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라도의 위대함
빅데이트

Lv.1 빅데이트 (112.♡.148.44)

2025년 5월 3일 AM 12:29 · 수정됨(02:16)

조회 2,317 공감 0

(참고로 전 지금 경상도 살진 않지만 경상도 사람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경북 출신이고 전체 친척이 경북/부산에 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 민주당원이고 아버지 민주당에 투표합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괜찮은 인생..)

오늘 한덕수가 광주에 가서 호남 사람이라고 외쳤나봅니다. 그런거 개무시해주는게 광주입니다. 

정규재가 정말 뛰어난 통찰 (또 헛소리도 합니다)을 보인게 있는데 광주는 전략적으로 리더를 뽑는다.

대한민국의 리더상이면 부산 사람 노무현/문재인도 발탁한다는 겁니다.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엔 경북 안동 출신의 이재명을 민다. 그런데 대구/경북은 위에서 내려준 사람을 그냥 뽑는다. 

이건 판이하게 다른 의사 결정입니다. 


역사를 보면 임진왜란, 동학 때 전라도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5.18 에서 우리 국민은 광주에서 희생하신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런 불완전한 민주주의도 그 분들 아니였으면 없는 겁니다. 

이 민주주의도 이렇게 약한데 5.18 의 그분들이 없었으면 그냥 개도국 이하로 가는 부폐공화국 직행이였습니다. 

저쪽 당의 장기집권이구요. 


시간이 되면 광주/전라도 분들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저렇게 깨어있을 수 있는가.

그 유전자가 계속 이어져온 것인가 탐구하고 싶습니다. 

댓글 (4)

  • 꼰대생각

    꼰대생각 Lv.1

    25.05.03 · 218.♡.163.123

    DNA같은게 아니고
    믿었던 자국군대의 총칼에 직접 당해봤으니까요.
    미친것들이 권력을 잡으면 나와 내가족들의 피와 살이 어떻게 터지고 찢어지고 부숴지는지, 어떤일이 생기는지 차마 말로 표현이 힘들정도로 처참한 상황을 눈앞에서 똑똑하게 봤으니까요

    경남이건 경북이건 강원도건 그동안 언론이 침묵을 지키지않고 전국방방곡곡에 끊임없이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다면 지금처럼 빨갱이종북타령에 세뇌되진 않았을 겁니다.

    명예회복이 어느정도 됬다하지만 아직도 실제 그날의 공포와 참혹함과 그이후 민주정권들어서기 전까지 가족,지인,지역민들이 겪은 차별과 고통,감시는 타지역민들이 아는것보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 빅데이트

    빅데이트 Lv.1 → 꼰대생각 작성자

    25.05.03 · 112.♡.148.44

    임진왜란에서 전라도가 그런 힘을 보인 이유가 궁금하고, 동학(이것도 강제진압)의 고통과 아픔 이후에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하는데 기간이 꽤 깁니다.
    독립운동은 대구/다른 지역도 나름 활발했습니다. 그 지역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5.18 까지 그것이 전달되었다고 해야 할지 그것이 좀 놀라운 지점입니다.
  • fixerw

    fixerw Lv.1

    25.05.03 · 222.♡.28.232

    그래서 그런가 시대와 상황이 다르겠지만 결국 민주화 운동으로 통하는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광주 지역의 시민단체분들이 나서서 적극 지지한 적이 있더군요.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15326.html
    아무래도 비슷한 아픔을 이미 겪은 만큼 공감의 깊이가 어느 누구보다 깊을수 밖에 없었을 거고요.
    홍콩분들이 인터뷰 한 내용에도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언급할때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하여 언급한 바도 있죠.
    https://m.nocutnews.co.kr/news/amp/5345192
  • 요다와우주

    요다와우주 Lv.1

    25.05.03 · 211.♡.96.118

    남한폭도 대토벌작전은 대한제국기 일제가 국내의 의병세력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펼친 군사작전이다. 호남지역은 반일의식이 강하여 의병운동이 특히 활발한 곳이었다. 1909년 통계를 보면 호남지역의 전투의병 수가 전체의 과반을 넘었다. 일제는 호남지역 의병을 완전히 진압하지 않고서는 의병 소탕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의병 1만 7,779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376명, 포로가 2,139명 나왔다. 이 작전 후 근거지를 상실한 의병세력은 만주·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이런 일도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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