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golemongole (112.♡.33.238)
2025년 4월 4일 PM 12:21
일부러 방송 안 보고 책부터 집어들었습니다
저번에 산 한강의 '희랍어 시간'
평생 깨지지 않는 징크스가 있거든요
제 생각과 결과가 항상 반대로 나옵니다
시험 잘 볼 것 같으면 못 보고
엄청스럽게 걱정하면 잘 보고
심지어 그 정도가 심할수록 비례해서 결과도 나타납니다
걱정이 심하면 심할수록 결과는 항상 더 좋았어요
그래서 국가대표 축구보면 한국이 항상 졌고
제가 안 보면 대통령이 잡혀가거나 그랬어요
이번에는 무의식적으로
즉 의도하지 않고
-징크스가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조용히 책을 집어서 오전 내내 읽었습니다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자
카톡이 울렸어요
속으로 웃었습니다
희랍어 시간 주인공들처럼 힘겹게 소리내지 않고 웃었습니다
제 징크스로 저만의 의식을 했는데
어느 정도 통한 것 같아 내심 흐뭇했습니다
희랍어 시간은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눈을 잃고있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회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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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을 겪다'는 뜻의 동사와 '배워 깨닫다'라는 동사입니다. 거의 흡사하지요?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언어 유희로 두가지 행위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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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도 넘게 수난을 겪었으니 배워 깨달았습니다
소설 '희랍어 시간'은 말 그대로 희랍어 시간이었습니다.
같이 수업을 듣고 같이 강의를 하고
같이 아무도 쓰지 않는 언어의 사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동일 씨가 쓴 '라틴어 수업'과 비슷했어요
하지만 유머러스한 '라틴어 수업'과는 다르게
'희랍어 시간'은 안 쓰던 근육을 쓰는 요가 수업처럼
한 호흡 한 호흡이 힘이 들고
한 동작 한 동작이 무거워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덩어리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안 쓰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유쾌하지도 않지만 불쾌하지도 않은
작년 12월 계엄일 부터였어요
뭔가 불안한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느낌
알고는 있지만 모르고 싶다는 느낌
마치 '희랍어 시간' 남녀처럼 감각을 억지로 혹은 자연스레 잃어간다는 느낌
타인에게 향한 증오가 혹시 못난 나 자신을 대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면서 느끼는 못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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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 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했을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 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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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도 조금은 우매해지지 않을까요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진실의 파편이 조금이나마 새겨지지 않을까요
오늘 승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랫동안 걸려있던 톱니바퀴가 덜컹거리며 다시 굴러갔다고 생각할게요
쓰지 않았던 근육에 감사하고
잊고 있었던 감각을 되돌려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할게요
징크스는 평생 깨지 않겠습니다
다시 써먹을 날이 오겠죠
다시 날 세상에 들여놓은 카톡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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