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몽 (112.♡.217.132)
2025년 8월 23일 PM 01:46 · 수정됨(08. 24. 11:54)
'문해력'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있더라고요...
가장 좁게는, 말을 알아 들으려면 낱말을 많이 알아야 할 테니 '어휘력'이 있을 테고요, 그 위에 '문장 이해 능력', '맥락 이해 능력'이 있고요,...
거기에 더해서 사회적인 능력 차원에서 '생각하는 힘'(사고력), 한 가지 사실, 문장에서 감추어진 것까지 유추해 내는 '추론 능력'이 있고, 적용, 활용 능력 면에서 '통합·활용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일반적으로는 '어휘력'과 '문장 이해 능력', '맥락 이해 능력'까지를 좁게 본 '문해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흔히 얘기되는 것을 보면 어떤 낱말의 뜻을 아는지 하는 '어휘력' 수준인 것 같고 그렇다면 굳이 이걸 '문해력'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어휘력'이라 하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어휘력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보기를 들어 '무운을 빈다'거나 '중식 제공' 같은 말에 대해 어떤 이는 문해력 탓을 하고 또 어떤 이는 '요즘 그런 말을 누가 쓰냐'고 항변합니다.
저는 둘다 어느 정도씩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고 흔히 쓰는 말 놔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못된 버릇이 오늘로 이어져 요즘은 서양말(주로 영어)을 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글날을 기리고 세종큰임금을 칭송하면서도 세종큰임금께서 훈민정을 만드신 애민정신, 평등정신, 민본정신은 이어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오늘 주제는 이건 아니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고...)
그럼에도 늘 쓰는 말이 아니더라도 특정 상황에서 쓰는 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요즘 누가 저런 말을 쓰냐'는 건 단지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이 한자말이건 영어나 서양말이건 쉬운 말을 놔 두고 잘난 체, 배운 체 하는 버릇은 고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놀라는 것은 '그 정도 말도 모르냐'라거나 '그런 말을 누가 쓰냐'는 것보다도, 왜 상황이나 문맥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낱말이나 표현이 있으면 적어도 '사전'조차 안 찾아 보냐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학생이 있는 집에는 거의 '국어사전'이 있었습니다.(그 때는 '민중 국어사전'이 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 밖에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도 꽤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의가 있는 집에는 도서관에나 있을 법한 (민중서림)'국어대사전'을 가진 집도 있었습니다. (민중서림)'국어대사전'은 정말 두껍습니다. 목에 베고 누우면 목 부러질 것 같은 두께입니다. 찾아 보니 '민중서림'이 아직도 살아 남아 있네요. 신기방기~ ^^;)

여튼, 지금은 사전을 가진 집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손에 컴퓨터를 가진 세상인데, 손가락 몇번 까딱하면 찾아볼 수 있는 걸 왜 안 찾아 보나 모르겠습니다.(그보다는 훨씬 손놀림이 현란한 게임은 잘도 하면서...)
이는 아마도 그 정도의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말글에 관심을 가진 저도 가끔 겪는 일인데, 요즘은 잘 안 쓰는 우리말을 찾아서 쓰거나 하면 어떻게든 딴죽을 거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려운, 안 쓰는 영어, 서양말을 썼는데 그 말뜻을 모른다고 물어보거나 뭐라 하는 사람 있을까요?(저는 아직은 그런 경우를 거의 못 봤습니다.)
지금도 커뮤니티에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어떤 물건이 우리나라 어느 가맹점 가게에서 파는 '벹남 바인미'(벹남식 바게뜨샌드위치로 흔히 '반미'라고도 합니다.)를 두고 '반미샌드위치? 이름이 재수없다'고 한 일이 있었는데 그 물건이야 워낙 이념적으로 편향돼서 그것조차도 '반미'(反美)라고 읽었을 수도 있겠으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아래 댓글들이 거의 전부 그에 동조하거나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댓글들을 달더라는 것입니다.(댓글들은, 너무 처참하기도 하고 길어져서 잘라 냈습니다.)

정신이 이상한 기업이 아니라면 샌드위치에 굳이 '반미'(反美)를 붙였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이가 왜 없으며, 그 꽤나 유명한 벹남 바인미를 몰랐다 치더라도 이상하면 한번 찾아보는 사람이 왜 없었을까, 잠깐만 찾아도 여행후기가 넘쳐나는데 왜 찾아보지도 않을까가 더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누구나 '확증편향'에 빠지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스마트폰에만 빠져 있고 AI가 대신 열심히 공부하는 단편만화가 떠오르네요.
인간이 점점 생각은 하지 않고 (단세포처럼)반응만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오늘의 결론 : 국어사전을 사자! 사기 싫으면 적어도 찾아 보기라도 하자. ^^;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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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안시기
25.08.23 · 121.♡.220.161
반지성주의라는 뭐같은 현상이죠. -
안안녕클리앙
25.08.23 · 203.♡.95.95
모르는 걸 들으면 알 생각을 해야 하는데
왜 알아듣도록 말을 안하냐며 화를 내죠
학교서 선생님들에게는 화 안나나 봐요?
