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년 전 일본인들이 정부에 시위한 이유
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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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7일 PM 05:10 · 수정됨(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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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에도 막부는 에도 한복판 니혼바시에 유곽(사창가)가 있어서 거슬리자

그걸 지금의 요시와라(현 다이토구 이리야역 근처)로 이전시키려 했습니다.


그러자 막부가 유곽을 없애버리려 한다고 헛소문이 돌면서 

유곽에 종사하던 야쿠자, 기둥서방, 그리고 이용자(...)들이 대규모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규모가 에도 막부 최대 민란으로 불리는 시마바라의 난과 비견될 지경이라

(당시 막부군은 시마바라 성의 4만명의 키리시탄 잡으려고 12만 대군을 동원함...)

이후 유곽을 시마바라라는 은어로 부르는 게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뭐 시마바라란 말이 그 뜻도 있고 마침 교토에도 시마바라 유곽이라고 았기도 해서지만요.

조선,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본의 그 변태스러움을 심심하면 깠다고 합니다.

댓글 (2)

  • 프로귀찮러

    프로귀찮러 Lv.1

    25.09.07 · 125.♡.74.84

    뉴스에서 타친보가 난리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일본문화였구나 생각이 드네요..정말;;;;도리도리
  • Bursar

    Bursar Lv.1

    25.09.07 · 223.♡.51.242

    당시 에도 막부는 에도 한복판 니혼바시에 유곽(사창가)가 있어서 거슬리자 그걸 지금의 요시와라(현 다이토구 이리야역 근처)로 이전시키려 했습니다.
    -> 현대인인 제가 보기에도 사창가를 없애는 정책으로 보이는데요.

    지금과 달리 그 때는 전화 같은 것도 없으니, 그냥 옮겨버리면 구매자에게 전달되는 정보부족으로 매출(?) 하락은 훨씬 심하게 오게 되는 것이구요. 사창가 종사자들이 지낼 숙소/식당/교통 등 제반 여건이 없는 상황 될것이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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