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어 강민형 선생을 기리며
aicasse

Lv.1 aicasse (183.♡.111.234)

2025년 5월 30일 PM 10:51 · 수정됨(05. 3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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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구글 검색을 했는데, 오늘이 강민형 선생의 20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실제로 뵌 적이 있는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분의 글에 나름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개인적으로는 비록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선생님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오늘날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원조 격인 BBS로 'kids'라는 곳이 있었는데 (하이텔 같은 곳이 있긴 했지만, 거긴 '인터넷' 커뮤니티는 아니었으니까요), 선생은 거기에 '스테어'라는 아이디로 글을 쓰셨습니다. 의대 출신 공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해서 성서를 원어로 읽을 수 있었고, 기독교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멈추지 않았으나, 또한 따뜻하고 위트있는, 그리고 지적으로 흥미로운 글들을 꾸준히 쓰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부모의 영향으로 교회에 다니다가 성인이 되어 무신론자가 된 경우인데, 선생의 글은 거꾸로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신약성서를 읽고 싶다는 (종교적인 입장이 아니라, 흥미로운 텍스트로서)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막상 생업을 신경쓰다보니 그런 희망을 품기만 하고 제대로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서 좀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어쨌든 현대 그리스어를 몇년째 독학으로 공부하고는 있습니다. 사실 성서의 그리스어는 현대 그리스어가 아니라 그보다 옛날 형태의 Κοινή라서 번지수를 잘못 찾은 셈이기는 한데, 여기서부터 시간을 거슬러올라가서 성서의 그리스어, 고전 그리스어, 호머의 그리스어,... 이렇게 거꾸로 가보자는 생각을 마음에만 품고 있는데 과연 죽기 전에 그게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2005년에, 선생의 거짓말 같은 갑작스런 죽음은, 비록 그를 한번도 직접 뵙지 못하기는 했으나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선생님으로 생각하던 분이 이젠 세상에 없구나...


20주기가 얼마 남지 않아, 세상에 그분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남기고 싶어서 짧게 씁니다.

댓글 (3)

  • 이재아빠

    이재아빠 Lv.1

    25.05.30 · 122.♡.131.105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저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kids에서 그 분의 글을, 그리고 그 분 주변 분들의 글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마도 그 분을 기억하는 분은 별로 없겠지만, 이렇게 언급하시는 분이 있으시네요.
  • D

    dukpals Lv.1

    25.05.30 · 115.♡.39.190

    kids... ara, csqueen과 더불어 90년대 중후반 제 20대 대학원 시절 삶의 낙이었던 bbs네요. staire 강민형님 기억합니다. 서울대 의대, 기설. 어나더 레벨. 찐 박학다식. 가슴찌릿찌릿 하며 읽던 연애얘기.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RIP.
  • T5.3

    T5.3 Lv.1

    25.05.31 · 183.♡.59.124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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