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품] 1900년대 대한제국 문화를 소개한 수집카드 #1
LG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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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0일 AM 11:51 · 수정됨(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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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예전에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던 글이지만, 1900년대 대한제국 시기의 건물, 인물, 풍속 등이 담긴 수집 카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해당 카드는 1865년 영국에서 설립된 리빅(Liebig) 식품회사가 발매한 수집용 카드 6종입니다. 리빅은 다양한 주제로 수집 카드를 제작하였으며, 이 중 1900년부터 1906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대한제국 소개 카드 6종을 이번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제 카드를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대한제국 군인과 서울 황궁의 모습


첫 번째 카드입니다. 카드에는 프랑스어로 설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궁궐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해당 설명에는 "En Corée Palais impérial de Séoul(대한제국 서울의 황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묘사된 건축 양식은 우리나라 전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좌측에는 "Soldat coréen(대한제국 군인)"이라는 문구와 함께 군인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묘사 역시 고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카드 속 군복은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으나, 실제 대한제국 군인의 복장은 붉은색 또는 짙은 남색 계열이었습니다.


2007년 10월, 순종 어차 행렬을 재현할 당시 복원된 대한제국 군복을 착용한 근위대의 자료사진을 보더라도, 붉은색이 주요 색상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카드에 묘사된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은 다음 카드로 갈수록 점점 더 실제와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또한 카드 하단에는 "Véritable Extrait de Viande Liebig"라고 쓰여 있는데, 영어로는 "Real Meat Extract Liebig", 즉 '리빅의 진짜 소고기 추출물'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단 우측에 그려진 유리병 속 내용물이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빅, 특별한 식품회사의 시작 (Liebig's Extract of Meat Co.)

여기서 잠시 카드 제작사인 리빅 식품회사에 대해 소개드리겠습니다.

리빅은 1865년 독일의 화학자이자 유기화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유스투스 폰 리비히와 벨기에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조르주 기베르가 함께 설립한 회사로, 일반 식품회사와는 달리 특별한 제품을 생산하였습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제품은 쇠고기를 농축하여 만든 추출물이었는데, 오늘날의 미원이나 다시다, 치킨스톡에 사골육수 개념이 더해진 식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 이름 '리빅'은 설립자인 리비히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리비히는 1840년대 경제적으로 고기를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영양소가 농축된 쇠고기 추출물 생산 공식을 개발했습니다. 한편 동업자인 기베르는 우루과이에서 소를 도축한 뒤 남는 부산물들이 대부분 폐기되는 상황을 보고, 리비히와 협업하여 이 자원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865년, 두 사람은 영국 런던에서 Liebig’s Extract of Meat Co.(LEMCO)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리빅의 소고기 추출물은 수프나 그레이비 소스의 원료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사골곰탕이나 쇠고기 다시다에 비견되는 재료라고 볼 수 있던 제품입니다. 이 제품은 특히 고기를 자주 먹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영양을 보충해주는 식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는 Oxo라는 상표의 쇠고기 육수 큐브 형태로도 판매되었습니다.


리빅의 트레이딩 카드 제작

리빅은 1872년부터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트레이딩 카드를 함께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요리법이나 음식 메뉴를 주제로 한 카드가 제작되었으며, 이후에는 세계 각국 소개, 역사적 사건, 희귀 동식물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게 됩니다.

이러한 카드는 리빅 제품을 판매하던 소매점을 통해 배포되었고, 점차 제품 내 쿠폰을 수집해 교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카드는 생생한 색감과 묘사를 갖춘 일러스트로 제작되었으며,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책을 구입하기 어려웠던 가정에서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야기가 다소 옆으로 샜지만, 다시 카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카드 우측 하단에 적힌 "Voir L’Explication au Verso"라는 문구는 ‘뒷면 설명을 참조하세요’라는 뜻입니다. 이제 카드 뒷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뒷면에는 작은 글씨로 가득 차 있는 설명이 인쇄되어 있으며, 6장의 카드 모두 뒷면에 리빅의 소고기 추출물 광고와 함께 대한제국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 대한제국 관련 부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뒷면에는 빼곡하게 글씨로 채워져있네요. 6종의 카드 모두 뒷면에는 리빅의 쇠고기 추출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대한제국에 관한 안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한제국에 대한 설명 부분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쓰여있는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En Corée - Palais impérial de Séoul.

대한제국 - 서울 황궁.

C'est an nord de la vilie que se trouvent les constructions étendues qui forment la résidence impériale laquelle occupe une superficie de 2½ kilométres carrés et est entourée de murs ayant jusqu' à 12 mètres de hauteur; le Palais ne contient de remarquable que la salle des Audiences et la salle des Aïeux. l'empereur actuel de Corée qui occupe le trône depuis 1864, s'appelle Li-Thui. L'armée régulière compte 20000 hommes équipes comme les Japonais et exercés par des instructeurs étrangers. Les armoiries de la Corée consistent en un éeu rond portant deux spirales entrelacées de mêne grandeur, l'une rouge, l'autre bleue.

황궁에 위치한 황실 주거지는 광범위한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2.5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차지하고 높이가 12 미터에 달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1864년부터 황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이름은 Li-Thui입니다.(고종의 이름인 李㷩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추됨) 일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교관에 의해 훈련되는 대한제국 정규군은 약 2만 명 규모입니다. 대한제국의 국장은 같은 크기의 두 개의 엇갈린 나선으로 구성된 둥근 달 모양이며, 하나는 빨간색, 다른 하나는 파란색으로 구성됩니다.


