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아재 (112.♡.175.67)
2025년 7월 26일 PM 10:38
아주 옛날 1987년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한풀이춤을 췄던 이애주 서울대 교수를 기억하시나요? 하얀 무명 한복을 입고 춤을 추던 그의 모습을 당시 고3이었던 저는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굉장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이 교수님은 백기완 선생님과도 인연이 깊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민중예술 춤꾼 하면 떠오르는 이가 바로 이애주 교수님인데, 이 분이 그냥 한국무용 춤꾼이 아니라 한성준 선생과 그의 손녀였던 한영숙 선생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승무 예능 보유자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승무는 바로 홍성 태생의 한성준 선생이 과거 춤을 정리하고 가다듬어 만든 것입니다. 한성준 선생은 승무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무용 대부분을 정립한 우리나라 근대 춤의 거두입니다.
살아생전 이애주 교수님은 이러한 한성준 선생을 기리는 작업을 홍성에서 해왔습니다. 한성준 선생의 묘소를 만들고 한성준 춤학교를 운영했죠. 그렇게 하나둘씩 홍성에서 한성준 선생을 기리고 자신의 춤 인생을 정리하고 후대에게 계승하기 위한 작업을 하다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선생의 후예들은 스승의 뜻을 기려 과천에 있던 이애주문화재단을 아예 홍성으로 최근 이전을 했습니다. 이애주 춤 전수관도 아예 홍성으로 자리를 옮겼구요. (이애주문화재단 이사장이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입니다)
오늘 이를 기념해 충남도청 문예회관에서 이애주문화재단의 <법열곡> 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랑 아는 분이 한성준 선생의 업적을 발굴하고 기리는 작업을 해오셔서 반가운 마음에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최근 부쩍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도 함께 했습니다. 공연을 보고나서 느낀 점이 있다면 홍성에서 이렇게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이런 공연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습니다. 홍성의 한국 춤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이애주 선생의 뜻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연 내용은 일반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절에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는 천도재, 그중 가장 최상급인 영산재 일부와 영산재 내용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한성준 선생에 의해 민간에게 계승되어 온 승무를 결합한 공연이었습니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고 해탈과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내용으로 바라춤, 법고춤, 승무가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공연을 장엄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백과 품위가 넘치는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공연을 불교, 특히 조계종 관련 사찰에서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0년 전부터 조계종도 영산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나 3000배로 유명한 해인사 성철스님이 천도재, 영산재를 금한 이후 조계종에서 이런 공연은 금기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우리나라 불교는 큰 내홍을 겪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찰마다 자리를 잡은 대처승을 몰아내는 불교정화운동이 있었고 폭력을 포함한 많은 마찰 속에 조계종과 태고종으로 불교계는 갈리게 되었죠. 불교정화운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서 성철스님은 조계종 사찰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새로 정했습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존 한국불교 승려들이 걸쳤던 화려한 비단 홍가사를 못입게 하고 무명 황토빛 가사를 두르게 한 게 첫번째요, 두번째는 절집의 가장 큰 수입원인 천도재, 영산재를 금지시킨 일이었습니다. 수행을 해야 할 절들이 제사를 지내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예전 큰절 스님들은 대부분 다 영산재 춤과 법고를 다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요. 제가 알던 스님께서도 상세히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성철스님이 무서워 다들 접었다고 웃으셨어요.
이렇게 성철스님부터 기존 불교와 현대 불교가 갈리게 된 겁니다. 성철스님은 그밖에도 스님들의 탁발(동냥질)을 금지시켰습니다. 사실 이게 큰 논란거리였죠. 석가모니 붓다도 매일 탁발을 해서 끼니를 때웠는데 성철스님이 이를 금지시켰으니까요. 때문에 아시아 불교계는 한국 불교를 이단시하기도 합니다.
오늘 공연에 나온 스님들은 모두 홍가사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태고종은 아직도 홍가사를 두르고 영산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태고종이 이어온 영산재 중 바라춤과 법고춤이 1,2부를 구성하고 3부는 한성준 선생이 집대성하고 한영숙-이애주로 대를 잇는 승무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승무는 영산재 중 일부이지만 지금은 거의 독자적인 예술 장르가 되었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승무도 영산재의 일부였던 만큼 오늘 공연은 그냥 영산재로 불러도 무방합니다. 영산재에는 오늘 공연 외에 몇 가지가 추가되는데 스님의 법문과 스님들의 독경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바로 회심곡 공연입니다. 김영임 씨(희극인 이상해 씨의 부인)가 불러 유명한 회심곡은 원래 영산재 공연 내용 중 하나이자 소위 클라이막스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전통예술에 불교 행사의 흔적이 참 많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홍성에서 이런 공연을 보기란 좀체 힘든 일입니다. 영산재는 춤과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실제로 스님들이 독경을 하는 등 여러 예술 장르와 불교의 재의식이 종합되어야 하기에 일상적으로 하기 어려운 공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멋진 공연을 본 저도 만족스럽고 아내도 무척 만족스러워 합니다. 공연하신 분들, 준비하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0)
-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