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스마트 헐크라는 마블의 황당한 행동을 보고 만들어봤습니다.
F3YNM4N

Lv.1 F3YNM4N (119.♡.201.217)

2025년 6월 10일 PM 09:05 · 수정됨(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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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 Bruce


프롤로그: The Silence After

나는 두 존재를 하나로 만들었다.

머리는 배너, 몸은 헐크.

사람들은 그걸 통합이라 불렀고,

나도 그걸 성공이라 믿었다.

계산은 정확했고, 실험은 안정적이었고,

거울 속 나는 꽤 괜찮아 보였다.

뇌세포는 춤췄고, 근육은 웃었지.

단 하나.

소리가 없었어.

그 무지막지한 고함.

“배너 화났다!” 하고 쏟아지던 분노.

그게, 완전히 사라졌더라고.


솔직히?

처음엔 좋았어.

평화로웠고, 조용했고,

일정도 잘 맞았지.

코로나 이후처럼.

근데 문제는…

그 조용함이

너무 오래 가는 거였어.

그때부터 이상했어.

분노가 와도 몸은 안 반응하고,

공포가 와도 심장은 그저 뛰기만 했지.

난 매뉴얼대로 웃었고,

헐크는 그냥 조용히 있었고,

우린 서로를 깨우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

그게 통합이 아니라, 사라짐이었다는 걸.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래.

헐크는 죽은 게 아니었고,

나도 살아 있던 게 아니었어.

우린 그냥, 조용히 실종된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조용한 산속 연구실에서

가끔…

손끝이 떨려.

꿈틀거리지.

녹색 감각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거지.


나쁜 느낌은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느낌이지.


그래서 이제

나는 그 조용함을 깰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에 그가 다시 고개를 들면…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이번엔

같이 눈 떠보려고.


[거울 속 배너의 그림자,

그 뒤에 헐크의 실루엣이 천천히 겹쳐진다]

“이젠 나도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EPISODE 1 – Left Behind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스마트 헐크였을 때는 조용했다.

웃었고, 계산했고, 싸움도 했다.

박수를 받을 만큼 효율적이었고,

기괴할 만큼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그건 이상한 평온이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이제 괴물도, 고통도 없다”고 했지만

정작 그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웃긴 했지만, 안에선 아무도 없었다.

브루스 배너는 스마트 헐크의 시절을 ‘죽음 없는 장례식’이라 부른다.

누가 죽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두 사람은 모두 없었다.


지금은 산 속 연구소에 있다.

도시와 멀고, 감정 자극도 없고,

무엇보다 누구도 묻지 않는다.

“그 초록색 친구는 요즘 안 나와요?” 같은 질문도 들리지 않는다.

커피를 내렸다.

물 온도가 91도를 넘기자 그는 불을 껐고,

드리퍼 안에서 내려가는 액체를 멍하니 바라봤다.

자신의 감정처럼, 조용히 가라앉는 검은 액체.

노트에 오늘 날짜를 적고, 그 아래에 단 한 줄을 썼다.

“감정 반응 없음.”


긴급 통신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울렸다.

근처 도시, 감마 에너지 기반의 생체 폭주.

현장에선 히어로 둘이 무력화됐고

“헐크 가능 여부 확인 요청”이라는 문구가 딸려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커피를 들이켜더니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헐크 없이 가보지.”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몇 개의 차량이 파괴돼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물었다.

“혹시… 그분도 오시나요?”

브루스는 잠시 멈칫했다.

“…오늘은 박사만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웃음처럼 가볍지만, 어딘가 무겁게 들렸다.

자기 자신만 아는 대답의 무게였다.


괴생물은 사람의 감정에 반응해 변이했다.

분노가 커질수록 더 자랐고,

두려움엔 광폭화됐다.

브루스는 접근했다.

그는 분노를 느꼈고, 두려움을 목격했고,

순간, 헐크가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울렸다.

손끝이 저렸다.

팔뚝의 근육이 단단히 붙었다가 다시 풀렸다.

하지만 헐크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기척만 지나갔다.

마치 안부 인사처럼.

브루스는 아무 말 없이 그 괴물을 손으로 내리쳤다.

손이 부러질 듯 아팠지만

그는 넘어지지 않았다.


현장이 정리되고, 시민들이 안전해졌을 때

누군가 다가와 물었다.

“지금… 헐크 되려다 멈추신 거예요?”

브루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요즘은… 되도록 덜 어지럽게 살고 있어서요.

아무리 봐도, 변하면 바지가 또 찢어지거든요.”

웃긴 얘기인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도 웃지 않았다.

그저 말했을 뿐이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산으로 돌아와 노트를 폈다.

“감정 반응 발생.

헐크 기척 감지.

발현 없음.

내가 먼저 멈췄다.”

조용한 방 안에서,

그는 거울을 오래 들여다봤다.

눈에 반짝인 건 빛인지, 잔여 감정인지

혹은 아주 작게 웃고 있던 헐크의 흔적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떠난 게 아니었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불러줄 날을.”



EPISODE 2 – Measured Strength

(그 힘은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유는 사라졌다.)

그는 요즘, 새벽에 일어난다.

과거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활 루틴을 헐크가 방해했었다.

이젠 방해받을 일도 없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기계적인 아침.

커피를 내리고, 근력 테스트 장비에 올라간다.

감마 수치는 낮고, 근력 수치는 여전히 높다.

누군가는 이걸 “통제의 성공”이라 부를 것이다.

그는 그냥, 메모장에 이렇게 적는다.

“감마 반응 없음.

신체 능력 안정화.

감정 반응 없음.

의미 없음.”

마지막 줄은 쓰다 지운다.

지운 자국이 진하게 남았다.


그날 오후, 연락이 왔다.

근처에서 감정 반응 기반 괴생명체가 출현했다는 보고.

도심 구역, 히어로 둘이 기절했고, 구조 활동은 중단 상태.

정부 요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 초록색 분도 함께인가요?”

