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의 아버지, 르노 FT 전차를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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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0일 PM 03:35 · 수정됨(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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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게대전 탱크는 최초의 탱크인 영국제 Mk1 탱크가 유명합니다만... 프랑스도 일찍부터 전차라는 체계에 관심을 갖고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이미 프랑스도 인간의 육체로 포탄구덩이와 철조망과 기관총으로 도배된 1차 세계대전식 참호를 돌파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몇 년도 안 되서 인정했습니다(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수많은 피가 흘려진 다음이었죠).


그래서 위 사진과 같은 아처 트랙터나, Breton-Pretot 철조망 제거 트랙터를 테스트 해보기도 했고, 

이런 부아르 장치를 테스트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녀석들은 들키기도 쉬워서 발각되는 순간, 기관총과 대포의 밥이 될 물건들이었죠. 그래서 영국이 탱크를 만드는 동안, 프랑스도 자체적으로 트랙터에 기초한 탱크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게 슈나이더 CA와 생샤몽 탱크였습니다. 둘 다 나름 장점은 있었습니다. 슈나이더 CA는 독일 중기관총을 버틸 수 있었고, 생샤몽은 75mm 포라는 나중에 셔먼 전차에 탑재한 당대 최고의 포를 달았지요.

하지만 기계적으로 너무 미숙했습니다. 슈나이더 CA의 경우 초기형은 전면 연료탱크라 포로 거길 맞으면, 바로 폭발이고, 생샤몽 탱크는 천장이 평평해서 가방형 폭탄 같은 게 날아오면 위험했습니다. 두 전차 다 험지돌파 능력이 구렸지요. 생샤몽 탱크는 특히 앞이 길어서 잘못하면 땅 파는 두더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단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면야 프랑스군 보병 입장에서는 이만한 든든한 지원군이 없었지요. 전차 맛을 본 보병들은 전차 없이 진군하기를 싫어했습니다. 

당장 이들 전차들은 1차 세계대전 전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당시 빈약한 생산력으론 이런 전차를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 거대한 전차들에 탑승하는 승무원 수도 적은 게 아니었죠. 또 극심한 참호전이 병사들을 갈갈하고 있었고, 노동력이 부족한 판에 중국 노동자까지 수입하는 현실에서 전차를 생산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 내에서 탱크주의자였던 에스티엔 장군은, 1916년 봄에 당대 최고의 프랑스 자동차 회사 사장인 르노를 만났고, 둘은 위의 두 개 같은 대형 전차 말고, 생산이 빨리 진행될 수 있는 경전차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게 르노 FT 전차입니다.

이 경전차는 1916년 10월에 목업이 완성되었고, 조프르 장군은 이를 보고 1000대 고~를 외쳤지만, 이 르노FT 전차를 싫어하던 장군들도 많았던 지라, 1916년 12월에야 100대 양산 승인이 이뤄졌습니다. 17년 2월에는 150대 뽑자는 결정이 나왔구요. 하지만 1916년 베르됭 전투에서 어마어마한 프랑스군 사상자가 나오면서 조프르가 실각하자, 다시 르노 FT 생산을 막자는 움직임이 나왔습니다만, 테스트해보니깐 르노 FT 전차가 위의 두 프랑스 전차보다 더 좋았습니다.


장점이 너무나 많았지요.

- 가볍고 크기가 작아서 트럭 수송이 가능하고

-승무원은 거대 전차에 비해 월등히 적은 2명..

-야지 기동력이 구리긴 해도, 위의 두 탱크보다는 월등히 나았습니다. 속도도 더 빠르고 크기가 작아서 적의 야포에 맞을 일도 적었습니다. 

-크기가 작으니깐 유럽의 숲 나무 사이도 통과가 가능했죠.

-이런 작은 크기에도 토치카 기관총에 대해서는 충분한 방어력과 상대할 공격력이 있었지요.

