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장 이야기
diynbette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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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2일 PM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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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용 원글보기


얼른 떠오르는 금액만 1천 억 원이 넘는다.
40년 동안 모금한 돈이다.

정확히 따져보면 훨씬 더, 두 배 가까이 될 것이다.
교회 헌금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목적을 위해 모금한 돈이다.
정부 예산/공적 자금으로 세운 자활센터 등은 제외하고.
여러 복지 기관, 재단, 사단법인도 많이 세웠다.
사회주택 등 프로젝트도 다양하다.

결론은?
남의 도움으로 일하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에, 박원순 변호사와 둘이 아름다운 가게 앞 문턱에 앉아서 믹스 커피를 마시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변호사님이나 저나 천국은 못 갈 겁니다!"
"왜요?"
"남의 돈과 정성으로 잘난 듯 살아왔으니 우리가 갈 수 있나요? 돈과 정성을 나누어준 분들이 가시도록 해야지요!"
"허허, 맞네요. 우리 같은 사람은 천국은 너무 심심할 것 같아요. 지옥이 할 일이 더 많고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속으로...) "일 중독자!"
"그러나 저러나 그 많은 일을 벌려 놓고, 수백 억 재단도 만들어 놓고 어떻게 그리 떠나시나요?"
"여기서 계속 이렇게 살면 죽을 것 같아요. 좀 쉬고 싶고, 건강도 챙기고 싶고, 무엇보다 내가 떠나야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옛 말에도 공을 세웠으면 떠나라는 말씀도 있잖아요? 변호사님도 어서 오세요. 제가 영국에 자리 잡아 놓을 테니!"
둘 다 40대 때 이야기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영국에서 돌아와 희망 제작소에서 만나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걷는교회>를 시작했다고 하니,
"역시! 좋은 생각입니다! 저도 갈께요!"
"코로나 시대에 불안정 노동자들이 너무 힘듭니다. 긴급 지원 예산을 편성해주세요. 할 수 있는 사업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지요!"

노동 운동가와 같이 만났던 자리에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메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수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재정을 긴급하게 투입해주었다.

"사회주택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 지가 10년도 더 되었는데 공공에서는 도대체 재정 투입을 하지 않네요. 답답해서 제가 60억 원을 마련해서 사업을 펼치고 있으니 시에서도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수천 호의 사회주택을 지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사회적 경제, 공정무역, 마을, 교육, 문화, 복지 등 서민과 마을 주민, 청년이 주인이 되어 신나게 일 할 수 있었던 수 많은 사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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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는 없다.
'부재, 없음'이 된지 5년이 되어간다.
오랜 시간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어렵고 힘들었다.

참여연대 만든다며 '빈민 대표'로 참여해달라고 부탁 했을 때 살면서 일하던 산동네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거절했었다.
재단 운동, 나눔 운동을 어떻게 펼칠까 같이 고민했고, 논의 하고,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재단을 만들어냈다. IMF 당시 그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었고 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추진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이었다. 참여연대와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법 제정이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사에 획을 긋는 큰 일을 함께 했다.

어려울 때 서로가 진심을 다해 응원했고 도왔다.
1년에 서너 번 만나도, 여러 부분에서 의견과 행동 방식/반경이 달랐어도 인격을 믿고, 응원했다. 각자가 이룬 성취를 보면 진심으로 기뻐해주었고, 축하해주었고, 못 먹는 술 한 두잔 하거나 기분이 좋아지면 좀 오버하면서 내 동상을 세워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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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서로 믿고 응원하면서 깊은 속을 나눌 수 있었던, 말과 꿈을 함께 실체화 할 수 있었던, 믿고 존경하는 벗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힘들 때 더욱 생각이 난다.
내가 힘들었을 때, 그가 힘들었을 때 표정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단 한 두 마디의 말을 나눌 때도 서로가 서로에게, 알아서 해 달라고, 부탁인지, 하소연 이었는지...

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줄,
해주고 싶은 사람의 빈자리가 아프다.
헛헛하다.

오늘도 다른 분들의 아름다운 정성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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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미얀마의 모습이 아닙니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서울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현재의
20대들에게 이 사진들을 공유해주세요.

물대포에 쏘이고, 방패에 찍히고... 폭력진압에 피 흘리는시민들 '속수무책'


전경들은 또 후퇴하는 시민들을 쏜살같이 쫓아가면서 낚아챘다.

뛰어가는 한 시민을 낚아챈 전경은 그 시민이 쓰러지자 질질 끌고 갔다.

그 시민의 머리는 땅바닥에 부딪쳐 피가 났다. 연행되는 그 시민을 다른 시민들이 달려들어 구해냈다. 부상당한 시민은 곧바로 응급차에 실려갔다.


풍문여고 앞을 지나는 일부 차량들은 전경을 보면서 '대한민국'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시민들은 환호했다.

정장 차림의 한 시민은 넋을 잃은 듯 하얀 운동화 한짝을 들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증언하면서 울먹였다.

"후퇴하며 뛰어가는 여자를 전경이 방패로 찍었다. 그 여자의 신발이 벗겨져서 한쪽 신발을 들었는 데, 그 여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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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른 글에서 '계엄이 뭐 어때서. 죽은 사람도 없는데'라던 2찍 이야기를 봤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저 사진들을요.
이명박 정권때, 계엄 없이도
시민 집회나 평화시위까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뤘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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