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지망생 (1.♡.106.175)
2025년 7월 22일 PM 05:15
🍂 개와 고양이만 사랑하면 위선인가요? – 조롱에 답하며
“개와 고양이는 소중하다고 하면서, 돼지고기는 잘도 처먹네.”
“동물권 주장할 거면 모기랑 파리도 죽이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명존중 외치면서 닭강정은 왜 먹냐?”
나는 이 말을 지금까지 수백 번, 아니 어쩌면 천 번도 넘게 들어왔다.
동물권, 생명윤리, 약자 보호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어김없이 따라붙는 조롱과 냉소.
그 말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질문이 아니다.
타인의 진심을 조롱하기 위한 도구,
누군가의 따뜻함을 찬물로 덮어씌우려는 반사적 비아냥일 뿐이다.
🐶 “개와 고양이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위선자라면,
개와 고양이마저도 무관심하게 대하거나 학대하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온전한 윤리를 실현하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택한 사람의 진심까지 부정해도 되는 걸까?
만약 어떤 사람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서도,
아직은 육식을 끊지 못하고 있다면 —
그건 위선이 아니라, 분열된 현실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덜 해롭게 살아가려는 양심의 흔들림이다.
윤리란 완벽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윤리는 방향이다.
100점이 아니면 0점으로 몰아가는 세상은,
결국 아무도 윤리를 실천하지 못하게 만든다.
🐷 “돼지는 먹으면서?”라고 비웃는 이들에게
한 생명을 아끼는 사람이,
모든 생명을 지금 당장 아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존재다.
어떤 이는 고양이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는 식탁 위의 고기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그 경계를 넓혀간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비건이고, 완벽하게 윤리적인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오늘보다 내일 더 따뜻해지고 싶다는 마음이다.
🦟 모기도 죽이지 말라는 논리의 오류
파리, 모기, 기생충, 바이러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고통과 병을 주는 생물체에 대응하는 것은
‘생명존중’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기보호’라는 더 근본적인 본능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는 다르다.
그들은 인간과 교감하고, 공존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인간의 정서와도 깊이 연결된 사회적 존재다.
모기와 고양이를 동일 선상에 놓고 조롱하는 태도는
결국 **“그래서 아무도 아끼지 말자”**는
감정의 철폐 선언에 불과하다.
그건 윤리적 균형이 아니라, 공감의 포기다.
🧭 '공정'과 '평등'은 그런 게 아닙니다
“왜 고기 먹는 사람은 비난 안 하면서 개만 유별나게 감싸냐?”
“진짜 공정하려면 똑같이 대해라.”
정말 공정하려면,
모든 생명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가능한 한 덜 고통을 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평등하게 착취하자’는 말은
‘선택적으로 연민하지 말자’는 명분을 빌려
연민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시도다.
진짜 평등은
누구에게도 고통을 정당화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 한 생명이라도, 덜 아프게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는 고기를 먹고,
모기도 때려잡고,
고양이는 껴안는다.
하지만 그 모든 모순 속에서도
나는 덜 해롭게, 더 따뜻하게 살고 싶다.
그게 위선이라면,
세상은 위선으로 조금씩 나아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처음엔 한 생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윤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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