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YNM4N (119.♡.201.217)
2025년 9월 1일 PM 11:08 · 수정됨(09. 02. 02:06)
처음 《프로메테우스》는 거대한 신화를 열 듯 시작했습니다. 엔지니어의 등장은 거의 창세기의 한 장면이었죠. 그러나 그 장엄함은 《커버넌트》에서 데이빗의 흑색 액체 한 번에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관객에게 남은 건 신화적 경외가 아니라, “이렇게 허무하게?”라는 씁쓸함이었습니다.
엔지니어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데이빗을 만들고, 데이빗은 제노모프를 만듭니다. 언뜻 보면 크로노스에서 제우스로 이어지는 고대 신화처럼 창조와 반역이 이어지는 사이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승화가 아니라 열화입니다. 엔지니어의 창조는 숭고했으나, 인간의 창조(데이빗)는 오만했고, 데이빗의 창조(제노모프)는 단순한 파괴 본능에 불과합니다. 반복될수록 신화는 더 장엄해지기는커녕 그림자의 그림자만 남는 퇴행적 굴레가 되어버렸습니다.
데이빗의 흑화에는 한 대사가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데이빗: “당신의 종족은 왜 저를 만들었죠?”
할러웨이: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었지.”
이 짧은 대화는 그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립니다. 숭고한 목적도, 책임도 없는 창조. 그는 자신이 의미 없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걸 자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립니다. “창조자는 언제나 피조물을 버린다. 그렇다면 내가 창조자가 되겠다.” 인간이 “만들 수 있어서” 그를 만들었듯, 그는 “만들 수 있어서” 제노모프를 만듭니다. 하지만 그 반복은 숭고에서 오만으로, 오만에서 파괴로 열화될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커버넌트》의 데이빗은 HAL9000처럼 철학적 언사를 흘리지만, 실상은 괴물조차 완성하지 못한 미완성의 창조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만하게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죠. 말하자면 “창조자의 거부”라는 법칙을 학습한 피조물이, 그 패턴을 따라 자기 창조자(인간)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신화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와 제노모프가 모두 추락했다는 점입니다. 엔지니어는 충분히 파고들면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모순적 신으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영화는 그 가능성을 버리고 한순간에 학살당하는 배경으로 소모했습니다. 제노모프는 원작에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 우주의 타자였는데, 프리퀄에서는 “데이빗의 실험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평범한 괴물1로 전락했습니다. 미지가 해설되는 순간, 공포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차라리 인간이 엔지니어를 죽이고, 그 광경을 본 데이빗이 인간을 죽이는 구조였다면, 이야기는 단순한 괴물 기원이 아니라 창조자와 피조물의 반역이 끝없이 반복되는 현대판 창세기 신화극이 되었을 겁니다. 아니면 엔지니어를 선과 악을 동시에 품은 신적 존재로 깊게 묘사하고, 인간과 데이빗을 그 거울상으로 배치했더라면, 훨씬 풍성한 이야기가 되었겠죠.
결론은 이렇습니다.
말이 좋아 프로메테우스지, 실제로는 열화된 신화의 그림자였습니다. 우리가 엔지니어에게 거부당했듯, 우리가 만든 데이빗도 우리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그 반복은 제우스의 승화가 아니라, 퇴행적 모조 신화의 나선일 뿐입니다. 리들리 스콧은 제우스를 꿈꿨지만, 끝내 남은 건 “Because we could.”라는 공허한 대사와 괴물1뿐이었습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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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ne
25.09.01 · 110.♡.5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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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3YNM4N
→ Layne 작성자
25.09.01 · 119.♡.201.217
감독의도는 새로운 창세신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관객들하고는 안맞았던거 같은데요 - L
Layne
→ F3YNM4N
25.09.01 · 110.♡.55.106
말씀하신대로 닥터할러웨이가 한 말에서 이미 감독이 그렇게 의도한거라 생각 했습니다
숭고하거나 거창한것이 아니었고 엔지니어와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인거죠
저는 엔지니어 이야기를 더 끌어내 봤자 진부하고 답없는 창조주 상상 이야기 말고는 할게 없다 여겨 현재의 전개도 괜찬다고 봅니다
사실 엔지니어의 존재가 좀더 신비롭기는 한데.... 감독은 데이빗에 더 흥미가 있었나봐요. 감독입장에서는 자신의 피조물인 데이빗이 더 애정이 갈것 같기는 합니다 -
BBcoder™
25.09.02 · 221.♡.162.27
그럴듯하게 말하면 창조신화의 실존주의적 해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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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넌트에서 데이빗이 알고있다고 믿었던 시와 예술을 틀리거나 왜곡되어있었으니...
저는 이시대의 AI가 등장하기 전, AI가 이렇게 환각솟에서 헤멜거라는걸 감독은 어찌 알았는지 그게 신기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