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80.♡.243.17)
2024년 4월 20일 PM 08:19 · 수정됨(21:08)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도량형에서 유래했습니다.
일본은 에도 막부 시기 고쿠다카(石高)라 해서 지방 행정과 세금 수취의 기준을 쌀 생산량(석)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토지가 좁아도 비옥한 곳이 많은 번이 땅은 넓은데 토지가 황폐한 번보다 더 고쿠다카가 높은 일도 일어났죠.
아무튼 그 일본의 한 석은 약 180리터로 성인 남성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쌀의 양입니다.

원래 조선에도 쌀을 측정하는 단위는 있었는데 일본과 달리 소곡, 대곡이라고 두 단위로 나뉩니다.
세종 시기 영조척으로 쌀을 담는 용기의 단위를 통일시켜서 일정한 국가 표준이 있었던 겁니다.
소곡이 대략 85리터, 대곡이 대략 115리터 가량 되며 일본보다 더 세세한 점에서 국가가 더 철저하게 지방의 행정을 장악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국가 표준이 소실되었고 세도 정치 시기를 지나면서 세금 수탈, 비리 등을 이유로 지방마다 적당히 도량형을 조작하는 일이 빈번해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틈타서 일본이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한 석=180리터란 기준을 강제로 도입시키게 됩니다.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해야 하는데 도량형이 달라서 일본 상인들과 군인들이 곤란하니 식민지화할 겸 겸사겸사 도량형을 바꾼 거죠.
그리고 이후 쌀 한석=180리터란 도량형이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죠.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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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nd
24.04.20 · 122.♡.208.83
오늘 글들 explosion 하고 싶으셨는데 ... 잘 참으셨군요 :) - L
loveMom
24.04.20 · 211.♡.194.167
흥미로운 글이다 싶음 글쓴이를 보라!!
바로 그다
>> 매번 고마워요 -
PPINECASTLE
24.04.20 · 39.♡.79.180
사실 일본도 교토의 교마스(京枡)를 쓰느냐, 아니면 지역의 다른 됫박을 쓰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량형 통일을 강제적으로 하면서 고쿠다카(石高) 기준을 변경해서 확정해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이 때의 기준으로 거진 정착되었던 것 같습니다. -
UUrsaMinor
24.04.20 · 115.♡.248.122
그럼 심청이의 삼백석은.. 성인남성 300명이 일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란 말인가요? 엄청난데요? -
IIcyflame
24.04.20 · 211.♡.240.220
오 몰랐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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