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징역살이(신영복)

Lv.1 지나친과음은윤두창 (223.♡.84.124)

2025년 7월 11일 PM 05:13 · 수정됨(18:17)

조회 3,343 공감 0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C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所行)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存在)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줄 알고 있으며,
머지 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 줄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認識)을
일깨워 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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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 츠린

    츠린 Lv.1

    25.07.11 · 121.♡.20.4

    독방이라 좀 아쉽네요..
  • 지나친과음은윤두창 Lv.1 → 츠린 작성자

    25.07.11 · 223.♡.84.124

    다른 재소자들도 인권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라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사람이랑 돼지를 합사하면 안 되잖아요
  • Java

    Java Lv.1 → 지나친과음은윤두창

    25.07.11 · 116.♡.70.94

    내란범들끼리 합사하죠.
    다른 방의 두배인원 갑시다.
  • 뜨뜻미지근 Lv.1

    25.07.11 · 223.♡.90.196

    정말 좋아하는 글입니다.
  • 지나친과음은윤두창 Lv.1 → 뜨뜻미지근 작성자

    25.07.11 · 223.♡.84.124

    저도 제 인격이 쪼그라 들었다 싶을 때 찾아서 읽는 글입니다
  • Silvercreek

    Silvercreek Lv.1

    25.07.11 · 211.♡.194.146

    글도 좋고 글씨도 좋습니다. ㅠ ㅠ
  • pontine

    pontine Lv.1

    25.07.11 · 220.♡.213.20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 싶습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 그렇췌이

    그렇췌이 Lv.1

    25.07.11 · 211.♡.17.134

    힘든 징역살이 중에 쓴 짧은 글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의 책을 사야겠습니다.
  • 잎과줄기

    잎과줄기 Lv.1

    25.07.11 · 118.♡.6.70

    신영복 선생님 글 중에서 이 대목이 특히나 좋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던 글.
  • 브래드베리

    브래드베리 Lv.1

    25.07.11 · 211.♡.199.3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대학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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