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시커 (211.♡.194.91)
2025년 9월 3일 AM 08:58 · 수정됨(09:31)
오래된 생각이 있습니다. 아직 '깨어있는' 시민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는.
미디어의 영역이 신문에서 유튜브 등 뉴미디어로 확장되면서, 여론조성의 역할도 비단 '기자'류의 특정 직업군에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민들의 정치 참여 저변도 함께 확대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나 쉽게 이데올로기를 접하고, 의식화하며 스스로 이데올로그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그'의 수준이 반드시 상향평준화 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이제는 더 이상 막걸리와 고무신에 내 표를 파는 수준의 매우 원초적인 정치의식을 우리 시민이 공유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성숙하였다'고 평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저는 '누가누가 이렇게 말했으니 사실은 그거다'는, 게시판을 횡행하는 논리에 갸우뚱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누가'가 주장했으니 '사실'이라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뭔가를 그 '누가누가'는 알고 있으니 '사실일거야'라는 건가요? 전자라면, '누가누가'가 주장하면 '사실'이라는 명제는 어떻게 성립할까요? 후자라면 '사실일거야'는 추정이지, '사실'은 아니잖아요?
이걸 '나는 민주당을 지지하니 진보야', '나는 국민의힘을 지지하니 보수야'라는 문장으로 치환하면 대번에 좀 이상한 느낌을 받으실겁니다. 다뫙에는 민주당을 지지하시는 분이 많으니,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나는 진보인가? 저만해도 아니거든요. 진보냐 보수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인데, 그걸 과연 지지하는 정당으로 편가르듯이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기왕에야 정치적 이데올로그가 되어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입장이 된다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누가누가' 주장한다는 식의 권위를 빌어다가 자기의 보잘것 없는 주장을 합리화할게 아니라요. 어제자 조국 대표의 검찰개혁에 대한 발언이나, 이동형의 주장을 문자만 그대로 옮겨다가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글들을 여럿 보고 글을 남겨봅니다. 좋은 담론이 많이 생산되는 것과는 별개로, 수용자로서의 우리도 그 담론을 비평할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깨어있는 시민'을 제목에서 언급한건... 가끔 다들 '깨어있는 시민'을 언급하시는데, 노 대통령이 말씀하신 그 '깨어있는 시민'은 단순히 '2찍이 아닌 시민'을 언급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찍'으로 대변되는 권위와 불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회기득권으로서 이미 다져놓은 수많은 담론들을 깨부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담론에 '왜?'라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노사모와 knowhow의 공론장이 한국 정치역사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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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막여우
25.09.03 · 223.♡.192.16
- 클
클라시커
→ 사막여우 작성자
25.09.03 · 211.♡.194.91
어제 남천동에서 헬마가 ‘당성을 가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 좋은 평가기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의 역경은 당성을 얼마나 가졌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ㅎ -
사사막여우
→ 클라시커
25.09.03 · 223.♡.192.185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거부하는 세력에 맞서는 정치인이 민주정치인이죠.
그게 민주당정체성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재벌,언론,극우사이비종교단체 등이죠.
굥정권이나 국짐에 맞서는 민주당 정치인은 많아도
재벌,언론,극우사이비종교단체에 맞서는 정치인은
민주당에서도 극소수죠.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정치의 연속이죠.
그래서
누구나 거짓말을 하죠.
따라서 민주주의는 셀프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김대중은 100%
문재인은 99%
이재명은 80%
조국은 70%
민주당은 50% 신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