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야구] 구대성, 김홍집, 이상훈...
RanomA

Lv.1 RanomA (125.♡.92.52)

2025년 9월 9일 PM 09:59

조회 463 공감 0

1992년에 고등학생이던 저는, 하라는 공부는 하는데 전년도 가을에 한일 슈퍼게임 보면서 주간야구를 매주 사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스포츠 신문에서는 단신으로 취급되던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지식도 조금은 더 늘었는데요...

그 당시 대학야구에서는 저 좌완 3인방이 졸업반인지라 얘기거리가 풍성했었죠. 주간야구에는 하일성씨가 매주 한 명의 사람과 대담을 했는데, 이 3인방과 릴레이식으로 대담했을 정도로 3명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당시 No.1은 누가 뭐래도 150Km/h 를 넘는 묵직한 구위에다 두둑한 베짱과 경기 운영능력을 갖췄던 구대성이었습니다. 대전고 3학년 때부터 한양대 2학년 때까지의 구위는 그야말로 최절정이었는데다 대학교와 대표팀에서 1년 선배 정민태와 원투 펀치를 이뤄서 최강 팀으로 군림했죠. 다만...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혹사의 여파로 인해서 예전 같은 구위가 나오지 않아서 좀 고생했었죠.

No. 2로 꼽히는 건, 구위는 구대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제구력과 안정적인 운영 능력의 김홍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훈은 구위는 좋은데 저 둘에 비해서 거칠다라는 평을 들었죠.

그런데 1992년 봄철 대회 때 이상훈이 성균관 대학교를 상대로 해 연속 14K를 잡아내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일약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구대성이나 김홍집은 연고지가 대전과 인천인지라 일찌감치 빙그레와 태평양으로 결정됐으나, 이상훈은 LG와 두산이 주사위 던지기까지 해서 결국 LG 유니폼을 입었고, 덕분에 계약금이 둘을 앞서게 됐죠.

프로 데뷔 후에 이상훈이 먼저 치고 나가면서 94년, 95년 다승 1위에 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까지 됐었고, 구대성은 94년부터 팀의 중무리를 하면서 구위를 뽐내기 시작하더니 (94년 준플옵에서 해태 타자들에게 크로스파이어를 던질 때가 인상깊었죠) 96년에는 그야말로 중무리는 이런 거다...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으로 MVP를 따고 이후로도 그 명성다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에 비해 김홍집은 어깨 부상이 발목을 잡아 아마추어 때의 명성에 비해 성적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나저나 이 1992년 가을 무렵, KBO 한국시리즈가 시작되기 직전의 추계리그 대회, 그리고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의 선수권 대회 2개 대회를 제패한 건국대 팀이 있었는데요, 이 팀의 졸업반에 3루수 추성건, 2루수 송태일, 그리고 유격수에 이종범이 있었습니다.

고려대의 마해영은 상무에 가서 병역을 먼저 해결하느라 1995년에 프로 데뷔하는 바람에 종종 이들과 동기였다는 걸 기억못하네요. 한국시리즈에서 선동열과 맞대결을 펼쳤던 박충식도 이들과 동기였고요.

댓글 (0)

  •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