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영화 (124.♡.238.30)
2024년 4월 27일 PM 01:08 · 수정됨(18:16)
민희진 대표의 충격적인 기자회견을 보고,
이후 민희진과 하이브 사이의 여론전이 꽤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토릭>(수사학)에서 타인을 설득하고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설명하며,
설득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로 , 에토스(윤리), 파토스(감정), 로고스(논리)를 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통해,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설득을 시도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에토스
에토스는 신뢰도, 매력, 덕성 등의 도덕적 인격을 설득력의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발화자 자신 뿐 아니라, 인용하는 인물 나아가 청중의 도덕적 면모 역시 포함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발화자의 다양한 욕설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기자회견, 나아가 대중을 향한 발화의 역사에서 가장 다양하고, 자주 욕설을 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은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둬왔고, 그래서 전통의 강자인 SM의 이수만 전 대표의 인정은 물론, 다양한 투자자의 러브콜, 결정적으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성덕' 러브콜도 받은 대단히 능력 있는 프로듀서임을,
또한 업계의 관행과 관습을 타파하는 혁신적인 창작자임을 일화를 곁들여 어필했습니다.
또, 변호사가 말려도 거칠 것 없이 흥분해서 막말과 욕설을 담아 비판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상대방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과 박지원 대표에 대해서는, 개저씨, 개야비한, 무능력한 인물임을 뒤섞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대기업의 무능력하고 개야비한 개저씨들의 썩은 관습에 맞서 욕설이든 뭐든 거칠 것 없이 싸우는 대단히 능력있는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더 거칠게 표현하면, '개저씨들이 건드려서 이 구역의 짱 쎈 미친 년이 나선다!' 정도겠네요.
실제로 2시간 30여 분 인터뷰의 상당 시간이 회고나, 카카오톡 대화 캡처를 통해 이러한 구도의 에토스만을 표현하는데 사용됐습니다.
(이러한 에토스가 대중을 향한 직접 발화로 매체를 탄 것 자체로도 요상한데, 이 에토스의 설득이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도 매우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기자들은 역시 이러한 에토스에 열렬하게 반응했던 것도 예상가능하지만 놀라웠구요.
그리고 언제나 카르텔과 맞서 싸우는, 엄정한 법질서의 화신인 용산 누군가의 에토스도 떠올랐습니다.)
2. 파토스
파토스는 설득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고 하며, 그 이유는 감정이 사고와 행위를 매개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사고나 지식, 사실관계도 실제로 행위로 현실화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발화자 자신의 감정, 청중에게 자극하는 감정을 살펴보자면,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뉴진스 멤버들이 자신에게 공감하고 처지를 위로했다는 대목에서의 눈물 이었고,
초반을 길게 장식했던 수많은 플래시 세례, 경영권 탈취와 무당 친구에 대해 쏟아진 언플에 대한 불안과 공포도, 친구가 없고, 무당 친구에게 위로받아야 하는 외로움도 눈에 띄었지만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 감정은, 분노와 혐오 였습니다.
뉴진스 멤버 결성과 어도어의 설립, 뉴진스 데뷔시기의 홍보 등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분노를 담아 설명하고
뉴진스를 망치고 업계를 교란할 아일릿의 카피 논란, 무능력한 임원이 받은 인센티브 10억 등에 대해 혐오를 요청했습니다.
후술할 '일 잘하고 서로 사랑했던 부부의 사랑이 실패한 것이다'라는 로고스도 위의 감정들을 향해 연민과 공감을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불안과 공포, 눈물, 외로움, 분노와 혐오에 이은 연민과 공감
감정들을 죽 정리해 나열해보니, 격정적인 로맨스 영화의 감정선이 떠오르고, 주인공을 구원할 구원자의 자리에 청중들이 서주길 바란 것 같기도 합니다.
