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캣 (218.♡.223.19)
2025년 6월 23일 AM 04:58 · 수정됨(09:16)
얼마 전 작성했던 글에
교원소청 한 건을 완벽하게 승소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승소했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 않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표현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교원소청이라는건,
억울하게 징계를 받은 교원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징계가 억울하니 이를 취소해달라는 취지로
신청하는 절차입니다.
일반적으로 서류로 소청심사를 접수한 후,
한 차례 교원소청위원회에 출석해 심사기일을 가진 후
소청이 타당한지 여부를 판단하지요.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 '심사기일'자체를 아예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가 하면,
교원소청위원회에서, 저희 측이 준비한 서류가 그 자체로 완벽해서
해당 징계가 부적법하다는 것에 대해 학교나 청구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서류만으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 수준이었다는 뜻입니다.
저도 10년이 넘는 변호사 생활 중 몇 차례 없는 희소한 경험일 정도로
말 그대로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건에 대해서
의뢰인인 교수님이 승소에 대한 성과보수를 결제해주시며
감사의 표현과 함께 몇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 중 한마디가 계속 기억에 남아 머릿속에 맴돕니다.
"변호사님 계속 그렇게 일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했더니
이 사건과 관련해 상담부터 시작해서 결과가 나올때까지의 몇 개월 기간동안
저와 함께했던 내용들을 정리해보니, 참 많이 혼났었다면서
본인이 그렇게 혼나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안나신답니다.
처음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과 너무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길래
의심도 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정말 소리를 질러가며
제가 혼을 내니, 내가 돈주고 이렇게 혼까지 나는 게 맞나 싶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렇게 안해주셨으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예상이 되어서 소름끼치면서도 너무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본인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보니
학생들이 잘 이해를 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든 이건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에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그렇게 했다는 걸 이제 느끼셨다는겁니다.
그런데, 자기는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이니, 그래도 좀 이해를 하는데
다른 의뢰인들은 그게 힘들고 고마운 일이라는걸 모를수도 있다.
그리고, 그거 굉장히 감정소모가 심할텐데 계속 그렇게 일할 수 있으시겠냐
라면서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네, 너무 감사한 말씀이죠.
보통 결과가 좋으면 다들 해석이 좋아지십니다.
그리고, 오늘 텔레비전을 보다가, 수학 강사인 정승제씨가 나와서
학생에게 열변을 토하는 걸 보면서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아, 내가 의뢰인들에게 종종 저러는구나.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저게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질수도 있겠구나.
정승제씨는 아마 답답했을겁니다.
저 학생이 너무 잘못된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고,
지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마에 핏대세워가며, 목에서 쇳소리 나올만큼 소리높여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아 저거 너무 심하게 말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근데, 저 학생은 기분나쁠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도 하고 있고...)
보통 하루 평균 2시간은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 같은데,
두통도 예전보다 훨씬 잦아진 느낌이고, 나름 관리한다고 생각하는데
목도 많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나름 의뢰인들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변호사도 서비스업종이거든요.
아무리 내가 애를 써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기껍지 않다면
그게 좋은 방향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넘게 유지해온 업무 스타일에, 본질적인 의문과 걱정이 듭니다.
이게 맞나. 아니, 나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밤입니다.
좋은 판단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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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Koma
25.06.23 · 112.♡.13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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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레베카미니
25.06.23 · 221.♡.25.227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니 제대로 못따라오면 목소리가 커지곤 했었는데 그러고 나면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안좋았어요
그런데 제일 많이 혼이 났던 아이가 헤어질때 건넨 편지에 진짜 고마웠다고 썼더라구요
진심은 전해지는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
FFreeRich
25.06.23 · 211.♡.196.128
멋있으시네요.
변호사로서 소임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겪은 변호사(검사 출신)들은 의뢰인을 만나면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의뢰인의 처한 상황에 대한 진실보다는 마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공식에 사건을 집어 넣어서 수임료와 형량을 거의 단정지어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사건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더라고요.
그 일부 변호사들로 인해 변호사라는 직업군에 대해 크게 실망했었는데 미니캣님의 글을 보니 말 그대로 변호사시네요. -
노노마리아
25.06.23 · 222.♡.103.22
진심이 전해지셔서 너무 잘 되셨습니다. 변호사란 직업에 대해서 전 약간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글을 읽고 저 자신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네요.. ㅎㅎ - G
Grizzle
25.06.23 · 211.♡.158.135
저는 소송할때 제가 생각할때 가장 불리한 부분부터 말씀드리고 이거 극복 가능한 문제인지 부터 상담드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그런 부분은 다 숨기고 이상하게 이야기를 꼬아서 변호사님과 상의하시더군요.
그런다고 법정에서 유리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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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년삼촌
25.06.23 · 115.♡.156.11
하아..... 뭐랄까.... 일단 여기서도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클리앙에서 이리로 넘어오면서 기억이 났던 분중에 한분이거든요... "참성실한변호사" 로 메모해 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ㅎ
저도 민사, 형사 둘 다 거쳐본? 입장으로서.. 성심성의껏 사건을 걱정해주는 분을 만나기는 정말 흔치않죠... 여러가지 의미로 저 역시 생각이 많아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꾸벅) -
SSprotbackLover
25.06.23 · 59.♡.60.139
서비스직이지만 솔직히 실력이 우선인, 직업이죠.
슬프지만 내용보다 결과가 중요한것 아니겠습니까.. -
Ookdocok
25.06.23 · 211.♡.195.122
감정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양이 없는 사건이지만 나에게 일어난 감정이 나의 행동, 말, 표정, 몸짓으로 만들어지면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에너지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항상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은 컨트롤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계속 전전두피질을 강화하는 명상, 운동, 독서 등을 하면서 내가 만드는 스토리텔링을 계속 변화를 주게 되면 결국 자연스럽게 좀더 나은 행동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해하면 깨닫는 것이 아니라 결국 겪으면서 서서히 변화가 되는 것에 만족을 해야하더라구요. 우리가 모두 부처, 예수가 될 수 없지만 부처나 예수가 했던 노력은 비슷하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계최고 감정 조절 전문가도 자신의 감정 조절하는 것은 매번 힘들다고 합니다. ㅎㅎ
감정은 불안 밖에 없고 불안은 신체 에너지에 좌우되니 수면, 식사, 운동에 신경쓰면 신기하게도 좀더 감정적으로 안정됩니다. -
Pplaintext
25.06.23 · 118.♡.5.183
다들 비슷하시겠지만 애정과 열정 등이 결합되고
내가 리딩한다는 마음까지 합세하면
알게 모르게 목소리가 그걸 대변해주곤 하죠
누군가 저렇게 듣기도 좋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걸 받는다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30대에 조금씩 스스로를 수리했던거 같아요
아직도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 있지만
이제는 내려놓을건 내려놓고, 꼭 해야할때는
표현에 신경도 쓰고 그렇게 살고 있는듯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니 필요하시고 할 수 있는 만큼 달라지셔도 될거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장황한 댓글을 달아봅니다 ^^;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남천동에서 들은거같은데, 윤석열 재판을 리뷰하면서 의뢰인이 제멋대로 못하게 막는것도 변호사 실력이라고요.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