그는 피식 웃었다.

“오늘은 그보다 좀 더 조용한 사람이 갑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감정 자극에 반응하는 생명체는 사람들의 공포를 빠르게 빨아들이며 확장하고 있었다.

그는 뒷골목을 돌아, 철문을 맨손으로 열었다.

근육이 튕겼고, 손등에 잠깐 녹색 실핏줄이 번졌다.

누구도 못 봤다.

그는 짧게 속삭였다.

“봐.

나도 이젠 너 없이 할 수 있어.”

생명체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분노 파동이 튀었다.

심장이 두 번 더 빨리 뛴다.

그는 숨을 내쉬며 땅을 움켜쥔다.

팔의 힘줄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피부색은 여전히 인간.

그는 몸을 날려 괴물을 땅에 찍어눌렀다.

헐크 없이도 가능한 일이었다.


작전이 끝나고 누군가가 물었다.

“박사님...

방금 변하시려다 멈추신 거죠?”

그는 손에 박힌 작은 상처를 바라봤다.

그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이젠 통증도 거의 없다.

“요즘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전부 괜찮더라고요.

...거의 전부.”

그는 웃었다.

입꼬리만 웃었고, 눈은 무표정했다.


밤. 연구소.

거울 앞.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가 문득 시선이 멈춘다.

거울 속의 자신.

절반은 익숙한 얼굴인데,

절반은 어딘가 깊이 어둡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가 깜빡인다.

초록색.

그는 멈췄고, 거울은 웃지 않았다.

“넌 나였고,

난 네가 되지 않으려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선…

누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Young Avengers 중 한 명.

감정 통제가 무너졌고, 위험 반응이 발생했다.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메시지를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

답장을 쓰지 않고 창을 닫았다.

“감정을 아예 느끼지 않는 사람이

조언을 하는 건…

그건 그냥,

로봇이 코치하는 거지.”


그날 밤, 그는 방음 실험실에 들어갔다.

빛도 없는 공간.

그는 심박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을 하나씩 틀었다.

과거 뉴스 영상.

헐크가 도시를 파괴하던 장면.

사람들이 소리치던 목소리.

“괴물이야!” “배너를 죽여!”

손끝이 떨렸다.

팔이 부풀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았다.

“예전엔,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네가 먼저 나왔잖아.”

“지금은…

내가 불러도,

왜 대답을 안 해?”


정적.

심장소리.

그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가 푼다.

그때 벽 너머에서 아주 작게,

누군가가 웃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목소리는 자신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전엔 그가 날 대신해 나왔지만,

이젠 내가 먼저 그를 인정해야

비로소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내 감정에게.”


EPISODE 3 – The Threshold

(문턱은 넘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것이다.)

꿈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허물어진 도시.

하늘은 탁한 녹색.

공기는 정지된 듯했고, 바닥에 깔린 잿빛 먼지가 발끝마다 쌓여갔다.

그리고 그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것은 있었다.

헐크는 거기에 있었다.

눈동자는 식지 않았고, 호흡은 천천히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전과 달랐다.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생각보다 작고, 낮고, 조용했다.

“왜 이제 와서 불러.”

브루스는 대답하지 못한 채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베개는 젖어 있었고, 숨은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은 익숙했고, 눈빛도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데 목 옆의 근육 한쪽이

자신의 통제 없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거울을 닫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 거기 있구나.”

말은 작았지만, 방 안에 울렸다.


오전엔 실험기록을 돌려봤다.

어젯밤 감정 자극 실험을 진행하면서 녹화한 영상이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본 화면 속엔,

분노 자극이 들어온 순간

자신의 눈동자가 녹색으로 번뜩이고 있었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비웃듯 올라가 있었다.

그는 정지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건 자신이 아니라,

그였다.


Young Avengers에게서 연락이 왔다.

감정 폭주 문제로 고통받는 팀원이 있었다.

도움을 요청받았고, 이번엔 직접 만나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정이 무너질 것 같을 땐,

어떻게 하셨어요?”

브루스는 잠시 입을 닫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도망쳤어.”

“그리고요?”

“그리고,

도망이 너무 길어져서

감정이…

나 없이도 스스로 걷기 시작했지.”

말은 이해되지 않는 듯했지만,

상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브루스는 그제야 아주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젠,

감정을 쫓는 쪽으로 돌아서려 해.

한 번쯤은

내가 선택해야 하니까.”


해질 무렵, 그는 숲길을 걸었다.

나뭇잎은 바람 한 점에도 흔들렸고

자신의 발걸음은 놀랍도록 가벼웠다.

하지만,

그 뒤에서 ‘쿵’ 하고 울리는 무게감은

바람도, 나무도 내지 않는 소리였다.

그건…

심장 박동이었다.

그는 멈춰 섰다.

“거기 있지.”

“넌 늘 거기 있었지.”

“근데 이제,

나도 거기 있어.”

조용한 대화.

혼자서.


그날 밤.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숨이 깊어질수록,

그 안의 무언가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천천히 스며든다.

그리고 마침내,

내면은 열렸다.

어두운 공간.

거대한 그림자.

붉은 눈동자.

녹색의 숨결.

헐크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브루스가 먼저 말했다.

“…거기 있었구나.”

헐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난 계속 말했어.

네가 안 들은 거야.”

“널 들으면…

내가 망가질 줄 알았어.”

“넌 이미 망가져 있었지.

난 그 조각들이었고.”

브루스는 고개를 내렸다.

“넌 날 무서워했지.”

“맞아.”

“이젠?”

“…이젠,

내가 더 무서워.”

헐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실험실 책상 위 컵 안의 물이

아무런 진동 없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그는 컵을 바라보다,

그 진동에 손을 얹었다.


[엔딩 독백]

“감정은 갑자기 폭발하는 게 아니다.

그건, 문턱처럼

조용히, 조용히,

안쪽에서부터 솟아오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다.”