-포탄 구덩이에 빠지면 낭패입니다만.. 그래서 대량의 포병 사격을 줄였죠. 나름 탄 낭비를 줄인 좋은 점이 되었습니다.


이에 에스티엔 장군은 흡족해하며, 르노 FT 3500대 고~를 외쳤습니다만... 불행히도 프랑스의 열악한 생산력은 그만큼 뽑을 수도 없었거니와, 루덴도르프가 러시아를 꺾고 최후의 발악으로 성 미카엘 공세를 개시하는 바람에, 전방의 전차 훈련장은 깽판이 되고, 나오는 족족 미카엘 공세를 막는데 투입되는 수밖에 없었죠.

독일의 공세는 혹독했고, 파리는 점령될 위기라 이를 막기 위해 1918년 6월에는 르노 전차 뿐만 아니라, 슈나이더 CA와 생샤몽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계적 문제와 강력한 독일군 공세로 슈나이더 CA와 생샤몽 대부분을 상실합니다.

하지만, 근성의 프랑스군은 어치저치 독일군을 막았고, 1918년 7월에 수아송에서 반격을 시작합니다. 이때 르노 전차 255대, 100대의 생샤몽, 123대의 슈나이더 CA 전차를 투입하죠. 이 반격의 선봉에는 르노 FT 탱크가 앞장섰구요. 생샤몽과 슈나이더가 나가 떨어졌지만, 극심한 피해에도 르노 FT 탱크는 1개 대대씩 계속 추가 됩니다.

독일군은 이 르노 FT 탱크 개떼를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효과적인 대응법은 대전차 함정과 대전차 지뢰였습니다만... 당시 대전차 지뢰는 활성화되진 않아서 이 탱크를 막을 신통한 방법은 없었죠. 대포로 잡으려고 해도, 크기가 작아서 맞추기도 힘들고 개떼로 달려드니 말입니다. 


당시 르노 FT 탱크는 크게 3종류였습니다.

유탄포를 단 르노 FT 남성형

기관포를 단 여성형이 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 타입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르노 FT 탱크 개떼 부대를 형성했고, 철조망과 기관총을 상대하며 보병들과 함께 돌격하면 그 난공불락의 참호도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독일군은 GG를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편 이런 르노 FT 탱크에 큰 감명을 받은 미군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그 양반 이름은 패튼이었고, 또 하필 미군에게 주어진 르노 FT 훈련 담당자가 아이젠하워였습니다. 하하... 이들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을 때려잡는데 앞장서게 되죠.


이후 르노 FT 탱크는 급격한 탱크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순식간에 구식화됩니다만.... 그래도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모든 나라 탱크의 조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서양이건 동양이건 이걸로 탱크 맛을 본 거죠. 여기서 2차 세계대전 탱크의 진화가 시작된다고 보면 됩니다.

댓글 (6)

  • 모토나리 Lv.1

    25.06.20 · 112.♡.155.243

    르노FT가 현대전차의 진정한 시작이었죠.
    배틀필드1에서 아주 잘 갖고 논 전차죠. 생샤몽과 영국 mk1은.. 지옥이었습니다.
  • FV4030

    FV4030 Lv.1 → 모토나리 작성자

    25.06.20 · 210.♡.27.130

    당시 그 전차들에 탄 모든 승무원들이 지옥이었다고 하더군요. 일단 밖에 나오면 탈 생각을 안했다고 하구요.
  • 렙트나인 Lv.1

    25.06.20 · 118.♡.3.252

    혹시 닉넴이 챌린저 1 이신건가요?? ㅋ
  • FV4030

    FV4030 Lv.1 → 렙트나인 작성자

    25.06.20 · 210.♡.27.130

    네 맞습니다. ㅎㅎㅎ
  • 초보요리사

    초보요리사 Lv.1

    25.06.20 · 211.♡.205.171

    글 넘 잼있습니다 ㅎ
  • FV4030

    FV4030 Lv.1 → 초보요리사 작성자

    25.06.20 · 210.♡.27.130

    좋아하셔서 다행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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