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출가하자 온 나라가 난리난 이유
코미

Lv.1 코미 (118.♡.4.37)

2025년 5월 5일 PM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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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가 출가하자, 아버지인 정반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합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인도에서 왕족이 출가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는데다가, 석가족의 왕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근대 전제군주가 아닌 공화정의 대통령이나 의장에 가까웠죠.

그래서 왜 나라가 뒤집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후사정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석가모니는 태어났을 때 아지타 선인의 예언이 있었습니다. 

전륜성왕이 되거나, 부처가 될 거란 예언이었죠.

그래서 정반왕은 석가모니에게 큰 기대를 품고 부처가 아닌 전륜성왕으로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죠.

중아함경 29권 유연겅을 중심으로 상황을 살펴보면 정반왕의 눈물겨운 노력이 나옵니다.

먼저 정반왕은 석가모니를 위해 계절별로 머물 궁전을 지어줬는데...

그 궁전들은 전부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한 못과 꽃이 가득한 화단으로 장식되어 있었죠.

특히 여름용 궁전의 경우에는 아름다운 기녀들로 가득 채우고 석가모니 외에 남자는 단 한명도 두지않아 현실판 하렘물을 만들어줬죠.

여기에 석가모니가 목욕할 때마다 4명이 시중을 들면서 목욕이 끝나면 항상 비싼 전단향과 새 비단옷으로 석가모니를 꾸몄습니다.

석가모니의 식사는 항상 가장 맛있는 고기가 올라갔으며 심지어 하인들조차 콩국과 거친밥이 아닌 기름진 반찬과 쌀밥을 먹였죠.

문제는 석가족의 나라는 강대국이 아니었습니다.

잘 쳐줘봐야 중견국이고, 까놓고 말하면 중소국 이하로서 당시 인도 십육대국 중에서 하위권입니다.

거기다 석가족은 기질이 거칠어 외교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불교 경전에조차 그런 구절들이 자주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석가족의 멸망도 원인이 석가족의 인성질이었죠.

그리고 석가족의 이발사였던 수드라 계급 우팔리가 출가할 때, 같이 출가하던 석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석가모니에게 "우리 석가족은 교만하니 우팔리를 먼저 출가시켜 선배로 삼아 교만함을 다스리게 해 달라"고 셀프디스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반대로 석가모니가 석가족의 성품을 알고 일부러 가장 천한 우팔리를 제자로 삼아서 겸손을 가르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튼 그런 나라에서 저런 엄청난 사치와 투자가 석가모니 한 사람에게, 그것도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도 아닌 나라에서 전륜성왕이 나올 수 있다는 예언을 믿고 투자(?)를 한 겁니다.

그런데 정작 석가모니는 출가하여 불교를 창시했으니 충격이 작을 수 없죠.

사족이지만 정치철학적으로 석가모니의 행보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정치권력이 아닌 종교의 힘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석가모니 본인이 열반시 자신의 장례를 전륜성왕의 예법대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를 것을 유언으로 남긴 걸 생각하면 틀린 건 아닐지도요...


석가탄신일이라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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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mongolemongole

    mongolemongole Lv.1

    25.05.05 · 211.♡.125.253

    합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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