EPISODE 4 – Echo Assistance

부제: 그건 나였지만, 내가 아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도시에서

콘크리트 먼지 위를 달릴 땐,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유일한 호흡처럼 느껴진다.

사고 현장은 복잡했다.

감정 반응으로 광폭화된 생체 병기가 통제를 잃었고,

도시 전력망과 연결된 시설을 위협하고 있었다.

현장의 히어로는 “헐크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도…

그는 쉬고 있어.”

자신의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고,

정확히 말하면…

속이 비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감정의 결핍’이라고 불렀다.


그는 선을 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상대는 선을 지우고 있었다.

한 시민이 무너지는 구조물 아래 끼었고,

그 순간,

시간이 늘어나는 감각이 찾아왔다.

심장 박동.

숨소리.

떨리는 손등.

그리고…

팔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였지만,

그 감각은 익숙하지 않았다.

손이 콘크리트를 들어올린다.

몸이 튀어오른다.

자신이 계산하지 않은 각도로,

자신이 예측하지 않은 파워로.

그는 사람을 구했고,

괴물을 제압했고,

구조물을 부쉈다.


그런데 끝났을 때,

자신의 손이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넌 날 안 부른다고 했잖아.”

“근데 결국,

문은 열렸지.”

그 말은 없었다.

그러나 들렸다.

그는 조용히 손을 풀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잠들지 않으려 했다.

커피 두 잔.

빛을 밝힌 채 TV를 켜놓았다.

하지만 결국 눈을 감았고,

그 순간부터 꿈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불빛 하나 없는 공간.

거대한 실험실.

철제문은 닫혔고,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그가 있었다.

헐크.

그는 앉아 있었고,

숨소리는 짧고 낮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침묵은 비난처럼 느껴졌고,

고요한 폭력처럼 울렸다.

“도와줬지.”

“대신…

이제 넌 나를 봐야 해.”


그는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팔은 묶인 게 아니었다.

그냥 자신이 자신의 몸을 놓아버린 거였다.

“넌 날 통제한 게 아냐.

그냥, 나를 안 본 거지.”

헐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 있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했다.

존재감으로, 공간을 채웠다.

“이게 내가 널 지켜준 방식이야.

날 쫓아내는 대신,

널 지켜봤지.”


그는 소리를 질렀다.

현실의 침대 위에서.

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식은땀이 이불을 적셨고,

손이 떨렸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얼굴은 자신의 것이었지만

눈빛은 또렷이…

그의 것이었다.


“헐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부재가 아니었다.”

“그는 힘으로 나를 도왔고,

꿈으로 나를 기억시켰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그가 날 지켜봤다는 사실을

무섭게 받아들였다.”


EPISODE 5 – Return to Form

부제: 미움은 거리였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우리는 서로를 지켜봤다.

실험기록은 조용했다.

배너는 아무 말 없이 영상을 돌렸다.

어제, 감정 자극 실험 중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움직임.

팔이 반응했고, 손등 혈관이 꿈틀댔고,

눈은…

잠시, 초록이었다.

그는 잠시 멈춘 화면을 바라보다,

그 위에 조용히 메모를 썼다.

“헐크 없음.

하지만…

내가 아닌 움직임.”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아니, 어디서도.

안쪽에서.

“그걸 부정할 거야?”


배너는 숨을 멈췄다.

무언가를 들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그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직감이 더 무서웠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내면 공간으로 내려가는 문은 따로 없었다.

그냥…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과거 내면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림자가 자신을 감쌌고,

그 속엔 언제나 거대한 헐크가 있었다.

덩치, 분노, 울음.

모든 것이 크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작았다.

헐크는 앉아 있었다.

배너와 비슷한 키였고,

호흡도 짧고 잔잔했다.

그가 말했다.

“도와줬지.”


배너:

“…그게 네 방식이었냐.”

헐크:

“아니.

그건 네가 날 부른 방식이었지.”

배너:

“난 널 부른 적 없어.”

헐크 (고개를 젖히며):

“그럼, 그건 뭐였는데.

네 손으로 구조물 들어올리고,

내 힘으로 사람 살린 건.”

배너:

“…그건 그냥, 반사적인—”

헐크:

“그래.

넌 늘 그렇게 말해.

‘실수였다’, ‘의도는 없었다.’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난 너 없이는 못 나와.

항상, 너한테 허락 받아야 돼.

근데 넌…

한 번도 절대로

날 인정한 적 없어.”


배너는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 순간, 내면 공간에서

자신의 형체가 커졌다.

정확히는

헐크가 줄어든 게 아니었다.

배너가, 드디어 자기 크기를 되찾은 거였다.


배너:

“…널 무서워했어.”

“널 보면,

내가 감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헐크:

“그게 문제냐.”

배너:

“…그래.

나는 감정을 미워해.”

헐크:

“그리고 난,

그 미움 속에서도 널 지켜봤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시간도 공간도 고요했다.

둘 다 숨을 쉬었고,

둘 다 고개를 들었다.

“이제 보니까…”

헐크가 천천히 말했다.

“네가 날 미워한 만큼

나도 너를

서운해했더라.”


눈을 떴다.

숨이 가빴다.

책상 위의 노트는 흩어져 있었고,

컵 안의 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컵을 잡았다.

그 흔들림은

자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자신의 얼굴.

피곤했지만 선명했고,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거울 속 자신에게 말했다.

“이제 네 말이 들려.”

“그리고…

나도 말할 수 있어.”



“우린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 미움은 거리를 만들었고,

그 거리 안에서

우린 서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EPISODE 6 – Cracks in the Calm

부제: 그를 부르지 않았을 땐 왔고, 부르자 오지 않았다.

도시는 조용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늦은 오후,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울리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만이

이 도시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배너는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쓴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혀끝은 무감각했고, 손끝은 차가웠다.

무표정한 얼굴.

감정 없는 마음.

그러나 그 안쪽에선,

무언가가 사라진 걸 느끼고 있었다.

긴급 통신.

