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030 (1.♡.59.48)
2025년 5월 2일 PM 12:45

군대 : 이게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카프 군사반란에서 나타난 것처럼, 군대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군대가 진압을 거부했기에 노동자/공무원 등 총파업으로 카프 군사반란을 겨우 막았고, 이후 파펜의 프로이센 쿠데타, 히틀러의 여러 준동에 대해 군부는 사실상 옹호하였습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이 상황에서 군대와 정부의 상호무간섭 정도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죠.

언론 :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수영복 사진입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탄광 광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기존 독일제국 엘리트층들이 매우 무시하고 싫어했죠. 언론도 이에 동참 정도가 아니었죠. 당시 기준으로 저런 민망한 사진을 계속해서 찍어대었고, 프리드리히 에버트가 사망하게 된 재판도 극우 언론사 기사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배후의 칼, 내부중상설을 들어 에버트를 반역자로 몰아붙였고, 에버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계속 재판에 참석하다 일찍 사망한 것이었죠.

사법 :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계속된 재판에 걸려넘어졌고, 재판소 판결은 배후중상설이 맞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의 직접적인 사망도 그 재판 때문이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당성마저 붕괴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치가 집권하죠. 판사들은 그 밑에서 정치범, 유대인 사형 자판기가 되어 부역합니다.

공산당 : 독일 혁명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 부부를 사망케 한 책임이 에버트에게 있기 때문에 이건 에버트 탓도 있습니다. 이건 더 거슬러올라가면 독일 전시내각에 대한 사민당의 참여도 엮여있긴 한데... 해묵은 갈등이죠. 그런데 이유가 뭐건 둘 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협력해야 했는데, 서로 전혀 협력을 안 했죠. 나중에 히틀러가 총리될 즈음 공산당은 나가리되고, 뭐 결국 과반이 안 되는 사민당이 수권법을 홀로 반대해봤자 히틀러가 총통되는 걸 막을 수 없었죠.
그 외에도 경제도 안 좋고, 외국군이 라인란트를 점령하고, 뭐 억까는 억까 다 당했으니... 그나마 바이마르 공화국이 유지된 게 더 신기한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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