊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
Nnightout
→ 아기고양이 작성자
25.02.24 · 210.♡.54.33
귀한 일 하셨었네요.
기사 링크도 감사해요.
의사의 시신에 상처가 너무 커 시신을 보지 못하게 납땜을 하고, 가족들에게 빨리 장례를 치르게 했다 들었어요. 2008년에 이 납땜한 관이 발견 되었다고도 들었습니다. 들으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
Jjoydivison
25.02.24 · 119.♡.207.200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네요.
작년 이맘 때 저도 아이와 함께 갔는데 일제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그 장소가 어떻게 사용되고 민주화 운동하신 분들이 어떤 횔동과 고초를 겪게 되었는지 더 많이 이야기해 준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에게 책이 아닌 이런 경험들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
Nnightout
→ joydivison 작성자
25.02.24 · 210.♡.54.33
이 공간이 후에도 민주화 인사들을 잡아들인 형무소로 1987년까지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몰랐던 내용인데, 형무소내 전시실에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교육 후 같이 간 학부모들과 밥먹으며 그랬습니다. 그 후, 1987년까지의 교육이 절실하다고요. 저도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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