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정거장 (211.♡.63.51)
2025년 9월 13일 AM 10:02 · 수정됨(10:37)
요새 네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많을텐데요.
네팔은 불과 17년 전까지만 해도 왕정 체제였습니다.
1758년에 건국된 네팔 왕국이 있었죠.
오랫동안 이어진 왕가였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흐름에도 저항하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고 한 그런 왕가였죠.
1972년 즉위한 비렌드라 왕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국민들도 살피려 했고, 네팔 통치 체제에 대해 국민 투표도 했고, 여러 일이 있었지만 결국 입헌군주제도 받아들였죠.
비렌드라 왕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왕세자인 디펜드라가 있었죠.

디펜드라 왕자는 데비아니 라나라는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왕실에서는 둘 사이를 반대하죠.
왕비는 "디벤드라가 35살 이전에 결혼하면 네팔 왕이 죽는다"라는 예언을 믿었다고도 합니다.
무슨 이런 이유로 반대하냐, 할 수 있지만 그냥 이건 명분이고 실제는 라나의 가문 때문이었습니다.
라나의 가문은 무려 150년 동안 네팔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총리직을 세습했기 때문입니다.
겨우 라나의 지배에서 벗어난 왕가가 라나의 가문을 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아무튼 디펜드라 왕자는 이 일로 화가 좀 많이 났던것 같습니다.
2001년 6월 1일. 왕실에서는 연회가 열렸습니다.
왕가 일가와 친척까지 모인 평범한 연회였습니다.
디펜드라 왕자도 여기에 참석했지만 몸이 안 좋다면서 갑자기 자리를 빠져나갔습니다.
비렌드라 왕과 일족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비렌드라 왕은 여기서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되는데,
바로 경비병을 연회장 안이 아닌, 바깥에서 대기하게 한 것입니다.
그냥 가족끼리 편하게 식사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이게 네팔 역사를 바꾸게 되었죠.
집으로 돌아간 디펜드라는 마약을 잔뜩하고, 권총과 소총을 들고 연회장 안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그리고 문을 걸어잠그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친척들을 모두 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총을 쏜 디펜드라 왕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집니다.
경비병들이 연회장으로 들어왔을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왕을 비롯해 9명이 죽었고, 5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런 미친 패륜 범죄를 저지른 디펜드라는 왕의 부고로 인해 자동으로 왕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혼수상태라 큰 의미는 없었죠. 병원에 있다가 3일 후에 디펜드라도 죽게 됩니다.
네팔 왕실은 비렌드라 왕의 동생이자 디펜드라의 숙부인 갸넨드라가 가져갑니다.
갸넨드라는 마침 해외에 있어서 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펜드라가 죽자 자동으로 왕이 되죠.
갸넨드라가 사실 이 사건의 배후라는 음모론이 있었죠
이후 공화정으로 바뀐 이후에도 사건을 조사했지만 혐의점은 없었습니다.
갸넨드라의 악행을 숨겨준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갸넨드라를 좋아하는 네팔인이 없습니다.
갸넨드라 왕은 형과는 다르게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비상계엄(!!)도 하고 내란도 야기했죠. 급기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네팔 반군은 덕분에 국민적 지지를 얻고 수도로 진격했습니다.
결국 갸넨드라 왕은 항복했고, 국민 투표로 왕정이 폐지되어 네팔 왕조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재산도 물수되었죠.
지금도 아직 살아있는데 아직도 복위를 주장하며 재산도 돌려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네팔 왕국이 무너지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였다고 보지만 한 왕자의 미친짓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사건의 원인이었던 데비아니 라나는 디펜드라 왕자를 좋아한적이 없답니다.
디펜드라 왕자가 혼자 들이댄거라고...
댓글 (3)
- 아
아이러니스카이
25.09.13 · 221.♡.25.47
저 사건을 보면서,,,, 정말 개인사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병신짓이라고 생각들었고. 오히려 저런 자가 왕이 되느니 그냥 거기서 끝난게 다행 아닌가?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
DDAYWALKER
25.09.13 · 211.♡.68.226
좋든 싫든 새로운 역사는 완전히 바닥에서 시작하는게 깔끔할지도요. 물론 그 과정에서 피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만.
폭군을 끌어내리는데 반군이 아니라 고소와 수사와 재판을 거쳤으면 그 결과는 과연...? 싶습니다. - 디
디아미르
25.09.13 · 121.♡.223.185
이 사건은 라나가문이 과거의 영광을 위해 권력침탈 목적으로 계획된 범죄라는 의심이 많은 사건입니다.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이 사건을 폐륜사건으로만 바라보지만 과거 1846년 9월에 라나가문이 일으킨 코트 학살(Kot Massacre)이 있었습니다.
코트 학살(Kot Massacre) 사건은 바렌드라 왕자의 가족 몰살 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꽤 많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Kot_massacre
두사건의 유사점으로는
1. 왕실 내부의 갈등으로 촉발된 대규모 학살
2. 왕궁 안에서 발생한 비극
3. 권력 구조의 급격한 변화
4. 사건의 배후에 '라나가문'이 존재
라나 가문은 코트 학살로 권력의 중심이 되었지만 비렌드라 왕자 사건으로 권력을 얻지 못하고 공화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차이점이 있습니다.
네팔에서 라나가문의 영향력은 아직도 막강하지만 네팔 국민들은 라나가문을 매우 싫어하죠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