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썰] 왜 광복을 앞두고 한반도에서는 바르샤바처럼 봉기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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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V4030 (210.♡.27.130)
2025년 8월 20일 PM 04:58 · 수정됨(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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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기를 구하기도 힘들었고, 38선 이남에만 주둔한 일본군이 17만명을 넘었다는 게 미군의 조사 결과입니다.
바르샤바 봉기 때엔 독일 경찰 군인들 다 합쳐서 15,000~25,000명이었죠.
소련도 한반도 북부에 밀고 들어와서 일본군과 싸울 때 꽤 고생한 걸로 압니다. 위키피디아 상에서는 청진에서 벌어진 전투 사상자가 동수네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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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라
25.08.20 · 223.♡.7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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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V4030
→ 5호라 작성자
25.08.20 · 210.♡.27.130
그때 광복군은 한반도 진공 작전 준비 중이긴 했습니다. 아마 연합군이 국내로 밀고 들어온 게 훨씬 빨랐다면, 내부 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었겠죠. 소련군의 청진 상륙 작전이 45년 8/13~17일이었으니...
암튼 일본의 항복이 더 늦었거나 연합군의 한반도 내 작전이 더 빨랐으면 봉기가 일어나는 것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PPearlCadillac
25.08.20 · 118.♡.10.127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앨라모에서 핵실험이 실패하고 올림픽작전이 실행되고
광복군 한반도 침투 미국이 한반도에 무기를 조달했다면
봉기가 생겼을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근데 그전에 소련군이 한반도를 접수할수도 있었겠네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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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운형 선생 같은 지도자가 유혈사태 안터지게 미리 준비 잘하신것도 한몫 한거 같습니다
거기에 동학농민운동 정리된것도 얼마 안되서 그냥 들고 일어 나 봤자 죽는다는 것도 잘 알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