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6월 1일 AM 11:55 · 수정됨(14:52)
그의 눈에서 경멸과 분노를 느꼈어요.
비판이나 조롱과는 다른 진심이었죠.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의 배신과 변절에 대해 그동안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겠죠.
자기 과거에 대한 부정이자 같이 겪었던 고난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그러나 자기 계급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모습에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배신과 변절도 예의를 갖춰해야지, 조롱까지 할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인지 눈에서 정말 분노와 경멸이 느껴졌어요.
경험 많고 똑똑한 그가 자신이 한 말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 지 모를 리 없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걸 각오하고 그동안 묵혀뒀던 속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봅니다.
저희 아버지는 화학공장 노동자로서 노동자 계급 의식이 뚜렷하셨지만,
당신 아들만큼은 공장 밥 안 먹고 서울대 가서 출세했으면 하셨죠. 서울대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어서 저는 서울대 가는 게 제일 싫었어요.^^ 들어갈 실력도 없으면서 이런 말 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서 제가 중학교 마치고 서울공고에 가서 졸업 후 울산 화학 공장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까 반대하셨어요. 담임이야 이게 무슨 소리냐며 난리가 났고. 아버지가 워낙 반대하셔서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들어가서 공부를 안했어요. 그러다 물론 고3 되어서는 했지만.
저는 아버지를 보면서 선험적이고 정형화된 노동자계급 의식을 믿지 않았어요. 막스와 레닌이 무슨 말을 하던지 태생적 노동자들이 가진 욕망이란 게 있는 거니까요. 계급의식을 선험적으로 정의하는 건 경험 없는 학생 출신이나 이론가만 하는 짓이라구요. 노동계급이 왜 당을 배반하는 지 욕망을 빼놓고 얘기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죠.
그러나 노동자의 욕망을 이해한다쳐도 연대의식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해고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공장에 취직할 수 없어 서을에 오셔서 온갖 일을 하며 저희를 부양하셨어요. 그떄 구로공단 근처에 살았는데 애들이 노동자들을 공돌이, 공순이라는 말로 놀리면 노발대발하셨죠. 선험적 노동자 계급의식이란 없지만 노동자의 경험과 연대의식이라는 건 있는 거죠. 그걸 부정하고 조롱했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덤에서 일어나 노발대발 할 일이었습니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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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철벽뮐러
25.06.01 · 221.♡.67.203
2번후보님 젊은시절 노동운동 할때는 연대의식가지고 하시긴 했는지나 궁금합니다. 앞서서 연설할때 우러러보는 동지들 시선만 즐기고 나이들어 먹고 땡으로 변절해버린 걸지도 모르죠. -
홍홍성아재
→ 철벽뮐러 작성자
25.06.01 · 112.♡.175.67
그 시절 한국의 레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무척 많았죠. 소련이 붕괴한 이후 다들 고꾸라졌지만. 오히려 나는 레닌같이 뛰어난 사람은 못돼 하면서 몸빵 하던 사람들이 오래 버텼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으니. -
철철벽뮐러
→ 홍성아재
25.06.01 · 221.♡.67.203
그래서 그렇게 먹고땡하고 돌아서신 분들중에 헛똑똑이가 많은것인가 봅니다. 소위 '학벌좋은 빨갱이' 들은 자기들이 마르크스보다 똑똑한줄 알았나봐요 -
달달과바람
→ 철벽뮐러
25.06.01 · 121.♡.187.142
원래부터 권력을 좇는 엘리트주의에 찌든 인간이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본인 스스로도 지각하지 못했을 수 있겠지만요. -
홍홍성아재
→ 달과바람 작성자
25.06.01 · 112.♡.175.67
저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가장 열심히 한 자가 돌아서면 가장 극렬한 반대자가 되는 법입니다. 왜 돌아섰는가가 논의의 핵심이겠지만, 고문에 의해 자신과 가정이 피폐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대중에 대한 배신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바뀌는 걸 결코 용인하지 않았던 대중들을 위해 왜 내가 희생해야 하는가. 오히려 니깟 놈들 내가 밟으면서 살리라 그럴 수도 있죠. 그게 아주 훌륭한 세상인식이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
MMoonKnight
25.06.01 · 58.♡.72.219
대부분의 사람(그렇지 않은 정말 소수의 성인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은 본인의 유리한 대로 방향을 잡기 마련이라 변절을 하는것도 도덕적인 잘잘못을 떠나서 이해는 합니다
다만 이게 적극적인 변절이냐 소극적인 변절이냐도 따져야겠죠
"양심은 허락하지 않지만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변절했다 하지만 동지를 해하거나 적을 유리 하게 하지는 않고 가만히 있겠다" 라고 한다면 이해의 영역에서 넘어가 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제가 50이 넘도록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변절을 하면 어제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들 등에 칼을 꼽고 이적행위를 당연한 듯 하고 그걸 그들의 논리로 정당화 시키는 그런 놈들...
마치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심장에 칼을 꼽고 일제를 대변하던 매국노 놈들과 하나도 다를바 없는 놈들이죠
조롱당하고 경멸당하고 더 나아가서 백주대낮에 대로에서 돌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
담담벼락을쳐다보고
25.06.01 · 211.♡.108.39
사람 정말 안 변하는데... 죽을 위기에서는 변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안 변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대로 입니다.
가끔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평생을 망나니 금쪽이로 살고 계십니다. - 멸
멸굥의횃불
25.06.01 · 121.♡.110.4
정작 마르크스와 레닌은, 괴테가 '파우스트'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빌려 언급한 다음 경구를 가장 좋아했다고 하죠. 그 엄혹했던 19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을 풍미했던 활동가들이, "위대한 령도자 레닌 동지께서는 제x차 전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소련공산당의 교조가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일상을 온몸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과 같이 추한 몰골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른 것은 인생의 황금나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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