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소설가 김훈
세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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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3일 PM 08:10 · 수정됨(08. 1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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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설가 김훈이 2019년 6월 조X일보에 올린 글입니다. 

​굳이 그곳까지 가서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링크도 남기지 않습니다.



< 김훈 > 望八(팔십을 바라 보게)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졌다. 

10년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었다.

 '냉각 완료' 되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 분이 한 되 반 정도였다. 

직원이 뼛가루를 봉투에 담아서 유족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목에 걸고 돌아갔다. 

원통하게 비명 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는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청소년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喪)입니다"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다. 

그날 세 살 난 아기가 소각되었다. 종이로 만든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너 홉쯤 되었을 터이다.

뼛가루는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며서 안개 색깔이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였다.
아무런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체의 먼 흔적이나 그림자였다. 명사라기보다는 '흐린'이라는 형용사에 가까웠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 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있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었고, 
이 언어도단은 
인간 생명의 종말로서 합당하고 편안해 보였다.

죽으면 말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다.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남은 삶의 하중을 
버티어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하듯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들이지 말고 죽자,건강보험 재정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은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두자….

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 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드나들 때마다 조금씩 쇼핑백에 넣어서 끌어낸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은 버리기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뼛가루에게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유언을 하기는 쑥스럽지만 꼭 해야 한다면 아주 쉽고 일상적인 걸로 하고 싶다.

딸아, 잘생긴 건달 놈들을 조심해라.
아들아, 혀를 너무 빨리 놀리지 마라 이 정도면 어떨까 싶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광야를 달리는 말(!)'을 자칭했다.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돌면서 평생을 사셨는데, 
돌아가실 때 유언으로 미안허다. 를 남기셨다. 

한 생애가 4음절로 선명히 요약되었다.
더 이상 짧을 수는 없었다. 
후회와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것은 좋은 유언이 아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었고, 대책 없이 슬프고 
허허로워서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라는 시문을 남겼고,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에 물 줘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김용택의 어머니 박덕성 여사님한테서 직접 들었다. 몇 년 후에 김용택의 시골집에 가봤더니 그때까지도 연탄보일러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퇴계 선생님, 김용택의 아버지, 
이 세 분의 유언 중에서 나는 김용택 아버지의 유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유언은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김용택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인생의 당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래고 성실한 노동의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이국종처럼,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다 살았으므로 가야 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를 꽂아서 붙잡아 놓고서 못 가게 하는 의술은 무의미하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늘상 머리에 맴도는 주제는 아니지만 가끔 한 번씩 머릿속에 맴돌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주제가 있죠.

바로 '죽음'입니다.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의 죽음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죠.


아직 살 날이 많이 있다고 해도 결국에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맞이해야 하는 인생 최대의 과제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도 결국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로 통한다고 봅니다.



소설가 김훈이 조국 장관 가족에 대해 내뱉었던 망발로 그의 글을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의 소설과 추억을 내던지고 버린 일이 있었죠. 저도 그때의 일로 망언 며칠 전 샀던 하얼빈과 칼의 노래를 읽지 않고 한 번도 펴지 않은 채 책장에 두고 있습니다.


김훈의 망언은 잠시 분리한 채 그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옮겨 와 봤습니다.



댓글 (13)

  • 매직뮤직

    매직뮤직 Lv.1

    25.08.13 · 115.♡.176.173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비워야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정말 비워야 할까봅니다.

    ps. 본문이 두번 올라왔습니다. 수정되면 댓글도 수정하겠습니다.
  • 세상여행

    세상여행 Lv.1 → 매직뮤직 작성자

    25.08.13 · 175.♡.69.67

    크롬 버그인지, 게시판 버그인지 작성 중에 다른 탭을 잠시 다녀오면 복사해 온 내용이 한 번 더 붙여넣기 되더군요.
    굳이 수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YBman

    YBman Lv.1

    25.08.13 · 222.♡.12.61

    글 잘 읽었습니다. 40이 넘으나 삶과 죽음 가운데서 죽음 쪽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저도 조국사태때 김훈에 대해서 실망 많이 했는데, 그 실망을 넘어서 그의 글과 죽음에 대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생각들을 접하는 것이 짧지만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moho

    moho Lv.1

    25.08.13 · 211.♡.175.219

    본심을 알게 된 이후로는 모든 글이 그냥 글쟁이의 말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충무공, 도마의 마음을 이야기 한다??? 흥…입니다…
  • 세상여행

    세상여행 Lv.1 → moho 작성자

    25.08.13 · 175.♡.69.67

    그의 글이 위선, 말장난일 수 있지만 김훈 그도 결국에는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한 사람이겠죠.
  • 댈러스베이징

    댈러스베이징 Lv.1

    25.08.13 · 49.♡.25.192

    옛날부터 김훈 작가 책을 즐겨 읽었는데,,,,

    그의 정치적 스탠스를 본 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싹다 던져 버렸읍니다.
  • kawarau

    kawarau Lv.1

    25.08.13 · 182.♡.83.92

    글 기술은 좋습니다만 그런 모습을 본후에는 좋게 와닿지 않습니다 여포같다는 생각이에요 무공은 뛰어나나 무엇을 위해서 칼을 쓸지 모르는 사람
  • L

    llaaff Lv.1

    25.08.13 · 112.♡.11.117

    그럴듯한 말로 끝까지 자기변명만 하고 있군요. 죽을날 가까워 지니 욕심없는 늙은이 현명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보네요. 친일작가 서정주가 죽으면 맞아줄겁니다.
  • 소심이

    소심이 Lv.1

    25.08.13 · 121.♡.4.124

    자꾸 색안경을 끼고봐서 일수도 있는데... 저렇게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쓰면 뭔가 오는게 있어야하는데 원고료 때문에 쓰잘데기 없이 길게만 썼네 싶네요. 그것은 그의 글에서의 깨달음이 그냥 가벼운 감상 정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린 매체마저 역겨운 곳이라 더 그런거 같구요.
  • ACEugene

    ACEugene Lv.1

    25.08.13 · 219.♡.160.190

    이문열, 김훈 같은 작가들이 자신이 쓴 글보다 못한 정치적 식견을 갖거나 존경 받지 못하는 비루한 삶을 사는 이유는
    인생은 글=말이 아니라 행동, 실질적인 행위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진정 존경해야 할 사람은 글(말)만 번드르한 룸펜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을 가진 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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