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읍슴 (118.♡.5.242)
2025년 6월 25일 PM 03:44 · 수정됨(17:34)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이야기 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30년 전 일이고,
그때의 선생님의 이야기이니 아주 오래된 이야기임을 감안하셔야 할겁니다.
화학 선생님 이시고, 몸이 매우 마르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선생님의 재미있고 훌륭한 강의 방식과 수업 중의 형형한 눈빛은 잊혀지지 않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업 중 창 밖을 보시다 촉촉한 눈으로...
수업을 듣던 아이들에게 고백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어릴 적 부터 외아들에 편모 가정이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매우 아프셔서, 어려서부터 본인이 일을 하셔야 했고,
신문배달은 물론이고 공장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 하셨습니다.
으레 그 시절 그렇듯 빚도 많아서 끼니도 먹다 거르다를 하셨구요.
그 상황에서도 공부까지 해 가시면서 좋은 대학을 나오시고,
선생님까지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집안은 너무 가난했고, 어머님이 너무 아프셔서 혼자 밥을 해먹으실 수도 없던 시기이고, 본인이 아니면 생계를 이을 방법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연기해왔던 입대 영장이 나왔다고 합니다.
체질적으로 이미 마른 분이시고, 밥도 잘 못 먹던 상황이었어서..
몸무게가 이미 저체중이어서 면제가 나올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본인이 군대를 가면,
어머님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하구요.
그간 신체 검사에서 계속 저체중이 나왔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계속해서 재검 통지가 왔다고 합니다.
정말 몸무게가 늘 때까지 재검을 해대더랍니다.
선생님 또한 어머니의 생명이 걸려있었기에,
정말 미친듯이 그 체중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정말 할 수 있는 수는 다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저체중이 나온 상황을
검의관은 결국 현역이라면서 써내더라고..
그렇게 군대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훈련소에서 훈련 기간이 끝나고 첫 면회에,
그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힘을 냈는지, 없는 살림에 빚을 내신 건지..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들고 면회를 오셨고..
그렇게 모자가 펑펑 울고 면회를 하고 얼마 후..
어머니는 결국 영양 실조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 그때 그 분이 이야기를 꺼내신 시기는..
이회창 아들이 체중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던 때였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본인은 그렇게 체중 미달이 되어도 안되던 것이.
그렇게 집요하게 재검에 재검을 해대던 것이..
권력자면 저렇게도 쉽게 면제가 나오는 거였냐며..
허탈해하시면서 밝힌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모 의원의 군 면제 내용을 보면서,
그 사연이 기억이 났습니다.
공교로운 사실은 그 선생님이 당시 재직하시던 학교가,
그 모 의원의 지역구 이름을 단 고등학교입니다.
규정 다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군 면제 그렇게 쉽게 안나옵니다.
일반인들, 특히 힘없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진짜로 재검에 재검을 합니다. 집요합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는 그랬습니다.
애초에 상대가 의도적으로 면제를 노린 것이라고 가정하고 덤벼듭니다.
그런데, 이런 권력자에게는 전혀 반대 논리가 보이네요.
그게 그렇게...한번에 판정이 되나 봅니다.
그 선생님이 아직 살아계실 지,
그 학교에 아직 근무하시고 계실 지 모르겠으나..
아직 계시다면, 오늘의 뉴스에 또 한번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적시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댓글 (2)
- 반
반쪽달
25.06.25 · 140.♡.29.2
안타깝습니다.... -
송송지호
25.06.25 · 175.♡.179.78
짬밥 좀 먹은 상병시절 신병 왔는데
한글을 잘 못읽었습니다
저는 진짜 ‘온실속 화초’ 철부지 였어요
빽줄 써서 진단서 면제 받은게
유력한 주모의원나리 님
‘그 잘난 주둥이 쳐닫고 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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