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he (218.♡.103.95)
2025년 3월 8일 PM 01:06

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께서 책 소개를 하나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를 가장 좋아하는 쟝르긴 하지만 젊어서부터 너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와서 그런지 그냥 닥치는대로 읽다보니 질렸다고 할까요. 그래서 최근에는 좀 화제가 되거나 누가 추천을 해주면 보는 편인데 마음에 와닿는 에세이는 1년에 한두개가 될까 말까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노안도 오고 이유도 없이 번거로운 생활때문에 책읽기가 여의치 않으면서 점점 독서도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지 최근에는 개인적인 관심사인 정치,사회와 관련된 서적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죠.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은 가뭄에 단비처럼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 책의 글 중에 하나 특히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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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심장을 누를 때.
주말 오후였습니다. 점심을 대강 먹는 바람에 허기가 셔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컵라면 먹는 소방관은 불쌍해 뵈려는 '쑈방관'이란 말이 있어 부러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먹는 편입니다. 대기실 창문을 열고 물은 부은 컴라면을 문틀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다 익지도 않은 라면에 나무젓가락을 찔러 넣자마자 출동이 걸렸습니다. 당신의 심장이 멈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언덕배기에 기우뚱하게 자리한 낡은 펜션이었습니다. 페인트가 각질처럼 떨어져 나간 남루한 외벽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곧 당신 아들이 부랴부랴 낡은 SUV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정말 다급해 보였습니다. 계단을 네 칸씩은 뛰어 올라간 것 같습니다. 나도 양손 가득 소생 장비를 들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당신의 시어머니가 먼저 당신의 심장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심장이 자리한 곳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죽은 몸을 만지는 게 어색하고 무서운지 너무 조심히 눌렀습니다. 당신 아들은 곁에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시커멓게 죽은 당신의 애먼 손끝만 주물러댔습니다.
목까지 덮은 당신의 웃옷을 걷어붙이다 여의치 않아서 가위로 잘라버렸습니다. 옷 아래 숨어 있던 체온이 얼굴로 확 끼쳤습니다. 가슴 가운데 단단하게 복장뼈가 자리한 곳을 누르기 시작햇습니다. 그리고 우측 쇄골 아래와 왼쪽 겨드랑이 밑에 제세동기 패치를 붙였습니다. 기계는 당신의 죽음을 선고하듯 한일자 심장 리듬을 모니터에 그렸습니다. 그래도 눌렀습니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팔에 정맥주사를 찔러 넣고, 고개를 젖혀 숨길로 산소를 밀어 넣었습니다. 본부에서 대기하는 당직 의사에게 실시간으로 조언을 구하며 소생술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당신 아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데다 계단은 너무 좁았습니다. 당신을 들것에 싣고 내려오는 동안 계단 벽에 등이 쓸려서 페인트와 먼지로 온통 하얗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내달리는 동안 당신의 심장이 잠시 뛰는가 싶더니 다시 멈췄습니다. 그래도 달렸습니다. 몇 번은 정말 위험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도처럼 속으로 뇌었습니다. 죽지 마요. 죽지 마요. 당신 아들의 낡은 SUV가 클락슨을 울리며 뒤를 바짝 쫓았습니다.
당신은 의료진들에게 둘러싸여 빨려들 듯 병원 안으로 들어갔스비다. 이후는 늘 그렇지만 병원에 닿기 전에 살리지 못한 미안함이 먼저 치밀고 능력 없는 나에 대한 분노가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도 나에겐 삶이라서 거기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벌서 당신의 온기를 잃은 들것을 소독 티슈로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남 일처럼 잊어버렸습니다.
소방서로 돌아오니 라면은 팅팅 불어 있었습니다. 함께 불어 터져서 흐느적거리는 나무젓가락으로 그걸 한입에 먹어치웠습니다. 식어빠진 면발에서 타는 것 같은 맛이 났습니다.
비번 이틀을 보내고 사무실에서 출근한 날 아침, 책상 위에 당신 아들이 손수 적은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달고 푹신한 박스 과자도 함께였습니다. 편지엔 저희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단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같은 사람이란 말이 왜 그렇게 우울하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 말을 곧장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벽지에 늘어붙은 오래된 땀 냄새, 비우지 않는 재떨이, 꽃무늬 바지, 등허리 아래 장판만 빼고 서늘한 공기, 그리고 라면, 끝도 없는 라면, 죄가 아닌 그것들을 두고 당신의 삶은 죄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당신 아들이 당신의 가족을 '저희 같은 사람들'이라고 고해성사하듯 말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 큰 죄를 짓는 건 가난이 아니라 큰돈인데 오히려 가난이 죄라고 말한다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 나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저런 사람처럼 되는 거야." 어쩌면 당신 아들이 저희 같은 사람들이라 말을 한 건 당신을 두고 저런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나 같은 사람들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습니다. 내가 당신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 아들은 그런 나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당신을 모욕하고 삶에서 영영 떨어뜨려 놓은 사람을 두고 편지에 은인이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편지 없이 그냥 당신이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당신 아들을 실컷 욕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카메라로 찍어 고소라도 하려 했던 것 아니냐, 구급차 꽁무니를 미친 사람처럼 쫓아오는 바람에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모른다, 덕분에 살아났으면 전화로라도 인사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운운하며 당신이 살아나 줘서 감사하단 말은 쏙 빼고 우리끼리 신이 나서 쑥덕거렸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 밤을 새워서라도 욕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의 심장을 누를 때, 내 심장도 함께 꾹꾹 눌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랬다면 조금 무심하게 당신 아들의 편지를 읽었을 것 같습니다. 박스 과자도 물 없이 술술 목구멍으로 넘겼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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