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리언 (172.♡.206.201)
2024년 3월 31일 AM 07:22 · 수정됨(08:03)
미국이 일본에 두 발의 원폭을 투하하자, 러시아에서는 '이건 우리를 겨냥하여 협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정설이었다고 당시 KGB 요원에서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큐와 인터뷰 등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소련은 1949년 8월 29일에야 서방 쪽 빨대들이 공급한 제조법 정보의 도움으로 첫 원폭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불과 10개월 전입니다.
미국도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서 많이 만들지도 못한 원폭을 러시아가 한국전 당시까지 몇 발이나 제조했을지 ... 극소수에 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루먼이 오펜하이머에게 퀴즈로 알려준 러시아의 원폭 개발에 대한 조처 의사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스탈린으로서는 당연히도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었을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해도 중과부적인 상태를 못 면할 소련이 공격 받았을 경우 방어를 넘어, 아예 선공을 가하는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이 의문을 풀기까지 꽤 걸렸습니다.
장진호 포위 위기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 사이에 담판까지 있게 만든 2차대전 중에 있었던 파트너쉽.
그것은 바로 1943년 8월 19일에 체결됐었던 퀘벡협정이었습니다.
위키 기술에는 놀랍게도 이 협정이 체결된지 불과 2주만인 9월 4일에 모스크바 군정보국에 협정의 전문이 보고된 것으로 나옵니다.
스파이 푹스의 소행이 아닌가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협정문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조항은 바로 3조로서, "당사국은 동의 없이 원자탄을 기타 국가를 대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장진호 포위 및 전멸 위기에 따라 미국이 중공군에 대한 핵공격 의사를 천명했을 때 영국 수상이 워싱턴으로 달려가 발동하여 핵사용 반대 의사를 제시함으로써 현실화된 것입니다.
스탈린은 이것을 이미 알고서 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트루먼은 이 사실을 모르고서 전쟁에 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트루먼은 나중에 김종필이 박정희 쿠데타 후 외유 중 미주리에 낙향한 그를 찾아왔을 때 "한국 통일 시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 영국인들 때문에 그러게 됐다"는 발언으로 이러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조갑제, "박정희전기").
문제는 그 동안의 한국이나 미국의 시각으로만 이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과거도 미래도 제대로 이해하고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태는 원자탄 출현 이후 미국 정부가 갑자기 갖게 된 글로벌 핵독점의 야망이 무위로 끝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야망은 멈추지 않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까지 그 몸부림을 계속했습니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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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adliar
24.03.31 · 172.♡.211.97
또 영국이군요 ㅠㅠ - 볼
볼테리언
→ badliar 작성자
24.03.31 · 162.♡.90.21
미국과 영국의 치열한 암투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장진호 위기 당시 미국이 영국에게 한 방 맞은 것이라면, 거기에는 또 다른 놀라운 옛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추후에 다루겠습니다. -
Bbadliar
→ 볼테리언
24.03.31 · 172.♡.211.97
기대됩니다~ - 아
아이리
24.03.31 · 172.♡.223.25
오 재밌네요. - 볼
볼테리언
→ 아이리 작성자
24.03.31 · 172.♡.207.138
소설이 아니지만 ... 사실 국제정치학자나 역사가가 이미 했어야 할 일인데, 당시와 그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첨예한 분쟁과 이해관계로 인해 의식적으로 통제되고 철저하게 감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또, 이 진실이 아닌 대체 픽션이 지배해온 현실에 맞설 용기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현실의 권력 관계가 만들어낸 왜곡된 사실관계 또는 허구 속에서 다들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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