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이아빠 (218.♡.142.66)
2025년 5월 4일 PM 04:07 · 수정됨(17:10)
행정부, 검찰, 사법부의 연속적 쿠데타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신앙인과 시민 사이에서 자신의 분노와 미워하는 마음에 혹, 죄책감을 느끼며 사시는 분이 있을까 하여 조금 긴 권면의 글을 올립니다.
기독교 신앙에 관심이 없으시거나 타종교이신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게시판 이용자 전체가 아닌 일부를 위한 글임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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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자들은 악인들이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니
그들이 악인들의 피에 그 발을 씻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의로운 자들이 상을 받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리라. <현대인의 성경, 시58:10-11>
교회 다니시는 분 중에 시편 58편으로 하는 설교를 들어보신 분은 드물 것입니다. 설교를 하더라도 세상의 일반적 악에 초점을 맞추어 하는 설교가 대부분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잘못 교육받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예를 들어 보자면
1.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가지는 것
2. 타인의 화와 저주를 기원하는 것
3.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시기만을 바라는 것
을 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구약을 모두 정경으로 인정하며 신약이 모든 것을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성경은 상대를 구분한다면 충분히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과 행동이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우선 시편의 수많은 시들을 보십시오. 150편의 시편 중 감사시와 찬양시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탄원시, 탄식시라 불리는 절절한 인간의 신음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의인의 고통받음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악인의 악행과 그럼에도 악인이 흥함에 대해 하나님께 성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의인에게 보상하시고 악인에게 보응하실 것을 기원합니다. 시편이 기도와 찬양의 원형이라고 할 때, 우리의 평소 기도는 오히려 시편의 분량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역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로보함에게 저주를 선포했던 이름없는 선지자부터 엘리야, 이사야, 미가, 하박국,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제1 비판 대상은 왕과 권력자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그들이 나라를 타락시키고 사회를 부패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윤석열 시대를 겪으며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수치를 모르니 그 밑의 조직원들도 수치심도 없이 행하는 것을 봅니다. 권력자들이 마음껏 부정을 저지르니 사회의 최소한이라는 도덕이 야만의 시대로 후퇴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 사회의 타락의 근본적 책임을 위정자들에게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대나, 특히 율법에도 적혀있듯이 살인은 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미디안의 여자를 품에 품고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던 사회지도층을 여자와 함께 통째로 찔러 죽인 비느하스를 하나님은 창찬하십니다. 비느하스는 이 행위로 그 후손이 대대로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것을 약속받습니다. 이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의사들과 열사들의 삶이 긍정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에 대해 분노하길 원하시며 할 수 있다면 의를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은 수많은 의로운 행동을 나타낸 자들에 대한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럼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부터 온갖 비속어를 쓰며 사회 지도층들의 위선을 지적합니다. 예수님의 지적을 찾아보십시오. 그것이 비단 신앙생활에 대한 것들만 있는지 말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에서만 통용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신앙입니다. 십계명 중 제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고 예수께서 자신은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서원한 후 부모를 돌보지 않는 바리세인들을 비판하셨던 것처럼 성경의 윤리와 신앙의 범위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어 놓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최후에 의인과 악인을 가리는 심판을 경고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구원을 판단할 수 없지만, 결국 하나님도 걸려내실 악이 이 세상에 존재함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것은 윤석열이나 조희대, 심우정이라는 자연인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도한 권력, 불의한 재판, 불의에 대한 추종, 국민 위에 군림하며 사욕을 채우려는 탐욕에 분노합니다. 저 자리에 저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자들이 앉아서 불의를 행했다면 우리는 그들을 비판했을 것입니다. 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자기와 자기 집단을 위해 남용한 대표격의 인물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당당히 저항함으로서 의를 행하고 국민주권이라는 선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기독교인이 할 것은 기도뿐이라든지, 정치적 판단은 개인의 자유라든지, 기독교인인 정치가 아니라 십자가만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실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내란을 옹호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설파하는 말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계실 것입니다. 부끄러운 선생들 밑에서도 하나님과에게로의 신앙을 지키고 계신 1찍 성도님들께 위로를 보냅니다.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들에게 저주의 시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피를 흘리기에 거리낌이 없던 자들의 피가 이 광장에 흐르기를 축원하십시오. 아무 꺼리낌없이 광장에 나와서 의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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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inn
25.05.04 · 39.♡.46.90
제가 다니는 교회의 30,40은 거진 민주당이라 스트레스없고, 설교때 엉뚱한 말 없습니다. -
BBcoder™
25.05.04 · 221.♡.162.27
저는 우리나라의 개신교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교회를 세우는게 종교개혁이거늘... 목사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자신을 인도하는 목사가 적그리스도인지 목자인지 고민조차 안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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