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2월 27일 PM 10:49 · 수정됨(02. 28. 16:07)
가끔 게시판에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 옵니다.
젊을 때 영화 일을 했지만 배우랑 말 제대로 나눠본 사람은 딱 한 명이었습니다.
그 배우가 지금은 악역이나 조연으로 매우 유명하지만 30년 전 젊을 때는 주연으로 날리던 분이었어요.
감독과 워낙 친해서 자주 봤어요. 한때는 너무 자주 봐서 이 분 영화 안 찍나 싶었습니다.
잘 나가던 와중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보니 남보다 일찍 주연을 맡은 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주연을 맡고 나면 조연을 맡을 수 없고, 주연을 맡을 수 있는 작품도 한정되어 있으니 어떨 때는 오히려 생활이 안된다는 거에요. 30년 전만 해도 영화배우 출연료가 지금같이 몇 억 받던 시절이 아니어서 소위 품위 유지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배우 기획사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죠.
그렇다고 부업을 하자니 얼굴 팔리면 배우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에 쉽게 못 나선다고 합니다. 남들 밥 사주는 것도 부담스럽고 남에게 밥 얻어먹기도 그래서 집에 콕 박혀 있는 배우들도 있다고 했어요.
거기서 배우들의 정신건강이 망가지게 마련이랍니다. 영화 쪽 일이라는 게 꼭 연기만 잘해서 풀리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도 중요해요. 예전엔 충무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도 같이 먹고 해야 일이 들어오니까요(지금은 강남인가요?). 무조건 오디션으로 배우 뽑는 건 아닙니다. 배우는 혼자 뭘 할 수가 없죠. 반드시 영화나 드라마에 선택을 받아야 사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사람 만나기를 주저하다 보면 일이 줄고 생활은 어려워지고 악순환이 이뤄지는 거죠.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집이 좀 살만하면 그나마 버티는데 집도 어려우면 버티기가 더 힘들죠.
그래서 형도 힘드냐 여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왜 없겠냐고 하더군요. 잘 나가도 추락할 수 있고 일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는 거죠. 그때 얘기 들으며 영화감독 되기도 힘들지만 배우도 참 어렵다 싶었어요. 삶에 제약도 많고 유통기한도 짧고. 그런데도 배우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죠. 한류라는 게 결국 봉준호, 박찬욱 감독 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 말고 꿈을 좇아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감독, 배우, 영화 스태프들이 있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배우들이 갑자기 세상 떠날 때 그 배우 형이 해주던 얘기가 항상 귓가에 맴돕니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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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ra
25.02.27 · 211.♡.65.242
잘나가던 배우들도 걱정이 많군요 - 행
행시주육
25.02.27 · 121.♡.239.116
유시민이 그랬죠. 인생에서 빛나는 순간은 짧다구요. 그래도 빛났으면 대단한 거라고...자기를 내려놓는게 참 힘든것 같습니다. -
홍홍성아재
→ 행시주육 작성자
25.02.27 · 112.♡.175.67
인정입니다! -
데데미안
25.02.27 · 221.♡.181.201
그래서 인간관계 경영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맞나요? -
홍홍성아재
→ 데미안 작성자
25.02.28 · 112.♡.175.67
네. 물론 저는 인간관계 꽝입니다. -
조조알
25.02.28 · 174.♡.196.205
박찬욱 감독도 영화 두편이나 말아먹고 영원히 영화계에서 퇴출될 위기로 십여년을 비디오방 하며 은둔했었던 전적이 있죠. 그 은둔생활 중에 어쩌다 찍은 독립영화 한편이 인생을 역전시키는 결과로 나타났고요. 그 독립영화를 감명깊게 본 영화사에서 JSA 를 박찬욱 감독에게 맡기는 도박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박찬욱 감독도 아마 재기를 못했지 싶습니다. 그런 운은 보통의 경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거라고 영화 두편 말아먹고도 세번째 기회가 주어지는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게 기적적으로 일어났다며 박찬욱 감독도 스스로 그렇게 얘길 했었으니까요. -
홍홍성아재
→ 조알 작성자
25.02.28 · 112.♡.175.67
제가 영화일 할 때가 아마 박찬욱 감독님 비디오방 할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말씀하신 앞서 두 편이 관객은 물론 평단 반응도 별로였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 사람은 끝났다 이런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JSA로 우뚝 다시 설 때 놀랐어요. -
조조알
→ 홍성아재
25.02.28 · 73.♡.237.72
제가 박찬욱 감독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 두편 중에 한편 (달은..............) 은 (박찬욱 감독이 시중에 떠도는거 다 구해서 묻어버리고 싶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봤습니다.. 물론 대중적으로 망할만하다 싶긴 했지만, 동시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이 잘 묻어 있는 제 예상보다는 좋은 영화이기도 하더라고요.. -
홍홍성아재
→ 조알 작성자
25.02.28 · 112.♡.175.67
전 두 편을 안보고 주위 얘기만 들었어요. 제게 얘기 해준 사람에게 박 감독님이 취향이 아니었나 봅니다. -
생생트
25.02.28 · 182.♡.43.43
그래서 배우 한다는 지인들 만나면
https://www.youtube.com/watch?v=KTniANUq4Xw
이정도 연기 못하면 빨리 그만두라고 합니다.
(하지 말란 애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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