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블 (211.♡.226.136)
2025년 2월 27일 PM 07:10 · 수정됨(02. 28. 01:44)
시간 없으신 분들...
서론
・황현필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 스타일.
・4년 전 6.25 전쟁 관련 비판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전 용사들을 생각해 자제.
・"아직 참전용사가 아주 소수라도 살아계신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상처주는 강의를 하고 싶지 않다"
과거 강의 논란
・2009년 수능 강의 중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는 오해 발생.
・실제로는 소련 스탈린의 허락을 받은 김일성의 남침을 비판.
・미국이 한국전쟁을 방관 혹은 유도했다는 주장에 대한 배경 설명이 생략됨.
6.25 전쟁에 대한 관점
・6.25 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그린 큰 그림이었다는 시각.
・미국은 계획적으로, 소련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
・"625 전쟁은 강대국에게 휘둘려 버리고 그들의 이익의 입 맞춤에 맞게 짜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 전쟁이었다"
남침 유도설
・6.25 전쟁에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존재.
・냉전 종식 후 공개된 소련 기밀 문서에 따르면, 소련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의 남침 사실 확인.
・보수 진영에서는 해당 문서 공개 이후 남침 유도설을 음모론으로 간주.
남침 유도설 관련 소련 기밀문서 자료
・브루스 커밍스의 2010년 책에서 남침 유도설 언급.
・90년대 초, 6.25 관련 기밀문서 발견 후 남침 유도설 제기.
・한국전쟁 60주년, 미국 대학자가 "6.25 전쟁은 트루먼과 에치슨의 작품"이라고 주장.
역사적 개연성 측면에서 미국의 책임
・1945년 일제 패망 후 한반도 통일 정부 수립 시도.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 발표: "전 세계 공산화 위기 지역에 미국이 개입".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작.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 한반도 분단.
한국 전쟁 발발 전 상황
・38도선에서 1년 반 동안 874회의 총격전 발생.
・주한미군 철수.
・이승만 대통령, 철수 반대 및 지원 요청.
・1949년, 소련 핵 개발 성공, 중국 공산화.
・조선의용군 6만 명이 북한 인민군에 합류.
애치슨 선언
・애치슨 선언: "동북아시아에서 공산 세력 침략 시, 미국은 일본과 필리핀만 지키겠다."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
・트루먼 독트린과 대조적.
애치슨 라인과 한국 전쟁
・공산화 시 미국이 관여 않겠다던 약속 깨고 대만, 한국은 공사되든 미국 개입 않겠다 선언.
・수능 문제 예시: 애치슨 라인이 북한의 전쟁 준비에 영향 줬다는 선지.
수능 문제 출제 과정
・출제 위원, 검토 위원 거쳐 학문적 이견 없는 문제만 출제.
・"미국의 애치슨 라인이 북한의 남침에 영향을 끼쳤네요."
6.25 전쟁과 미국의 역할
・강사 본인은 6.25 강의서 맥아더 장군 북진 막은 트루먼 비판적 시각 드러냄.
・미국 실책으로 수백만 명 사상 시켰다면 사과해야 마땅.
・"병주고 약주고 했다"고 미국 역할 규정.
남침 유도설 관련 입장
・강사는 미국이 남침 유도했다고 생각.
・한능검 문제 예시: 애치슨 라인이 발발 배경 중 하나.
애치슨 라인과 한국군 약화
・공군사관학교 교수 저서 인용: 애치슨 라인 발표 후 한국군 전력 약화, 한반도 포기 의사 전달.
소련의 기밀 문서
・스탈린, 김일성 남침 initially 반대; 남한 내 미군 주둔 및 미군 개입 우려.
・김일성, 스탈린에게 48번 남침 허락 요청.
・소련 입장 변화: 장제스 몰아냈듯 이승만 정권 붕괴 후 전쟁 중단 가능성 고려.
남침 유도설에 대한 미국 측 입장
・미국에서는 남침 유도설이 학문적으로 이견이 없는,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최초 남침 유도설 주장은 이승만 정권에서 제기됨.