도심 외곽에서 감정 기반 생체 병기 폭주.

감정자극에 따라 급속 성장,

근처엔 시민들과 구조대가 남아 있었다.

배너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해볼게.”

“넌 날 도와줬잖아.

이번엔, 내가 널 믿어보는 거야.”


현장으로 향하는 차 안.

진동하는 시트, 창문 넘어 흐르는 풍경.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헐크.”

“이젠 나도 너를 거부하지 않아.”

“이젠…

너와 함께하려고 해.”

한참을 기다렸다.

심장이 두어 번 더 빨리 뛰었고,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현장.

혼란.

사람들의 고함.

쏟아지는 파편.

기계가 부서지고, 구조대가 밀려나고 있었다.

배너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두 손을 쥐었다.

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나와.”

“지금이야.”

“지금 넌 필요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너는 구조물 사이로 뛰어들었다.

허리까지 물이 찼고,

전선은 끊어진 채 물속을 울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박사님! 안 됩니다! 지금 상태에선…”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냥 뛰었다.


무거운 쇠파이프가 어깨를 스쳤다.

팔꿈치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뼛속에서 고통이 올라왔다.

예전엔…

이 정도면 헐크가 나왔다.

지금은,

그냥 아팠다.


배너는 쓰러진 구조대원을 끌어냈고,

그 후로도 혼자 움직였다.

머리는 울렸고, 시야는 흔들렸다.

하지만,

헐크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배너는 실험실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어두웠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달라진 게 있었다.

헐크는 거기 있었다.

그림자는 뚜렷했고,

존재감은 컸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배너는 한 걸음 다가갔다.

“왜 안 나왔어.”

“왜… 날 돕지 않았어?”

헐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눈도 감긴 채였다.

숨은 깊었지만,

그 깊이엔 감정이 있었다.


배너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야 너를 받아들이는데…

왜 지금은

너한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거야?”

헐크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도, 눈도, 표정도 없이.

그 모습은

분노보다

공포보다

더 무서웠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방 안은 조용했고,

기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책상 위의 노트에 단 한 줄을 적었다.

“감정 있음.

기척 있음.

반응 없음.”


“그를 부르지 않았을 땐,

그는 나왔다.”

“이제 내가 부르는데,

그는 침묵했다.”

“감정은 원래 무서웠지만,

이젠…

무반응이 더 무섭다.”


EPISODE 7 – Noise Control

부제: 헐크는 오지 않았지만, 힘은 이미 와 있었다.

거울을 본다.

손을 들어올린다.

손등을 관찰한다.

빛을 받아보면,

핏줄 아래 어딘가에서

녹색이 움직이고 있었다.

작고, 얕고, 조용히.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넌 말은 없지만,

지켜보고 있지.”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확신했다.

그는 여기 있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


도시 외곽, 다시 구조 활동.

감정 반응이 통제된 상태.

기계적 공포만이 작동 중.

도움은 없고, 시간은 없다.

그는 뛰었다.

몸이 반응했고,

근육은 평소보다 빠르게 팽창했다.

파편을 들어올렸고,

팔이 뒤틀릴 만큼의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비명을 내지 않았다.


한 아이가 구조물 아래 갇혀 있었다.

철근이 눌러 있고,

시간은 분 단위로 흘렀다.

배너는 잠시 멈췄다.

눈을 감았다.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도와달란 말 안 할게.”

“그냥…

그 힘만 써도 돼.”

그 말에,

손이 반응했다.

팔뚝 근육이 밀려올랐고

무게 중심이 달라졌다.

균형 감각은, 헐크일 때와 같았다.

그는 철근을 잡았다.

한 손으로.

그리고

밀어냈다.


그 힘은 헐크의 것이었다.

그 분노는,

소리 없는 방식으로

그를 감쌌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피부는 그대로.

목소리도 그대로.

눈빛은, 흔들렸지만 녹색이 되진 않았다.

“이게,

가능했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원 중 하나.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변하지도 않고,

그 힘을 어떻게…”

그는 짧게 대답했다.

“통제했어요.”

“...아니.

그냥,

빌린 거예요.”


그날 밤.

내면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다시 내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헐크를 찾았다.

그는 있었다.

늘 그래왔듯.

이번엔 눈을 뜨고 있었다.

“너 진짜,

말 안 하기로 작정했냐.”

헐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를 아주 작게,

비웃듯 올렸다.

조용한 인정.

조용한 대화.


배너:

“넌 내 분노였고,

이젠…

내가 널 흉내 내고 있더라.”

“그리고,

내가 감정 없이 그 힘을 쓴다는 게

진짜 무서운 일이더라.”

헐크는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넌 이제야 알아.

내가 왜 그렇게

크게 소리쳤는지.”


거울 속엔

조용히 정리된 표정의 그가 서 있다.

그러나

거울 속 눈빛만은…

한쪽이 더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둠은

감정 없는 분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두려워했다.


“나는 분노를 통제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통제가 아니라

그의 흔적을 베끼는 일이었다.”

“감정 없이 쓴 힘은

힘이 아니다.

그건 그냥…

무게였다.”


EPISODE 8 – The Shouting Quiet

부제: 잡은 건 내 손인데, 왜 내 안이 더 흔들리지.

도시는 조용했다.

그 안에서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졌고,

배너는 그 안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이제 헐크를 기대하지 않았다.

배너는,

스스로 걸어다니는 강철의 인간이 되어 있었고

더 이상 초록색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하루 전까지는.


아이 한 명이 지하 하수구에 갇혔다.

노후된 철문이 무너졌고,

폭우에 물은 불어났으며,

출입은 제한됐다.

배너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직접 진입했다.

소방관이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

그리고 그는

손으로 콘크리트를 들어올렸다.

이젠 자연스러웠다.

통증은 있었지만,

감정은 조용했다.

“이젠 너 없이도 충분해.”

“나는 나고,

넌 이제 안 나와도 돼.”


