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80.♡.243.17)
2024년 4월 27일 AM 09:43 · 수정됨(11:06)
크리스트교나 이슬람교, 유대교 등은 착한 일을 해야 신이 기뻐해서 은총을 배풀 것이라는 논리를 펴는데 반해 불교는 다른 방식으로 착한 일, 즉 공덕쌓기를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 리군지 비구와 시바라(시바리) 존자입니다.
이 두 비구는 둘 다 아라한이지만, 쌓아 온 공덕의 양이 달라 결국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살다 갑니다.
찬집백연경에 나오는 리군지 비구의 경우 출가 전부터 배부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와 유모들이 젖을 물리면 젖이 헐어버려 제대로 젖을 먹지 못했고 커서도 단 한번도 배가 불러 본 적이 없었죠.
그러다 출가하여 부지런히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나, 탑을 청소하여 공덕을 쌓았을 때를 제외하면 제대로 탁발을 받지 못하고 다른 승려들이 그를 위해 음식을 얻어도 온갖 사건사고가 터져 못 먹게 됩니다.
심지어 보다못한 부처의 수제자격인 사리불 존자가 가까스로 음식을 구해서 온갖 사건사고를 피해 눈 앞에 가져다주니 입이 안 열리는 병이 나서 못 먹고 결국 리군지 비구는 부끄러움을 못 이겨 모래에 물을 섞어 마시고 자결합니다.
반면 오백나한 중 하나이고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시바라 존자는 정 반대였습니다.
마니주(여의주)를 양손에 쥐고 태어난 갓난아기 때부터 석가모니가 직접 내 제자 중 복덕이 제일이 될 것이라 예언했고, 이를 증명하는 듯 한 평생 온갖 보시가 들어왔죠.
고향으로 가면 고향 사람들이 몰려들어 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가면 그 지역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어 보시하고, 심지어 그 주변 지역 사람들까지 천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시하러 몰려왔죠.
심지어 공양 받는 게 귀찮아서 산 속에 숨으면 그 산 근처 마을 사람들이 천신의 목소리를 듣고 보시하러 찾아오고,
아무도 모르는 산중에 숨으면 제석천왕(인드라)이 내려와 보시하고, 길을 가다 덥고 시장기가 들면 신들이 비와 구름을 뿌리고 몸을 씻을 연못과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등 한평생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고 편하게 생활합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외국에서는 시바리 존자 사리에 예배하면 복을 받는다고 시바리 존자 사리 참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리도 알아서 늘어나는 기적을 보인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각각 전생에 지은 업을 설명하기를, 리군지 비구는 전생에 불교를 후원하던 어머니를 굶겨 죽인 폐륜아기에 그 대가로 이 불행을 겪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시바라 비구는 전생에 비바시 불, 시기불, 비사라바불, 구루손불 네 분의 과거불께 모두 공양을 올리고 서원을 세운 선업 공덕으로 풍요를 누린다고 경전에 나오죠.
불교에서 아라한은 윤회를 벗어난 성자로서 존경받지만 그러한 아라한도 전생에 쌓은 공덕의 양에서 오는 대가는 아라한 본인의 신통력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이렇듯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신에서 찾은 게 아닌 바로 윤회와 업보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참 독특하다고 할 수 있죠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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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착한아저씨
24.04.27 · 114.♡.29.85
재밌네요. 전 무교지만 종교를 가지라면 불교가 맘에듭니다. -
비비글K
24.04.27 · 79.♡.165.242
사실 다른 의미의 지옥신앙이라 봅니다. 나쁘면 고생하고 , 사회에 잘 맞추면 행복하다...
딱히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요, 인간사회를 유지하는데 어느정도 필수적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
Aameba0
24.04.27 · 123.♡.39.51
다른 해석으로는 스스로가 신과 같이 되기 위해 (성불) 공덕을 쌓는 종교라는 이야기도 있죠. -
까까망꼬망
24.04.27 · 61.♡.86.109
리군지 비구가 자기랑 너무나 다른 시바라 비구를 보고 현타와서 "하아~ 시바라" 라고 해서 시바라 비구가 된건가욥 - 테
테세우스의뱃살
24.04.27 · 61.♡.190.185
거꾸로 보면 보편적인 고전 종교들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상을 설명할 방법이 증명 불가능한 언설말고는 없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기독교 계열의 악마 개념이 필요해진 것도 같은 이유로 생각합니다.
원래 종교의 기원이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을 마주함에서 오는 불안감을 감소시켜주기 위한 것이라면, 본분에 충실한 것이라고 봐야죠 -
바바세린
24.04.27 · 211.♡.204.250
원리는 같은 걸로 보이는데요.
한쪽은 현생의 계급적 구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고안물이고, 다른 한쪽은 미래(내세)에 생길지 모를 고통으로 겁을 줘서 현세의 질서에 순응하게 한다는 거죠.
현재 내 꼬라지가 그런 이유를 거북선 조타수에서 찾거나 지옥불의 고통이 두려워 내키지 않는 도덕을 실천한다거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거겠죠.
그래도 불교는 현실을 수용하는 마음수양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종교임은 인정합니다. - ㄴ
ㄴ회색깃털ㄱ
24.04.27 · 125.♡.178.61
불교가 착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던가요?
외려 인과에 따라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라고 가르칠텐데요.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으니 니가 잘생각해서 살아라에 가깝죠.
불교의 선업공덕은 단순히 착한 일이 아니라 해탈에 이르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을 말하는 거지 세간의 선한 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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