대한제국의 국장, 태극 문양에 대한 설명도 이채롭고, 고종의 실제 이름을 언급한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참고로 조선 왕조의 고종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이형(李㷗)은 이름을 부르는 발음에 이견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자 㷗을 어떻게 읽느냐에 대한 부분이었는데요.

대한제국 시기를 지나 일제강점기 시절을 거치면서, 㷗이라는 한자 자체는 피휘(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의 경우, 공경하는 의미에서 함부로 쓰지 못하나 그로 인해 실생활에 불편함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용 빈도가 극히 낮은 한자를 채택하는 것)를 위해 잘 쓰이지 않는 글자여서 일본에서는 이를 일방적으로 熙(희)로 대체했고, 이에 고종의 이름을 이희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종 때 지은 열성어휘(1897-1899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측되는 책으로, 조선 역대 왕의 이름 및 자를 기록한 책)에서 고종의 이름 한자인 㷗의 읽는 음을 "형"으로 적었고, 대응하는 음의 한자로도 逈(멀 형)을 써두었기에 오늘날 고종의 이름을 읽는 법은 이형이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2 대한제국 선비와 제물포 항구의 모습이 담긴 카드


두 번째 카드는 인천의 옛 명칭인 ‘제물포 항구’를 묘사한 카드입니다. 과연 당시에도 현대적인 지붕과 색색들이 화려한 기와가 있었을까요. 솔직히 역사적인 고증을 제대로 하진 않아보입니다.

우측에는 갓을 쓴 조선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카드의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En Corée - Port de Chémulpo.

대한제국 - 제물포 항

Chémulpo situé sur la côte occidentale de la Corée, à l'embouchure méridionale du fleuve Than, est le plus important des trois ports à traité de ce pays. Il est, en même temps, le port de Séoul, la capitale, à laquelle il est relié par un chemin de fer. La ville comprend des quartiers japonais, chinois et européen; sa population compte à peu près 20,000 habitants.

제물포(지금의 인천 중구 일대의 항구)는 대한제국의 서해안, 탄강(한강의 오기인듯 합니) 남쪽 어귀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제국의 조약항 3곳 중 가장 큰 항구입니다. 동시에 철도로 연결되어 있는 수도 서울의 항구이기도 합니다. 제물포에는 일본, 중국 및 유럽 거주구역이 있으며 약 20,000명의 인구가 거주합니다.

추가로 설명드리면, 제물포는 1883년 1월 1일 부산과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된 항구입니다. 이곳에는 무역을 위한 해관(세관)이 설치되었고, 외국인 전용 조계가 형성되었습니다.

1883년 9월에는 일본 조계가, 1884년 4월에는 중국 조계가, 그리고 10월에는 유럽 각국 조계가 설치되었습니다. 카드 속 설명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대체로 잘 부합합니다.


#3 대한제국 귀부인과 서울 거리의 모습이 담긴 카드


세 번째 카드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왜곡된, 또는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이미지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선 왼편에 묘사된 귀부인은 중국 남부 민족나 동남아시아의 전통 복장에 더 가까워 보이며, 우리나라 귀부인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오른쪽에 그려진 서울 거리 역시 초가 지붕 일부를 제외하면 붉은색 기와집으로 채워져 있어, 한국보다는 중국 건축 양식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카드 뒷면에는 서울에 대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n Corée - Séoul.

대한제국 - 서울.

Séoul en chinois Hang-Tching, qui se trouve au fond d'une vallée, est la capitale le la Corée depuis 1392. La ville s'étend sur 5 kilomètres en longueur et 4 et demi en largeur; comme les villes chinoises elle est entourée d`un mur ayant de 4 à 8 mètres de haut, pereè de quatre grandes portes et de quatre petites. A l`exception des deux rues principales, Séoul n`a que des ruelles étroites et malpropres, on n'y voit aucune construction remarquable, sauf peut-être le chateau imperial et les ruines d'une ancienne pagode.

중국어로 '항칭(한성을 의미하는 듯)'인 서울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1392년부터 대한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도시는 길이 5킬로미터, 너비 4.5킬로미터에 달하며, 중국 도시들처럼 높이 4미터에서 8미터 사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네 개의 큰 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이 있습니다. 두 개의 주요 거리를 제외하면 서울은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들로 가득하며, 아마도 황궁과 옛 탑의 폐허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건축물이 없습니다.

카드에서 설명한 두 개의 주요 거리는 조선 시대 서울을 관통했던 가장 큰 길인 종로와 남대문로를 의미합니다. 또한, '옛 탑의 폐허'로 언급된 곳은 바로 원각사지(현재의 탑골공원)이며, 이 '옛 탑'은 탑골공원 내에 위치한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가리킵니다.


현재 유리 보호각으로 씌워져 보호받고 있는 원각사지 십층 석탑은 대한민국 국보 제2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원래 고려시대 창건된 흥복사였다가 1467년 세조의 명에 따라 원각사가 건립될 당시 함께 세워진 석탑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석탑은 화강암을 주재료로 사용하지만,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전체적인 구조나 양식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경천사지 십층석탑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1514년(중종 9년)에 원각사가 헐리면서 석탑만 남게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년)에는 총세무사(개항장의 해관을 지휘·관리하던 직책)로 재직 중이던 영국인 존 맥리비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의 건의에 따라 절터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오늘날의 탑골공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쓰다보니 세번째 카드까지 소개하는데 그치네요. 네 번째 카드부터의 내용은 다음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댓글 (2)

  • Gesserit

    Gesserit Lv.1

    25.05.20 · 223.♡.87.254

    3번 사진은 숭례문 위에서 찍는 남대문로 사진과 비슷한 구도네요.
  • 任之自然

    任之自然 Lv.1

    25.05.20 · 116.♡.130.9

    후속 글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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