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사에 또 한 획이 그어졌습니다.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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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일 PM 07:16 · 수정됨(08. 0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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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의원의 민주당 대표 당선을 축하합니다.

그의 말대로 정치 입문 이후 나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근대사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대표가 되었네요.


열린우리당 시절,

우리는 근대사 최초로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선출되는 걸 경험했죠.

노대통령은 민주당, 열린우리당 모두에서 비주류였기에,

애초 그의 의도대로 당대표가 선출될 여지도 없긴 했죠.


국힘 계열은 탄핵으로 정권을 넘길 때까지도,

여당시절엔 대통령이 사실상 당대표를 임명하는 것과

진배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심지어 야당에서 여당이 되자마자 당대표였던 이준석을

몰상식한 방식으로 쫓아냈고,

당대표 후보들을 억지로 주저 앉히며 거수기 당대표를

만든 당이죠. 김기현, 한동훈 모두 윤석열, 아니 사실상

김건희가 낙점한 인물들이었을 정도니까요.


참여정부 이래,

민주당 대통령들은 당대표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왔죠.

다만, 전통적으로 대의원 입김이 쎈 정당답게,

그간 모든 당대표들은 대의원 지지에서 사실상 1등 한

후보였습니다. 


정청래 대표는 한국 근대 정치사에서,

여당 대의원 득표에서 1위를 못했음에도 너끈하게

당선된 최초의 당대표가 되었습니다.

민주당의 주인이 명실상부하게 당원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정청래를 딱히 지지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정치노선으로 보면, 정청래보다는 유시민과 더

가까웠고, 지금도 유시민이 자유인의 삶 대신 공직을

맡아줬으면 하고 바랍니다만,

정치적으로만 보면,

정청래가 유시민에 비해 더 큰 성공과 성과를 거뒀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둘은 그닥 사이가 안 좋은 편이죠.

운동권에서도 지도부였고,

핵심 브레인중 한 명이었던 유시민에 비해,

정청래는 총학생회장 출신도 아니고,

운동권 주류라고 보기 어려운 인물이죠.


두 분 모두 본격 정치 입문은 노무현 후보를 돕는

과정에서 하게 됩니다.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내 후단협에 휘둘릴 때,

그를 돕겠다고 재야의 비주류(?)들이 나섰는데,

그 때 유시민, 정청래 모두 본격 정치에 뛰어듭니다.


유시민이 노대통령 당선후 개혁당몫으로 먼저 의원이

되었고, 탄핵이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정청래도

당선되며, 같은 당 동료의원이 됩니다만,

개혁당의 창당, 열린우리당으로의 합류 과정 등에서,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리고 그 갈등은 열린우리당에서 당비내는 당원중심

정당으로의 개혁이라는 목표점은 동일하나,

그 수단으로 참정연과 국참이라는 다른 조직의 핵심으로

둘이 자리매김하면서 극대화됩니다.


유시민, 정청래 모두 국회의원이 대의원을 장악하고,

대의원이 당을 장악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 투쟁했지만,

정청래가 참여한 국참은 유시민의 진성당원 중심 정당

건설노력이 대중적 인기가 높은 유시민이 여당을 접수

하기 위한 목적이라 판단하고, 유시민에 대한 당내

린치를 방관을 넘어 동조하기도 합니다.

유시민에게 당내 분란을 만드는 분열주의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도록 하는데 여당내 주류 기득권

세력과 함께 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유시민과 정청래 모두 당연히 상처를

입었습니다.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출당 당하자 당을

떠났고, 이런저런 정치적 선택이 모두 성공하지 못했죠.

늘 대중적 인기가 높았으나, 민주당의 주류 정치인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청래도 제법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유시민과 달리, 끝까지 민주당에 남았지만,

유시민 지지층과의 앙금도 있었고,

대의원 중심의 민주당내 입지도 굳건하지는 못했으며,

보수언론의 표적 공격과, 짜르의 막무가내 쳐내기로

두 차례 낙선, 낙천을 경험해야 하기도 했죠.


그러나 정청래는,

유시민 개인과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의 친노, 친문 노선은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원래 DJ가 유산으로 남긴 민주당은 오랜 민주화 투쟁

경험을 지닌 골수 당원이 주류인 대의원 중심

정당이었으나, 친노, 친문은 이를 거부하고 당원 중심

정당으로 가려고 한 세력들이었어요.

정청래는 친노와 친문이 수는 많아지고, 노선은

불분명해진 민주당에서 어느새 당원 주권주의의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호남 중심의 기성 민주당 세력이 문재인 대표를

흔들던 시기에 강력한 문재인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며,

유시민이 떠난 민주당에서 노무현, 문재인 지지셰력의

대표 주자중 하나로 발돋움합니다.


특정 인물보다는 당원 중심, 여론 중심 노선을

우선하는 정치노선은 자연스레 이재명 후보와

대표시절을 거치며 민주당원의 지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고,

오늘 이재명 대통령 집권후 첫 민주당 대표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된 결과로 이어졌네요.


세상사,

참 새옹지마입니다.


당원중심 정당 건설이라는 같은 목표를 내 걸었던

유시민, 정청래의 여정은 오늘로써,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정청래가 더 큰 성공을

거둔 결과로 나타났네요.


노무현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둘의

운명.

참 인생사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댓글 (6)

  • OneMore

    OneMore Lv.1

    25.08.02 · 118.♡.15.113

    정리 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분의 앙금이 잘 해소되면 좋겠네요
  • 호기심

    호기심 Lv.1 → OneMore 작성자

    25.08.02 · 58.♡.66.208

    유시민은 더이상 정치인이 아니고, 정치도 안할
    예정이니, 굳이 둘이 화해할 일도, 새로 다툴 일도
    없겠죠.
    유시민이 거절하지 않았다면,
    국무총리와 여당 당대표로 만나게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유시민은 시민으로서의 행복을,
    정청래는 정치인으로서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사실 둘은 또 김어준 총수와는 다 친하죠.
    묘한 관계에요.ㅎㅎ
  • 호기심

    호기심 Lv.1 → OneMore 작성자

    03.19 · 211.♡.206.118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힘들 것 같던 둘의 화해가,

    조국혁신딩과의 합당과, 검찰개혁 파동을 거치며,

    이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지네요.

  • 그린파파야123 Lv.1

    25.08.02 · 115.♡.63.46

    노무현.문재인.이재명 세분은 모두 비주류에서 당원들이 당대표와 대통령후보로 밀어 올렸어요.
    이번 신임 당대표도 비주류에 계파도 없었으나 당원들이 대표로 선택했습니다.

    앞으로 민주당에서 당대표 하려는 분들은 계파를 만들거나 단체 행동하면 당원들의 지지받기 어려울 거 같아요. 이러다 전통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귀찮아서 Lv.1

    25.08.02 · 211.♡.140.19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에렌델

    에렌델 Lv.1

    25.08.03 · 118.♡.14.2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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