3. 로고스
로고스는 협의로는 발화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나 실증적인 자료, 논리성 등을 의미하나, 화자가 그 논리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그리고 청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포함한 인식과 사고체계를 말합니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발화자가 상대의 주장에 맞서 어떤 인식체계를, 즉 어떤 프레임을 설득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멀티 레이블에서의 레이블 간 조율에 맞서)
-오너가 손댄 카피 그룹과의 차별을 비롯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본사
(경영권 탈취 문건과 무당 친구와의 주요경영 상담, 인사청탁, 기밀 유출에 맞서)
-저런 본사를 향해 농담처럼 나눈 퇴사계획 및 사담
(18%의 지분을 연평균 영업이익의 13배-약 1000억-에서 30배로 늘리려는 협상에 맞서)
-가만히 있어도 1000억을 벌 수 있지만 부당함에 싸우고 있고, 인센티브는 20억이지만 적자 임원의 10억에 비해 공정하며, 평생 묶여 있어야 하는 경업금지 노예계약
(모회사와 자회사 대표이사 간의 계약 관계에 맞서)
-서로 일 잘하고 시작에선 사랑했던 부부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개인 간의 진흙탕 싸움을 담은 프레임으로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장시간 동안 벌어진 하이브와 어도어 대표 민희진의 이야기를 설득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자회견을 보는 동안에는 저렇게나 감정적이고 두서없는 기자회견을 어떻게 2시간 30여 분 동안 하는지, 왜 저러고 있는지 화자의 의도와 효과의 차원에서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어지럽고 두서없어 보이는 기자회견을 세 가지 수사학적 설득의 영역으로 나눠 살펴보니,
실로 다양한 요소들이 대단히 명확한 프레임과 스토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됐고,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필요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두서 없음과 흥분과 변호사분들의 제지까지도요)
개인적으론 하이브의 주장들 중에 일부라도 거짓이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론이 변하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 기자회견 이후 이 분쟁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꽤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합리적이든 불합리하든) 기업의 논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두려움과 분노의 파토스,
혁신적인 상품이 카피캣이나, 대기업의 횡포에 의해 꺾였던 분노와 연민의 파토스도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 같지만,
가장 강력했던 것은
다양한 비트를 깔고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
새벽 3시, 투다리 재질의 막말, 욕설의 사이다 에토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뉴진스의 열렬한 팬으로써
앞으로의 법적 공방과 여론전 속에서
뉴진스 멤버들이 최대한 덜 상처 입고, 입은 상처는 잘 치유해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써 훌륭하게 성장해나가길 바랍니다.
댓글 (32)
- 김
김말자
24.04.27 · 125.♡.247.65
고급 글 감사합니다 -
동동시영화
→ 김말자 작성자
24.04.27 · 124.♡.238.30
{emo:b.gif:50} -
아아달린
24.04.27 · 118.♡.132.139
치밀하게 계산된 프로파간다 같았습니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저게 통하겠어? 라는 대중에 대한 제 착각
혹은 물려있는 주식이 이 현상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네요. -
동동시영화
→ 아달린 작성자
24.04.27 · 124.♡.238.30
위 요소들이 다 계산된 치밀한 프로파간다 인지,
원래 본인이 가진 성격과 인식, 업계 20년차 마케터의 짬밥이 더해져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나온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중간 어디쯤일 것 같아요. -
CCrow
→ 아달린
24.04.27 · 49.♡.120.27
저게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라고 한번 더 깨달았습니다. -
주주색말고잡기
24.04.27 · 14.♡.74.148
이런 분석까지.. 엄청나네요. -
동동시영화
→ 주색말고잡기 작성자
24.04.27 · 124.♡.238.30
{emo:onion-002.gif:50} -
밤밤의테라스
24.04.27 · 121.♡.176.63
전 결과적으로 다르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레거시나 넷상의 여론은 그렇다 쳐도 결국 이건 자본주의 기업에서 돈이 걸린 싸움이며 결국 유튜브 채팅창이 아니라 법정에서 결론이 납니다. 변호사를 두명이나 대동하고 나와서, 하이브에 맞선 법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 변호사들 조차 열렬히 연예하다 결혼해서 싸움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들은 법적으론 이길 자신이 없나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사실상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갑론을박은 당연하겠지만, 결국 돈을 두고 벌어진 이번 싸움의 승자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고, 민희진씨는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결국 이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돈 싸움에서는 말이죠.
다만, 민희진씨가 이길 방법은 하나, 그가 재직 중에 습득하고 경험하고 보관중인 하이브의 기업내 정의롭지 못한 구석들을 까발릴까 하는 것에 대한 패가 하나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는 봅니다. 하이브가 삼성이 아닌 이상 그건 쉽지 않을꺼고요 -
간간접반증
→ 밤의테라스
24.04.27 · 184.♡.221.102
매우 동감합니다. 결국 법의 문법, 논리 대로 결정이되기 마련입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은 뉴진스의 편이 아니에요… -
동동시영화
→ 밤의테라스 작성자
24.04.27 · 124.♡.238.30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
원인은 뉴진스가 데뷔 ep 활동만으로 너무 빨리 매출액 1천억 규모를 찍어서 비롯된 독립 혹은 풋옵션 멀티플 비율 싸움이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진행될 사건의 결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의 레토릭이 앞으로의 법적 다툼에서는 거의 유리하지 않을 것 같고, 다만 본인이 강조하는 명예 약간과 이후 디렉터로써의 미래에는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