그날 밤,

그는 잠들었다.

그리고…

그는 꿈을 꿨다.


꿈 속.

황량한 공간.

콘크리트 바닥.

녹색 안개.

그 안에,

헐크가 있었다.

작았다.

숨이 가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배너가 그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보다 작은 존재를,

말없이,

힘으로 붙잡고 있었다.


한때 이 자리는 반대였다.

자신이 붙잡혔고,

질질 끌려 다녔고,

그의 분노 안에 잠겨 있었다.

지금은 달랐다.

배너는,

헐크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기고 있는 것 같은데

기분은 이렇게 나쁘지.”

헐크는 눈을 떴다.

작게,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 마디.

“넌 나를 잡은 게 아니야.

그저,

자신을 감춘 거야.”


그는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불 위엔 땀이 스며들었고,

방 안 공기는 질식하듯 무거웠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눈은 똑바로였지만,

그 안 어딘가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울리고 있었다.


그날, 실험 노트에 적힌 단 한 줄.

“힘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건 감정의 메아리다.

그리고 난 그걸 흉내 내고 있다.”


헐크는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작고, 침묵하고,

그러나 분명 존재했다.

배너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두고 바라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가 널 놓지 않는 건

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냥…

네가 없으면

난 비어버리거든.”


“이젠 감정이 날 덮치진 않는다.”

“대신,

내가 감정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게

훨씬 무겁다.”


EPISODE 9 – Terms of Coexistence

부제: “감정 없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감정을 부정하지 마.”

조용한 날이었다.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기계는 이상 없이 돌아갔다.

도시는 잠잠했고,

마음도 그러했다.

그런데,

그런 날이 가장 위험하다.

조용한 마음엔 감정이 숨어들고,

말이 없으면 목소리는 안쪽에서 울린다.


배너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며칠째였다.

스스로의 얼굴을 보는 게 무서웠다기보다,

그 안에서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마주칠까 두려웠다.

그는 그냥,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안으로,

그 공간으로 내려갔다.


이번엔 어둡지 않았다.

빛이 있었다.

공간은 고요했고,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질서정연했다.

그리고

그 안에,

그가 있었다.

헐크.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숨은 깊었고,

눈빛은 평온했다.

배너는 천천히 걸어갔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이젠 나 혼자서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헐크는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눈은 감지 않았고,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정말 그렇게 믿어?”

“그럼 왜 또 날 찾았지.”


배너는 말없이 눈을 깔았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뱉듯이 말했다.

“넌… 날 없애고 싶었잖아.”

“내가 널 그렇게 기억해.

파괴하고, 망치고…

모든 걸 없애는 괴물.”


헐크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널 없애고 싶었던 건 나 아니야.”

“날 없애려 했던 건 너였어.”

“감정을 없애고,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

“근데…

감정 없는 사람은,

그냥 껍질이야.”


배너는 이를 악물었다.

숨이 빠르게 들어쉬어졌다.

“그런 감정이라면…

없애도 돼.”

“난…

그런 건 없어도 괜찮다고 믿어.”


헐크는 정면으로 걸어왔다.

조용하게, 위협 없이.

그러나

그 존재감은

분노 없이도 무거웠다.

“그럼 이제야 말이 되네.”

“왜 요즘 너한테서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지.”


배너는 발을 멈췄다.

“무슨 소리야.”

헐크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넌 나를 부정했어.”

“그게 너의 분노였어.”

“근데 그 분노는…

이미 네 안에 남아 있었어.”

“그리고 그 분노는,

지금 너의 말투,

너의 눈빛,

네가 사람들을 보는 방식에 깃들어 있어.”


배너는 뒷걸음질쳤다.

목소리가 떨렸다.

“넌 감정이 아니야.

넌… 그냥, 실수야.”

“내 안에서 만들어진 비정상.

부작용.”

“넌 내가 아니야.”


헐크는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작게, 슬프게.

마치 오래 전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리는 사람처럼.

“그게 참…

웃기지.”

“왜냐면,

나는 바로 너거든.”


정적.

배너는 무너졌다.

무릎이 꺾이고,

손이 바닥을 짚었다.

숨이 가빴다.

어깨가 들썩였고,

눈앞이 흐려졌다.

“…거짓말이야.”


헐크는 가까이 앉았다.

배너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니야.”

“넌 나를 괴물이라 했고,

나는 널 약하다고 생각했지.”

“근데 지금 보니까,

우리 둘 다 틀렸더라.”


배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분노해서 널 만든 줄 알았어.”

“근데 이젠

분노를 없애는 척하면서

내가 널 이용한 거 같아.”


헐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한 마디만을 남겼다.

“그래.

우린 서로를 부정하려 했고,

그게 우리를 괴물로 만들었지.”

“근데 이제,

그만 부정해.”


흐르는 눈물.

떨리는 손.

그리고,

닫지 않는 입술.]


“감정을 지워야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밀어낼수록

나는 사람처럼 말하면서

감정 없는 괴물이 되어갔다.”

“이제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EPISODE 10 – One Voice

부제: 말은 준비됐는데, 몸은 아니었다.

경고음은 일정한 주기로 울렸다.

도시 위로 번지는 그 소리는

어딘가 차분했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사이렌.

파열음.

그리고

무너지는 건물들.

뉴스 속 자막은 점점 짧아졌다.

“어보미네이션 출현.

Young Avengers 피해 다수.”

배너는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숨도 고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조용한 자신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


그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심박수 상승.

혈관 수축.

손등이 꿈틀거린다.

신호는 왔다.

감정은 응답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우린… 하나의 목소리가 되기로 했잖아.”


내면.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익숙한 공간.

그리고 익숙한 침묵.

헐크는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이야.”

“이제 난 널 거부하지 않아.”

“이젠 같이 나갈 수 있어.”

조용했다.

“같이 나가자, 제발.”

헐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등 뒤로 서 있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현실.

도시는 타고 있었다.

