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5월 16일 PM 12:03 · 수정됨(15:31)
익산 미륵사지 석탑 얘기도 나오고 이리시 얘기도 나오니까 어머니 생각이 나네요.
오늘이 어머니 기일이라 연가를 내고 제사음식 재료 다듬다가 잠깐 엉덩이 붙이고 글 씁니다.
저희 어머니 고향은 전주시 지금의 한옥마을 부근입니다. 외할아버지 집안이 조선시대 내내 그 동네에 살았어요.
전주 이씨기는 한데 태조의 5대조에서 갈라진 집안이고 족보를 보면 진사 이상 뭘 한 사람도 없는 집안이라고 외삼촌이 그러셨어요. 그래서 돈으로 족보를 산 집안이 아닌가 하기도 하셨죠. 아무튼 전주에서 내내 살다가 외할아버지 형님이 논산 연무대 황화로 이사하셔서 양조장을 하셨어요. 황화양조장이라고 연무대 사는 옛어른들은 많이들 아시죠.
반면에 외할머니 집안은 익산 안에 있는 여산에서 내내 살던 여산 송씨 집안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 사촌 언니, 외할머니의 조카가 가람 이병기 선생 며느리였어요. 그래서 항상 어머니가 가람 이병기 선생 얘기를 하시곤 하셨죠. 가람 이병기 선생 댁도 여산이었고, 나중에 노년에 내려와서 가람 선생이 사셨다고 해요. 어머니도 사촌 언니 보러가서 인사드리곤 했다고 하죠.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둘이서 지금의 여산휴게소 뒷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뼈대 있는 양반 집안이라고 굉장히 거만했던 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저희 아버지 집은 아예 뼈대 이런 거 아예 없는 집입니다). 어차피 돈 있는 집과 양반 집의 정략 결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아들을 낳았다가 죽자 바로 딴 살림을 차리셨다고 합니다. 딴 살림도 여러 곳이었어요. 큰외삼촌은 둘째 할머니, 나머지 외삼촌과 이모들은 셋째 할머니에게서 태어났어요. 외할머니는 이혼을 요구하는 할아버지에게 이혼을 거절하시면서 다른 아이들 호적에 올려주는 대신 아이를 하나 낳게 해달라고 요구하셨대요. 그렇게 뒤늦게 낳은 딸이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방탕한 생활로 선조가 물려준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남은 재산을 거널낸 건 외삼촌 대학 등록금 마련한다고 건설업 하는 친정 회사에 투자해 몽땅 날린 외할머니였지만 말이죠.
어머니를 뺀 나머지 형제들은 전주시 효자동에서 살았고, 어머니는 할머니랑 여산에 살면서 방학 때 할아버지 뵈러 다녀왔다고 하시더군요. 할머니랑 둘이서 살아서 어머니는 무척 외로우셨대요. 할머니는 그리 쾌활한 분이 아니고 엄한 분이셨구요. 그래서 어머니가 기억하는 여산, 익산은 그리 즐겁지 않았어요. 제게도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저희 누나 아들들이 모두 익산시에서 사니 아직도 제 삶과 연결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카애들이 다 큰 이후에 익산에서 결혼하고 살 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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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들꽃푸른들
25.05.16 · 59.♡.254.31
저는 친정이 정읍이에요. 익산 보다는 "이리"가 더 친숙한 세대입니다. 대학 다닐 땐 기차가 익산에 도착하면 아! 집에 다 왔구나,했네요. Ktx 생긴 이후 익산은 환승하기 위해 내리고 타는 곳이었네요. 엊그제도 익산역 플랫폼에 서 있었어요. 여산은 여산 휴게소로 익숙한 곳이고요. 전주 서울 고속버스는 왜 항상 여산 휴게소에서 쉬었을까요? 나고 자라고 학교 다닌 지역인지라 항상 그리운 곳입니다. -
자자청비
25.05.16 · 121.♡.247.79
익산이 고향인데 이제는 이리라 불러야 되네요 ^^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올 만큼 그리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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