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야사랑해

Lv.1 레오야사랑해 (118.♡.73.7)

2025년 8월 20일 AM 10:03 · 수정됨(11:18)

조회 1,642 공감 0

댓글 (9)

  • 그아이디가알고싶다

    그아이디가알고싶다 Lv.1

    25.08.20 · 50.♡.75.20

    교통수단의 속도를 생각하면 거의 기차나 차 안에서 시간을 다 보냈을 듯요.
  • 구소

    구소 Lv.1

    25.08.20 · 203.♡.186.18

    대구 -> 신의주 : 20시간.
    학생들 통제는 어떻게 했을까요?
  • 2082

    2082 Lv.1

    25.08.20 · 121.♡.149.247

    진심 부럽네요 수학여행을 만주로..
    지금은 불가능한 루트라서요
  • Gesserit

    Gesserit Lv.1

    25.08.20 · 125.♡.123.52

    일제강점기 때 고등학생이라면 같은 나이에서 공부나 재력으로 상위 몇 퍼센트에 드는 수준이죠. 그리고 아마 상당수는 일본인 자녀들이었을 겁니다. 대구에 일본인들이 꽤 살았으니, 고등학교 자체가 (조선인 입학이 허가된) 원래 일본인만 다니는 학교였을 수도 있고요.
  • pOOq

    pOOq Lv.1 → Gesserit

    25.08.20 · 111.♡.103.64

    일제강점기 조선인 고등학교 진학 상황
    일제강점기(1910~1945년) 조선에서 "고등학교"는 주로 고등보통학교를 의미하며, 이는 오늘날의 중등 교육(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기관이었다. 조선인들의 고등학교 진학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이는 일제의 차별적 교육 정책으로 인해 초등 교육조차 취학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진학 비율과 부모 소득 수준을 검색된 자료에 기반해 설명하겠다. 다만, 정확한 연도별 진학률 통계는 제한적이며, 학생 수와 경쟁률 등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조선인 고등학교 진학 비율
    전반적 배경: 일제강점기 조선인 중등 교육(고등보통학교 등)은 초등 교육(보통학교) 졸업 후 진학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초등 취학률 자체가 낮아(1943년 전체 43%, 남자 60% 수준), 중등 교육 진학은 더 어려웠다. 중등학교 입학 경쟁률은 평균 10:1, 명문 학교(예: 경성제1고보)는 40:1에 달해 "일본 대학 입학보다 조선 고등보통학교 입학이 10배 어렵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학생 수 기반 추정:

    1912년 조선인 중등 교육 학생 수는 2,597명에 불과했다.

    1942년에는 86,110명으로 증가했으나, 이는 전체 조선 인구(약 2,500만 명) 대비 극소수(약 0.3% 미만)였다. 같은 해 초등 교육 학생은 1,779,661명으로, 초등 졸업생 중 중등 진학 비율은 5% 미만으로 추정된다.

    고등 교육(대학 수준)은 더욱 희귀해 1942년 4,505명(조선인)에 그쳤으며, 연간 대학 입학자는 두 자리 수에 불과했다.

    비율 요약: 구체적인 진학률 통계는 없으나, 중등 교육 취학률은 전체 학령 아동 대비 1~3% 수준으로 보인다. 이는 일제의 우민화 정책으로 중등 학교 설립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진학자 부모의 소득 수준
    일반 조선인 소득 배경: 일제강점기 조선인 1인당 소득은 매우 낮았으며, 증가했다는 주장은 영양 공급량 감소 등으로 반박된다. 예를 들어, 1936년 1인당 식량 소비량은 1.435석으로 1928년(1.597석)보다 낮았고, 농가 경제는 공황으로 악화되었다. 소득 불평등도 높아 상위 계층에 집중되었다.

    진학자 부모 수준: 고등학교 진학은 주로 상위 소득 계층 자녀에게 가능했다. 중등 교육 입학난이 심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예: 친일파나 지주)가 자녀를 보낼 수 있었다. 소득세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자는 경기 지역(서울 포함)에 집중되었으며, 전체 소득 불평등이 높아 교육 기회도 불평등했다. 구체적 수치로는 1930년대 조선인 소득이 일본인 대비 낮았고, 농민 강제 저축 등으로 실질 소득이 하락했다.

    추가 맥락: 실업학교(중등 수준)에서도 조선인 비율은 12.8%에 불과해(1929년), 교육은 소수 엘리트 계층 중심이었다. 전체적으로 조선인 소득은 낮았으나, 고등학교 진학자 부모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상위 10%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

    저도 같은 생각이라 perplexity 에 물어 보니 역시군요.
  • 취미생활자

    취미생활자 Lv.1

    25.08.20 · 222.♡.32.74

    수학여행을 0시 34분에 출발한것도 신기하네요.

    평양-일본도 있네요.

    [https://s3.damoang.net/data/editor/2508/comment_3731365962_smQkizRv_24f6c3d3d4ae1b7d4d1c3ed56bdcf34d17925587.webp]

    망할놈들.. 가운데 야스쿠니도 있네요.
  • FV4030

    FV4030 Lv.1 → 취미생활자

    25.08.20 · 210.♡.27.130

    1937년 중일전쟁 시점이니깐 일제놈들의 심보를 알겠네요
  • 일리어스

    일리어스 Lv.1

    25.08.20 · 211.♡.22.139

    스케쥴로 봐서는 선양이 첫번째 목표지 같은데
    일정이 어마어마 하네요.

    1일차 20시간 이동후 취침
    2일차 일어나서 기차타고 7시간 가서 기차 갈아타고 한시간 더 가서 취침
    3일차 기차타고 1시간 가서 선양 도착 <------- 드디어 오후 일정
    4일차 다롄으로 기차 9시간
    5일차 왕복 3시간. 뤼순 일정 <-------- 아마도 두번째 일정?
    6일차 다롄 일정 <-------- 이동이 없는 세번째 일정
    7일차 이동 8시간 안산 에 3시간 체류 <-------- 이것도 일정이라 칠까요? 아님 환승 대기?
    8일차 이동 16시간
    9일차 이동 14시간
    10일차 도착


    10일 여행에 일정은 딱 3번 or 4번
    거의 대부분이 기차 안이네요 ㅎㅎㅎ
  • 달짝지근

    달짝지근 Lv.1

    25.08.20 · 49.♡.149.207

    엄청난 강행군이네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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