젊은 히어로들이 쓰러졌고,

건물 잔해 위로 한 소년이 기어올랐다.

피투성이였지만,

다른 히어로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무전으로 물었다.

“헐크는…

어디 있습니까?”

배너는 무전기를 잡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분노는 있었다.

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속삭였다.

“왜…

왜 안 나오는 거야…”

“내가 널 받아들였는데…”

“우리가 같은 존재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Young Avengers 중 한 명이

건물 너머로 밀려 떨어졌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가,

배너를 향해 눈을 마주쳤다.

“…박사님…”

그 시선은,

기대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배너는 그 시선을

똑바로 받아보지 못했다.

고개를 떨궜다.


그는 발을 떼지 못했다.

그의 감정은 움직였지만,

몸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존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다.”


도시는 계속 무너졌다.

그리고 배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헐크 없이.

말뿐인 공존만 가진 채.


[마지막 장면 – 배너의 손.

떨리고 있지만, 닿지 못하는 곳.]


“나는 그와 하나가 되기로 했다.”

“그러나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같이 말하는 게 아니라,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EPISODE 11 – The Cost of Silence

부제: 말은 했지만, 진심은 그제야 도착했다.

거리는 정리되고 있었다.

시멘트 조각은 쓸려 나가고,

건물의 벽은 임시 천으로 덮였다.

공습은 끝났고,

그 후가 남았다.

사람들은 다쳤고,

누군가는 깨어나지 못했다.

Young Avengers 중 한 명은

의식이 없다.

두 명은 퇴역 판정을 받았다.

배너는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그는 마주앉은 소년의 얼굴을 바라봤다.

붕대에 가려진 얼굴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엔

그날 무전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헐크는… 어디 있습니까?”


밤.

그는 연구소에 혼자 앉아 있었다.

조명은 꺼졌고,

창밖의 불빛만이 책상 위를 스쳤다.

그는 손을 모았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동안 나는

네가 나인 걸 알면서도

끝까지 부정했어.”


“네가 무서울 땐,

감정이라고 말했지.”

“힘이 필요할 땐,

무기처럼 다뤘고.”

“그래서 널 다시 가두고 있었어.”


“나는 너고…

너는 나야.”

“그 말,

이제야 진심으로 할 수 있어.”

“감정을 숨기고,

회피하고,

거부했던 내가

진짜 괴물이었어.”


“…도와줘.”

“지금이야.

이젠 너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할 자격도 없어.”

“이젠,

같이 나가자.”


헐크는 그 자리에 있었다.

조용했고,

눈을 감고 있었다.

배너는 무릎 꿇고 앉았다.

어깨를 떨지 않았고,

입술도 깨물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말했다.

“이제는

너도, 나도

숨지 말자.”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함께 나가야 해.”


빛이 없던 공간.

어두웠고,

한기만 감돌았다.

그런데

작은 떨림이 있었다.

심장의 울림.

피부 아래 꿈틀거리는 기척.

그는 처음으로,

내면에서 헐크의 숨결을

‘안정감’으로 느꼈다.


배너는 실험복을 벗고,

재킷을 걸쳤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도시는 조용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침묵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부정했고,

그는 날 침묵으로 대답했다.”

“이제는,

내가 그를 인정했고

그는 숨으로 응답했다.”

“감정과 함께 걷는다는 건,

그를 내 안에 가두는 게 아니라

내 발걸음에 함께 담는 일이다.”

“나는 헐크다.

그리고 그 역시

브루스 배너다.”


EPISODE 12 – And Then, Us

부제: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방향을 얻었을 뿐이다.

공기엔 쇠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 먼지, 불에 그을린 건물 벽이 우듬지를 이룬 거리.

도시가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어보미네이션이 서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을 분간하지 않았다.

무엇이 적이고 무엇이 구조물인지,

구분하려는 의지조차 사라진 짐승이었다.

그리고 그 짐승의 시선이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을 향했다.

브루스 배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손은 주먹을 쥐고,

그 손등 위로 피가 맺혀 있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그를 떠올렸다.

필요할 땐 침묵했고,

감정이 북받칠 땐 손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거기 있었다.

그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배너는 중얼였다.

숨처럼. 기도처럼.

“우리가 나가자.”

헐크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응했다.

심장이 무겁게 울리고,

어깨 아래 근육이 단단하게 부풀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가 일어섰다.


피부가 찢어졌다.

살이 부풀었고,

척추가 뒤틀리듯 솟아올랐다.

그러나 눈빛은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그 눈은 목표를 알고 있었다.

분노는 있었고,

그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첫 충돌은 순식간이었다.

헐크의 몸이 지면을 박차며 날아올랐고,

주먹 하나가 어보미네이션의 턱을 향해 꽂혔다.

골절음이 터졌고,

그 거대한 몸이 건물 한 채를 뚫고 날아갔다.

헐크는 따라가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다.

발끝이 닿는 아스팔트가 깨졌고,

진동이 퍼졌다.


어보미네이션이 일어섰다.

포효했다.

주먹을 휘둘렀고, 헐크는 피하지 않았다.

팔을 들어 방어했고,

밀려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상대의 손목을 움켜쥐고,

관절을 비틀었다.

파열음.

그리고 이어진 무릎차기에

어보미네이션은 다시 땅에 처박혔다.


헐크는 더 이상 불안정하지 않았다.

그는 전진했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건물이 기울었다.

사람들이 아래에 있었다.

헐크는 주먹을 들어

기둥을 꿰뚫고,

기울어지는 방향을 바꿨다.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다.


어보미네이션이 다시 일어섰다.

숨을 몰아쉬며 포효했다.

헐크는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음의 목소리가 조용히 번졌다.

“그만해.

이제 난,

숨지 않아.”


그는 달렸다.

공중으로 튀어올라,

전신의 힘을 모아

적의 가슴팍을 뚫었다.

피가 솟구쳤고,

무너지는 몸이

지면에 고통스럽게 부딪혔다.

