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의 추억 (feat, 노가리 골목, 안동장, 보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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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반, 자주 가던 맛집 블로거의 포스팅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알게되었지요. 1996년 대학시절부터 혜화동에 살았지만 지척에 그런 해방구 같은 공간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대학때 알았다면 저렴한 술값을 친구들과 더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르더군요. (여담으로 알려주신 블로거 이름이 파찌아빠였는데, 이제 그 파찌가 성인이 되었겠지요?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지금이야 인스파, 유튜브, chatgpt가 맛집을 알려주는 시대였지만 그 때는 모든 정보는 블로거에서 나오는 블로거 전성시대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와이프 (그때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드디어 출동합니다. 을지로 3가 역에서 내려서, 3번 출구로 나가서 좁은 골목을 통과하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리고 이내 맞이한 테이블과 맥주잔의 향연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테이블, 황금색 맥주잔,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에 섞여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는 하나의 장면으로 동결되어 가끔 한 번씩 떠오릅니다.
그 시절도 가장 유명한 집은 "만선"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찍어 먹는 장이 매워서 두 어번 가다 말았고, 그 앞의 "초원", 옥토버페스트를 연상시키는 "뮌헨", 원조 "을지OB베어" 많이 갔었습니다.
그때는 주고객층이 을지로에서 일하시는 어른들, 근처 자영업자들, 택배배달원, 일용직 노동자분들, 그리고 을지로 주위 대기업 직장인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저렴하고, 얕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친구랑 맥주 두어잔 먹는데 만원이면 충분했으니까요. 그 시절 노가리 한마리 1,000원, 맥주 한 잔이 1500원이었습니다. 물론 오늘 푸지게 먹자고 작정하고 비싼 안주 시키면 그래도 제법 나오긴했죠. 그래도 시내 다른 호프집들보다는 저렴했었습니다.
여기서 프로야구도 보고, 월드컵은 물론 올림픽 경기를 대형프로젝트로 야외에서 봤습니다. 한늦은 봄, 한여름, 늦가을이 되기 전, 야외에서 응원하면서 먹는 맥주맛은 가격으로 매기기 힘든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20년 이상 단골이 되어버렸지요.
해외에 나가 있다가 한국에 들리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되었고, 지방에 살때도 서울 올일이 있으면 핑계를 대서라도 들리고 했습니다. 서울 거주시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들이대면서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홀린듯 분위기와 맥주를 즐기곤 했죠.
22년 시작된 재개발로, 이제 한 집 두 집 떠나고, 26년 마무리되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풍경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 가능하겠지요? 하긴 변화의 물결은 그 전부터 감지되었습니다. 을지로 3가가 힙지로가 되면서, 서민, 노동자, 일꾼들의 공간이 젊은 층의 핫플레이스로 바뀌었으니까요. 단명하는 바람에 그 젊은이들에게도 이 곳은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렸네요.
하여간 노가리 골목, 고마웠어.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많은 위안이 되었어.
##한번씩 을지로 근처를 지나갈때 마다 그 생각이 나고, 거길 가면 들렀던 안동장, 보건옥 김치찌개도 생각납니다.
온더로드님의 댓글의 댓글
온리재명님의 댓글의 댓글
안동장 처음 가본게 5년전이라.. 그 전은 모르긴 합니다.. ㅎㅎ 근데 요즘도 사람들이 줄서서 드시더라구요..
은주정은 가끔 가는데, 다음에 보건옥도 한번 들려보려고 합니다. ^^
concept님의 댓글

온리재명님의 댓글
개인적으로 안동장은 왜 줄서서 먹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보건옥은 처음 들어보는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