왜 구구단을 넘어서는 어려운 분수를 말하는거냐?! 미분 적분 나는 모르는데 왜 어려운 거 쓰냐! 빼액! - 버
버미파더
25.08.23 · 2.♡.163.161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라는 게 문제 아닐까 싶어요. -
PPLA671
25.08.23 · 211.♡.143.11
스마트폰 시대가 되어 제일 좋았던 점이, 따로 전자사전 챙기지 않아도 국어부터 각종 외국어 사전 갖고(유료 앱) 다닐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
깨깨몽
→ PLA671 작성자
25.08.23 · 112.♡.217.132
문명의 이기가 그러라고(편리하게 살라고) 있는 건데, 오히려 그 핑계로 게으르게 사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 - 별
별단풍
25.08.23 · 112.♡.69.170
'쉽고 흔히 쓰는 말 놔 두고 굳이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못된 버릇' 라는 표현에 매우 공감합니다. - 강
강형진
→ 별단풍
25.08.23 · 122.♡.146.139
모든 말은 쓰임이 있기에 남은 것입니다. 쉬운 말을 두고 어려운 한자를 쓰는 버릇이란 어휘력 부족의 다른 말입니다.
예를 들면 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어로는 선 정 주 등 여러 단어가 있습니다.
이런 단어가 살아남은 이유는 차이가 있어서 입니다.
예를 달면 방주란 말이 있죠 노아의 방주 아시죠?
방주란 말은 배가 항해 능력이 없이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는 배를 이야기 합니다. 노아가 홍수를 피한 배는 그냥 비가 그칠 때까지 떠 있기만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냥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를 만들었다고 하면 노아가 배를 타고 이주를 했는지 그냥 있었는지 알 수 없죠.
https://youtu.be/3i0Y9l-gHNU?feature=shared
위 링크로 배에 대한 이야기를 시청해보시면 더 이해가 될 겁니다.
한자는 이미 한국어의 근간입니다. 많은 단어와 표현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단어와 표현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분열과 오해를 막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깨깨몽
→ 강형진 작성자
25.08.23 · 112.♡.217.132
딴죽을 걸려는 것이 아니고 '언어'에서 꽤 중요한 지점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겨 댓글을 답니다.(혹 제 댓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비슷한 논점으로 여러 사람들과 꽤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대체로 한자를 높이 치시는 분들이 '말에는 고유의 뜻이 있다', '한자 같은 말이 쓰이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관점을 가지는 편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자'와 같이 글자 자체가 뜻을 가지는 글자 체계에서는 꽤 맞는 말입니다만, 우리말처럼 말에 뜻을 담고 느낌을 담는 언어 체계에서 보자면, 글자 자체에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뜻을 글자에 담기 나름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딱히 어느 쪽이 틀리고 맞고가 아니라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말에서는 '글자 자체에 뜻이 있다'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한자 같은 경우에는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가진 것도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 썼습니다.('배'를 뜻하는데 구체적 내용에 따라 '선', '함, '박'... '집'을 뜻하는 데 구체적 내용에 따라 가, 택, 우, 주 등등...)
우리 말에도 그와 비슷한 쓰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말은 우리말의 특성을 살린 특징이 더 많고 더 핵심적이라 봅니다.(그 극단적인 보기가, 그 자체로는 아무 뜻이 없는 글자로 보태서 느낌을 담고 모양을 살리는 의성, 의태어라고 봅니다.)
요는, 우리 말은 우리말의 특성을 가지고 연구해야 제대로 깊이있게 핵심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저 역시 한자말 역시도 우리말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말의 중심, 핵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비슷한 보기로 지금처럼 영어가 우리말에 깊이 들어오고 그러다 보니 일부 영어식 표현이 우리말에도 들어왔기에 앞으로는 우리말을 연구할 때 그런 것도 연구해야 겠지만 우리말 체계가 영어화하기 전에는 그것이 핵심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자말이 우리말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인정을 하면서도 한자 혹은 한자말을 우리말 속에 당당히 한 영역으로 만들고 싶어하시는 분-조갑제 같은-들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우리말의 특성과 한자(옛 중국어 혹은 중국 한자)가 가진 특성이 너무 다르기에 그것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요점 정리 : 연구는 다양하게 해야 하지만 핵심은 정확히 틀어쥐어야 한다.(우리말 연구에서는 우리말 특성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 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별
별단풍
→ 강형진
25.08.24 · 112.♡.69.170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자어를 쓰는 버릇이 없었다면 더 쉽게 뜻을 알 수 있는 우리말이 쓰임을 갈음했을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깨깨몽
→ 별단풍 작성자
25.08.24 · 112.♡.217.132
이 관점도 꽤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자를 높게 치시는 분들은 말이란 것이 마치 창힐이 한자 만들 듯(물론 이것은 그냥 '썰'일 뿐입니다.) 정해져 오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말이란 것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오는 것이고 특히 우리말은 뜻에 앞서 느낌을 더 많이 담습니다.
한자말이 우리말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우리말 특성을 다채롭게 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자말의 꽤나 고정된 특성 때문에 오히려 변화무쌍한 우리말이 자유롭게 쓰이는 것을 방해한 면도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안타깝게도 그 영향은 지금도 꽤 여전합니다. 아마도 일본어가 발전하지 못하고 우리말이 더 많이 발전하지 못한 데에는 한자가 발목을 잡은 면이 크지 않나 합니다. 물론 일본어는 그 자체의 한계라는 측면도 큽니다만...)
'우리말 특성을 다채롭게 한 부분도 있었'던 것도 한자말을 중심에 놓고 보니 그런 것이지 순우리말을 중심에 놓고 보자면 우리말을 고정화시키고 변화를 막은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옛날에 한자말이 우리말에 끼쳤던 영향을 요즘은 영어가 대신하고 있으며, (중국어는 세계 속에서 중국의 위치 때문에 언어로서는 꽤 중요하지만)한자는 옛날보다는 그 영향력이 비할 바 없이 줄었고 더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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