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리언 (172.♡.207.139)
2024년 3월 30일 PM 11:43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의 핵무기를 통제하던 커티스 르메이 전략공군사령관과 케네디 대통령의 충돌 현장을 봤습니다.
당시 미군부 등 강경 세력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극한의 신념으로 불타오르던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넘긴 후 케네디가 총살 당합니다.
미국의 바보들 중에는 아직도 조셉 맥카시가 옳았다, 맥아더가 옳았다고 하는 인간들이 꽤 있습니다.
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푸트니크 쇼크의 진실을 미국인들은 군지휘부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미국이 핵무기의 양과 투발 수단의 압도적 우월함을 과신하여 정면 핵교전을 하더라도 미국이 소련을 압도하여 승리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을 때, 실은 러시아 측에서는 이미 대륙간탄도탄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후 2-3년 내 ICBM를 작전 배치하여 부대까지 편성 완료한 상태가 됩니다.
정찰 위성은 이 와중에 한 발 늦게 개발 운용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당시는 깜깜이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쏴서 미국 하늘에 대놓고 띠워 보여주는데도 미국 측에서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그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르메이 장군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결국에는 대통령까지 죽이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고, 아직까지 이 쿠데타를 진상 파악도 처벌도 못하고 있습니다.
"The first successful test followed on 21 August 1957; the R-7 flew over 6,000 km (3,700 mi) and became the world's first ICBM.[4] The first strategic-missile unit became operational on 9 February 1959 at Plesetsk in north-west Russia.[5]"
"With overwhelming air superiority and truly intercontinental bombers, the newly formed US Air Force did not take the problem of ICBM development seri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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