・주한미군 철수, 무기 지원 중단, 한국군 병력 제한 등에 대한 불만 표출.
・이승만은 미국이 북한에게 남침을 유도하는 공개적 초대장을 보낸 수준이라고 비판.
・당시 이범석 국무총리, 임영신 상공부 장관 등도 미국이 남침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
미국의 사전 준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대응 방침이 1949년 6월 27일에 준비됨.
・한국 거주 미국인 긴급 철수 계획 포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문제 제기 계획.
・유엔 승인 하에 치안 유지 활동 계획.
・미국 작전 계획 시나리오 존재.
・49년 9월, 한국전쟁 발발 7개월 전, 미군은 북한군 남침 시 유군의 형태로 참전, 낙동강까지 후퇴, 인천 상륙 작전 계획 수립.
・"미국은 다 계획하고 있었다"
CIA 국장 힐렌 캐터의 증언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후,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은 북한 남침에 대해 정보 실패를 인정.
・CIA 국장 힐렌 캐터는 전쟁 발발을 알고 있었음.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은 힐렌 캐터의 상원위원회 출석을 막음.
・힐렌 캐터는 상원 위원들에게 북한의 남침 의도를 알고 있었으며, 트루먼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증언.
・"CIA 수장으로서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 받음.
CIA와 트루먼 정부
・CIA가 역할을 다한 후 트루먼 정부에서 해고됨.
・38선 이북 지역의 대규모 이동 정보를 트루먼 정부에 제출 (6월 19일 전쟁 준비).
・트루먼과 체스는 이를 묵살.
유엔군 사령관의 증언
・당시 유엔군 사령관 J가 CIA의 50년 6월 19일자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침략을 인지.
・"나는 CIA 50년 6월 19일자 보고서를 읽었기 때문에 북한이 침략할 걸 알고 있었다"
미국의 사전 인지 증거
・국동 사령부가 50년 3월, 북한군의 남침 예상 정보 보고서를 워싱턴에 전달.
・북한군의 전쟁 준비 사항을 3개월 전에 정확히 파악.
미국의 의도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주장 제기.
・제시된 자료는 빙산의 일각이며, 브루스 커밍스의 책, C 문서, 한국전쟁 전사, 박태균 교수 책 등 참고 자료 언급.
브루스 커밍스의 인터뷰
・미국은 6.25 전쟁 전에 남한에서 최소한 연고에 감청 기지를 운영.
・"전쟁 직전 수만 명의 북한 군대가 38도선 향해 이동 중이었다면 미국이 그것을 보지 못 겠는가"
・미국 국무부는 6.25 전쟁 발발을 사전에 예견하고 대비, 유엔 제출 결의안 초안 작성.
한국 국방 연구원의 자료
・2020년 발간된 리처드 썬톤 교수의 책 (2000년도 무렵 집필).
・썬톤 교수는 한국전쟁 관련 통화 감청 자료를 다수 보유.
・권영근 씨가 썬톤 교수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없었음을 언급.
미국의 남침 유도
・북한군 남침 시 미군 참전 및 낙동강 후퇴 후 인천 상륙 작전 계획이 1949년 9월에 이미 수립.
・작전 계획 시나리오 FL 17 언급.
・80년대 초 미 육군과 공군이 6.25 전쟁에 관해 발간한 공식 역사서에서 인정.
남침 유도설 관련 내용
・리처드 선턴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군의 남침 준비 현황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
・5월 15일, 훈련된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미국이 인지하고 있었으나, 한국에 알리지 않음.
・미국 지도자들은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으며, 대만 침공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반도 전쟁 방지 조치는 취하지 않음.
질문 제기
・"왜 이렇게 남침을 유도했지만, 5만 명이 넘는 UN군이 와서 이 땅에서 죽었을까?"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미국이 얻어가려고 했던 이익은 무엇이었을까?"
박태균 교수 언급
・박태균 교수는 6.25 전쟁사 최고 권위자라고 언급.
・전쟁 발발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미국의 태도에 대한 의문 제기.
