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2월 28일 AM 12:04 · 수정됨(03. 01. 21:47)
어제 다른 회원분이 고물상 생각보다 돈 잘 번다고 하신 글에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오늘 마침 파친코 운영하던 재일교포가 장학금 내놨다는 뉴스영상을 보니 한 마디 적고 싶어졌어요.
저희 외삼촌은 중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지금은 치매 상태로 90살을 홀쩍 넘겨 살아 계세요.
영상에 나오는 재일교포 분이 딱 저희 외삼촌 연령대셔서 더욱 이런저런 생각이 났어요.
저희 외삼촌은 원래는 공립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1975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재일거류민단이 세운 고베 지역 학교에 국어 선생님으로 파견되셨어요. 아마 조총련이 세운 조선학교에 대응하기 위해 민단 쪽에서도 학교를 세웠던 모양입니다. 해방되기 전에 중학생이어서 일본말을 잘 하셨고 실력도 있으셨나 봐요. 당시 교육부가 전국에서 일본 파견교사 3명 뽑는데 뽑히셨다고 해요. 외숙모, 애들 넷 모두 데리고 일본에서 5년 있다가 1980년 초반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냥 일본에 사신 게 아니라 재일교포를 위한 학교에 계셨기 때문에 재일교포에 대해 잘 알고 나중에 저희 가족에게도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때 기억에 남는 게 재일교포들이 먹고 살게 없어 처음엔 고물상 같은 걸 하다고 돈을 벌어 파친코를 열었다는 거였어요. 물론 파친코 말고 큰 기업 운영하던 집도 고물상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시더군요.
일본이 경제성장기라 고물상이 특히 잘 되었답니다. 필요한 산업 자재는 많은데 조달이 쉽지 않으니 고물상을 통해 자재를 구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어제 글 써주신 분이 고물상 하다가 그 땅 팔아 부자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는데 일본 재일교포도 그런 일이 있었나 봐요.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 국어선생님 오셨다고 엄청 잘해주셨대요. 돈 있는 재일교포들이 외삼촌 차도 사주고 골프채도 사주고 골프장도 자주 데리고 가셨답니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주는 월급에 민단에서 별도로 월급까지 주고 집도 제공해서 외삼촌이 일본 가서 돈 많이 벌어 오셨습니다. 당시로서는 낙후되었던 우리나라와 20년 격차가 나는 일본에서 살다 1980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촌 누나, 형들이 무척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외삼촌 네는 일본에서 소니 컬러 텔레비전도 가지고 오셨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컬러TV 시험방송 중이어서 저희 집에서는 흑백으로 나오던 드라마가 외삼촌 댁에서는 컬러로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삼촌은 일본에서 돌아오시고 나서 저희 아버지에게 고물상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우리나라도 80년대 경제 성장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고물상이 잘 될 거라고 하셨죠. 그 말 듣고 아버지가 우연히 생긴 땅에서 고물상 차려서 돈 꽤 버셨어요. 난곡 반지하집에서 물난리까지 겪었던 집이 저 대학 가서는 집을 샀으니까요. 재일교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희 아버지도 돈을 버셨던 겁니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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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리안
25.02.28 · 58.♡.2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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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홍성아재
→ 크리안 작성자
25.02.28 · 112.♡.175.67
아버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해고되고 정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영 화학공장 노동자 출신이 서울 와서 할 게 별로 없었거든요. 고모 권유로 여인숙을 하시기도 했지만 돈은 잘벌어도 어머니가 너무 힘들고 애들 교육에도 안좋다고 그만 두시고 나서 외삼촌 조언으로 고물상을 하셨어요. -
콰콰인
25.02.28 · 175.♡.243.225
재일동포분들이 파친코 사업 많이 하시고 크게 성공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루한이라는 파친코 재벌이 재일동포분 소유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 아
아싸조쿠나
25.02.28 · 118.♡.5.107
재일교포이신 동경대에 강상준 교수의 책에 보면 어릴때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이 정말 가난했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밀주를 팔아 돈을 벌기도 했고 단속에 걸려 서럽게 울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한게 기억이 나네요. -
홍홍성아재
→ 아싸조쿠나 작성자
25.02.28 · 112.♡.175.67
네 외삼촌도 그런 얘기 많이 하셨어요. 그런 사람들이 독하게 살아남았다고 높이 평가하시더군요. - 화
화창한비오는날
25.02.28 · 211.♡.210.132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군요. -
가가랑비
25.02.28 · 58.♡.137.93
역사의 작은 한 가닥을 기록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
쿨쿨마인드
25.02.28 · 124.♡.214.246
좋은 내용의 글을 읽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시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몰랐던 세상을 접할 때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
코코미
25.03.01 · 180.♡.224.246
아마.. 그 선물 준 사람 중에서 어쩌면 제 지인이 하나 끼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홍홍성아재
→ 코미 작성자
25.03.01 · 112.♡.175.67
고베 지역 재일교포 분과 인연이 있으신가 보네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그말에 바로 행동하신것도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