먼지가 흩날렸다.

도시는 잠시,

고요했다.


헐크는 그대로 서 있었다.

숨을 내쉬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는 배너가 있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울었다.

젊은 히어로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붕대를 감은 채

그 앞에 멈춰 섰다.

“…감사합니다. 헐크.”

헐크는 고개를 돌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너와 헐크는 마주 서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걷는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숨기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그 분노에 방향이 생겼다.”


EPISODE 13 – Red Directive

부제: 그는 분노를 이기려 했다. 그러다 분노가 되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도시가 다시 살아났고,

벽엔 초록의 거인이 아이를 껴안고 있는 그래피티가 생겼다.

브루스 배너는 그리움과 경계심 사이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조금은 편안했고,

조금은 어색했다.

그리고 그날,

회색의 군용 수송기가 도시 상공을 가로질렀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렸다.

부츠 소리가 금속 바닥에 울렸고,

테이블 너머로 익숙한 붉은 얼굴이 다가왔다.

썬더볼트 로스.

여전히 단단했고,

여전히 분노를 이마에 새긴 얼굴이었다.

그는 앉지 않았다.

말부터 쏟아냈다.

“이번 일로 헐크의 명예가 회복됐다고 생각하나?”

배너는 눈을 들지 않았다.

“난 명예 같은 걸 기대한 적 없어요.”

“우린 그냥… 같이 나갔을 뿐입니다.”


로스는 웃지 않았다.

그는 유리창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거다.”

“넌 ‘같이 나간다’는 식의 철학을 믿지만—

나는 그걸 못 믿는다.”

“헐크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했고,

지금도 그래.”

“넌 그를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은, 그는 그저 조용해진 것뿐이다.”


배너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건 당신 시선에서만 그래요.”

“우린… 서로를 알고 있습니다.

이젠.”

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엔 연민도, 이해도 없었다.

“그렇다면 넌,

진짜 헐크의 의미를 잊은 거다.”


[실험 구역 – 감춰진 계획]

로스는 회의장을 떠나자마자

군 기밀 격리 구역으로 향했다.

강철문 세 개를 지나,

철제 주사관 하나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거기엔 오래된 시약병이 있었다.

그 속엔 액체처럼 보이지 않는 붉은 에너지,

감정을 인공적으로 재조합한 시약이 있었다.

그는 말없이 셔츠를 벗고,

팔을 드러냈다.

붉게 멍든 주사 바늘이 그의 혈관에 박혔고,

몇 초 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변화]

심장 박동이 상승했다.

온몸에 열이 퍼졌다.

피부가 빨갛게 물들었고,

근육이 부풀었다.

두 눈은 붉게 타올랐고,

그가 짓던 이성적인 표정은

점차 파열음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비명을 삼켰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깨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나왔다.


[레드헐크의 탄생]

금속이 휘었다.

실험실의 벽이 터졌다.

경보가 울리기도 전에

방은 무너졌다.

불길이 터졌고,

그 한복판에서

그가 일어섰다.

가슴팍에 붉은 열이 퍼져 있었고,

눈은 거의 불꽃 같았다.

레드헐크.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주먹을 말아쥐고

지면을 박찼다.


[도시 외곽 – 배너의 감지]

배너는 멈췄다.

바람이 바뀌었다.

내면에서 울리는 진동.

헐크가 말했다.

낮고, 정확하게.

“그건 나와 달라.”

“그건… 감정이 아니라 증오야.”


[연기 너머, 붉은 그림자]

도시 바깥.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몰랐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붉은 살결.

증오의 형상.

그리고 그 목소리.

“헐크는 사라져야 한다.”

“아무도 못 한다면…

내가 한다.”


“분노는 감정이다.

하지만 증오는— 감정을 부정한 자가 만든 괴물이다.”

“배너는 감정을 받아들였고,

로스는 감정을 이기려다

그 안에서 타올랐다.”

“그리고 이제,

감정의 화해와 증오의 충돌이

동시에 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EPISODE 14 – Collision of Blood

부제: 감정을 품은 자와, 감정에 먹힌 자의 마지막 싸움.

도시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늘은 재빛으로 물들고,

바닥엔 균열이 퍼졌다.

지면 아래로 붉은 열기가 번지고 있었다.

거대한 실루엣이

가로수를 꺾으며 걸어왔다.

불타는 두 눈.

근육질의 팔.

진홍의 피부가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레드헐크.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골목을 뚫고 나온 초록빛이

고요히, 그러나 무겁게 걸어왔다.

헐크.


주변은 무너진 빌딩과

불타는 차량의 잔해뿐.

사람들은 멀찍이 피신했고,

드론들만이 공중에서

이 재난을 기록 중이었다.

두 존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첫 주먹이 날아들기 전까지.


[폭풍]

레드헐크가 돌진했다.

아스팔트가 갈라졌고,

전신이 투사되듯 헐크에게 꽂혔다.

충격음.

폭풍.

빌딩 벽면이 붕괴되며

양쪽으로 먼지가 튀었다.

헐크는 그대로 벽을 박살내며 밀려갔다.

30미터는 날아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등에서 떨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밀어내고,

천천히 일어섰다.

눈빛.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헐크가 먼저 때렸다.

레드헐크의 갈비뼈가 휘었다.

강철 같은 살점 위로 충격파가 번졌고,

도로는 그 자리에서 패였다.


[파괴의 교향곡]

두 거인은 도시를 휘저었다.

헐크가 레드헐크를 건물 위로 던지면—

그는 벽을 깨며 다시 뛰어내렸다.

트럭을 들어 던지고,

버스를 방패 삼아 밀어붙였다.

헐크는 지하철 선로 아래로 떨어졌다가

굴뚝처럼 솟구쳐 반격했다.

무너지는 탑,

꺾이는 철골,

하늘로 터지는 불기둥.

이 싸움은 감정의 전투이자,

도시 전체를 무대로 한 심장의 충돌이었다.