향후 강의 내용 예고
・다음 시간에는 북한이 대규모 남침을 준비할 때 미국이 모른 척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다룰 예정.
・남침 유도설은 미국에서 팩트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며,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인들은 모르지만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알고 있다고 언급.
・소련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스탈린의 각본과 시나리오가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
・다음 시간에는 미국이 남침을 유도한 이유와 이익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
댓글 (5)
- 버
버미파더
25.02.27 · 217.♡.255.211
- 퍼
퍼렁곰
25.02.27 · 211.♡.198.152
저는 이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에치슨 라인이 갖는 의미를 해석했을 때 '한반도는 공산화된다 해도 '내어줄 수 있는 용의가 있음'' 정도는 되겠지만,
이것이 '미국이 한반도 공산화를 유도했음' 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
에에피네프린
25.02.27 · 121.♡.158.120
남침유도 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은데, 북한은 크게 생각 없다가도 미국이 유도한게 크다 라고 이해하면 남침유도설은 말이 안되는거죠. 하지만 미국의 전후 상황을 보면 어느정도 원인을 제공한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 유도라기 보단 막을려면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발발할 여지를 준 면은 있다는거죠.
결국 같은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가만 있었으면 북한이 안쳐들어 왔을거냐? 아니거든요. 쳐들어 올걸 알면서 대비가 너무 허술한게 의도적인 부분이 있다는건데.
이걸 유도한거라고 말하느냐, 유도 까지는 아니지 않냐 라고 말하느냐의 차이겠죠. 어짜피 남의 나라고, 쳐들어와도 막아낼 작전은 다 있어서 개전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다거나, 개전하면 미국입장에서 나쁠게 없다라거나... 이게 유도냐 아니냐는 ... 그냥 해석의 문제 -
깨깨몽
25.02.27 · 112.♡.219.248
제가 읽는 행간...
옛날 한반도를 보나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보나, 제 일에 제 나라 사람이 "악착같이" 나서지 않으면 힘센 나라한테 휘둘리게 된다! -
블블랙이
25.02.28 · 99.♡.192.91
제가 이해한 바로는 그 당시 해방 정국 시기,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 세력보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독립 세력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지지세가 컸습니다. 그래서 통일된 한국 정부 수립에 대해 소련은 당장 선거에 의해 접근 시 소련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것으로 판단하여 예비내각도 구성했었지요. 그런데 첫 후보였던 조만식 선생은 절대로 공산주의자의 지원 속에서 정권을 잡고자 하지 않으셨고, 이런 상황에서 여운형 등을 고려하였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내세운 것이지요. 반면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원하는 정치 세력의 통일 정부 수립의 정권 흭득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여 신탁 통치를 길게 하게 만들고자 했으나 김구 선생 등의 세력이 동조하지 않았고, 이런 과정 중에 김구 선생은 배제 되었습니다. 결국 소련의 5년 신탁 통치와 미국의 더 긴 기간에 대해 협상을 진행 했는데, 동아일보가 소련 신탁 통치 5년만 왜곡해서 배포한 걸로 압니다. 어쨌든 미국 입장에서는 냉전이 시작 되면서 반쪽이라도 자기 영향 아래 두고, 일본을 온전히 자기 제어에 두고 싶었다 입니다. 결국 전쟁을 통해서라도 정치세력 판도를 바꿀 필요는 있엇다 입니다
김일성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야욕과 소련의 지원 및 이승만의 반쪽이라도 남한 내의 영구집권과 미국의 정치 세력의 역전을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했던 걸로 압니다. 일반 국민들만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했고, 반대 주의자는 희생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와중에 친일 부역자들이 살아남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한국전쟁은 유럽에서 미국의 시선을 떼어놓으려던 소련의 큰 그림이었고
한국전쟁동안 동유럽이 공산화되어 소련의 영향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해석도 눈길을 끌더군요.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갈등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결론이긴 합니다)
당시 한국도, 지금 우크라이나도, 전쟁과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 빠지고 외세를 끌어들였을 때
어떤 후과를 치르게 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