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2차 탈락 후 기로에 섰던 분이 시작한 일, 그리고 출간..
diynbette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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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8일 AM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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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앙에서 제가 예전에 인상깊게 봤던 글이 있습니다.

사시 2차 탈락 후, 

노동부 산하 기관에서 '장애인 고용 업무'에 종사하면서

진심으로 장애인 분들의 이동 동선까지 발로 뛰며 체크하고

각 장애의 특성을 파악해서 지역 업체에 취업을 알선했던 분의 얘기입니다.


이 분이 책을 이북으로 출간하셨다고 합니다.


제 책이 교보에도 올라갔네요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942017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전력을 다해 종사하는 공무원 분들이 현실에 계시죠.


이런 분들이 인정을 받고 더 잘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투표를 잘 해야겠습니다. 


........................


출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717332

사시2차 탈락후 기로에 섰던 내가 시작한 일(4)

[제가 노동부산하기관에서 했던 장애인 고용 업무에 대한 논픽션 창작물 연재입니다. 창작 내용상 경어사용에 대해서 양해를 구합니다]


사시2차 탈락후 기로에 섰던 내가 시작한 일(4)


이제 지적장애는 단순임가공, 지체 장애 있으신 분들은 콜센터나 앉아서 하는 일, 이런 스테레오타입으로 진행하다보니 어느 순간 정체가 왔다.


업체에 접근해서 구인표를 받았지만, 그 일에 적합한 장애인을 못찾게 되었다.


이러면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우에 집중하여 뭘 잘 할 수있고 이 분에게 맞는게 뭔지 역으로 찾아봐야 한다. 그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갖춘 업체를 찾거나 아니면 업체에 소개하여 이 분에게 맞는 일을 찾아달라고까지 해야 한다.


이게 피상적으로 장애인을 파악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최대한 라포를 쌓고 숨은 장기까지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맞는 일을 찾고 맞는 업체를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접근은 혈관종이 심한 안면장애 있는 분에게 주효했다. 젊은 청년이었는데 혈관종이 심하다 보니 얼굴이 늘어져서 입을 못다물 정도로 균형이 깨져있었다.


일단 의학적 접근은 그 분의 가정에서 추진할 일이니 이분에게 일자리를 마련해드리려고 했다. 그래야 당장 수술비도 마련할 수 있을테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이 일을 못할 것은 없었다. 안면장애가 대체 어떤 일을 못하게 할까. 그래서 만나봤고 이야기를 랜덤하게 같이 해보니 컴퓨터를 잘 안단다.

이거는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를 알아도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용산전자상가 부근에 조립컴퓨터 만드는 곳이 있었다. 먼저 연락해서 이 분의 프로필을 주고 채용시켰다. 


그런데 한달 정도 일하시다가 퇴사하였다. 사유를 물어보니 칼을 사용하는데 그 분 얼굴에 스칠까봐 신경쓰여서, 라는 이유였다.

얼토당토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고 다른 곳에 연결시켜드렸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 유명한 용산의 컴퓨터 업체였다.


또 용산전자상가에 보면 선인상가 뒷편에 또 건물이 있다. 그 안쪽에서 역시 컴퓨터 관련 업체에서 홈페이지 관리자를 구한다기에 휠체어 사용하시는 분도 괜찮을지 물어보았다. 괜찮다 하길래 사전답사를 하고 동선 체크를 해봤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출근코스가 좀 험난했다.


작년엔가 장애인유관행동단체에서 신용산역에서 이동권 시위를 했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안다. 출근 동선 체크를 해보려고 신용산역에서 내렸을때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아보았는데 거의 이동이 어렵고 불가능한 편이었다. 

나는 당시 꾀를 써서 어떻게 북쪽 끝에 지하철에 연결되는 건물에 들어가서 엘베타고 지상으로 나오는 코스를 찾아내서 이 분에게 알려드리고 면접도 보게 하고 출근도 하게 안내했다.


한 달 후 전화해보니 업체에서는 좋은 분 연결해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전형적인 취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이렇게 각각의 케이스에 맞는 퍼즐을 맞추듯 한 사례씩 이뤄나갔다.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하는 일이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스스로 맘이 편했고 자부심이 있었다.



동대문장애인 택배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기로 한다


글을 중간중간 끊어가는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일 생각에 만감이 교차해서 정신을 좀 차리고자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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