[철학의 칼날]

레드헐크는 헐크의 턱을 쥐고 으르렁거렸다.

“넌 이길 수 없어.

넌 감정에 휘둘리며 사는 실패작이야.”

헐크는 손을 뻗어,

그 팔을 풀어냈다.

“그렇다면 넌…

감정에 휘둘리면서도

그걸 부정한 채 사는 괴물이야.”

“난 감정을 짊어졌고,

넌 감정에 짓밟혔다.”


[진짜 분노]

헐크는 포효하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조용히 끓고 있었다.

그는 뛰었다.

전신을 말아

레드헐크의 복부에 직격.

기둥이 무너지고,

파편이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틀며

양손으로 레드헐크의 어깨를 잡고

지면에 내리꽂았다.

도시 중심부,

차량 수십 대가 튕겨나갔고,

전깃줄이 불꽃을 튀겼다.


[상징적 승리]

레드헐크는 무릎을 꿇었다.

숨이 엉켜 있었고,

눈동자에 의문이 피었다.

“왜 넌… 날 이기지 못했는데…”

헐크는 조용히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본 채

딱 한 마디를 했다.

“넌 분노를 ‘힘’으로 봤고—

나는 분노를 ‘내 일부’로 봤다.”

그리고 그는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내려치지 않았다.

대신,

옆의 땅을 쳐서 충격파로

레드헐크를 날려 보냈다.


[침묵의 승리]

레드헐크는 건물 잔해 위에 떨어졌다.

움직이지 않았다.

헐크는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주변은 조용했다.

불길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빛은 두려움보다

이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작게.

“…그는 괴물이 아니야.”


“감정을 받아들인 자는 분노를 품고 살았고,

분노를 부정한 자는 결국 분노에 잡아먹혔다.”

“헐크는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을 부쉈고,

그 파편 속에서 감정을 껴안았다.”

“레드헐크는 병기였다.

자신을 포장했고,

그 갑옷 안에서 감정을 삼켰다.”

“그리고 도시는 오늘,

진짜 감정이 이기는 걸 보았다.”


EPISODE 15 – The Hand I Reached For

부제: 나를 지켜준 손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손이었다.

전투는 끝났다.

연기가 걷혔고,

거리는 파편으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말을 아꼈다.

아이들은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고,

영 어벤져스의 남은 이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부축하며 걸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다.

헐크.

아니, 브루스 배너.

아니, 이제는—

그 둘 모두.


그는 철골 틈에 앉아 있었다.

숨은 고르지 않았고,

상처는 아직 붕대조차 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편안해 보였다.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여전히 두 개의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건 불협이 아니었다.


[최종 회담]

익숙한 공간.

낡은 의자 두 개.

그 사이,

처음으로 함께 앉아 있는 두 사람.

헐크는 말없이 손을 깠다.

피멍이 들고,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배너는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들도 그랬다.

작지만 굳은살이 박이고,

마디마다 긴장이 묻어 있었다.

“우린 꽤 오랜 시간 싸웠지.”

“그런데 그 시간보다

더 오래 함께 있었던 것 같아.”


헐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날 무기라 했을 땐

그게 맞는 말인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냥,

도움이 필요했던 감정이었을 뿐이야.”


배너는 말없이

그 손을 잡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건 그냥—

자기 자신의 또 다른 온도였다.

“내가 피하던 손이

사실은 날 붙잡고 있던 거였더라.”

“그리고 지금,

난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아.”


[도시 한복판]

배너는 조용히 헐크의 형상을 유지한 채

아이 하나를 안아 올렸다.

무너진 돌더미 옆에서,

울고 있던 꼬마였다.

그의 품에 들어온 아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작은 손을 내밀었다.

헐크는 살며시 그 손을 잡았다.

그 손은,

겁내지 않았다.


[둘의 독백]

헐크:

“처음엔 내가 널 지키려 나왔지.

지금은,

네가 나를 인정해서 서 있는 거야.”

배너:

“서로를 내칠 수 없단 걸 알았어.

이젠,

서로의 일부로 살아가자.”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손은

늘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 손을 밀어냈던 시간보다,

그 손을 붙잡은 지금이

더 나를 살게 한다.”

“우리는 두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감정 안에서

서로를 발견한 사람이다.”


EPISODE 16 – Green Light

부제: 이제 감정은 나의 증거다.

도시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기울어진 전봇대는 철거됐고,

산산조각 난 도로엔 새 아스팔트가 덮였다.

화단은 다시 심어졌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햄버거를 들고 걸었다.

그 모든 정상성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헐크.

혹은 배너.

혹은,

이제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이름.


[새로운 세대]

Young Avengers는 여전히 재정비 중이었다.

새로운 멤버들이 훈련을 시작했고,

이전 세대는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 중 한 소년이

조심스레 배너에게 다가왔다.

아직 앳된 얼굴이었고,

손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실례합니다… 배너 박사님?

그… 그린… 아니, 헐크… 선생님?”

헐크는 돌아봤다.

웃었다.

조금 어색하지만

진짜 웃음이었다.

“부르면 돼.

편한 이름으로.”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묻는다.

“근데… 그 힘,

지금도 갖고 계시나요?”

“그 분노요.”


헐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먹을 펼쳐,

손바닥을 하늘로 들었다.

녹색이 희미하게 피어났다.

이젠 터지지 않는 분노.

이젠

움켜쥐지 않아도 되는 감정.

그는 말했다.

“응. 아직 있어.”

“분노는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야.”

소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다시 묻는다.

“그럼… 무섭지 않으세요?”



댓글 (2)

  • 시커먼사각

    시커먼사각 Lv.1

    25.06.10 · 121.♡.128.121

    헐크는 매력적인 캐릭터죠
  • F3YNM4N

    F3YNM4N Lv.1 → 시커먼사각 작성자

    25.06.10 · 119.♡.201.217

    분노가 헐크인데. 분노를 없앤 스마트헐크라. 마블놈들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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