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04.♡.68.24)
2025년 9월 17일 AM 11:41 · 수정됨(14:00)

그건 바로 조선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거든요.
먼저 조선의 토지를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합법(정상인 언어로는 강탈이라고 한다)으로 확보한 후 광고를 냅니다.
교과서에도 실려서 너무나 유명한 광고...
조선은 기후와 풍토가 일본과 다름없고, 작물 종류와 재배 방법도 거의 같다. 단보당 수확은 보통 현미 2~3석이다. 토지 가격은 조선 총독부의 인가를 받은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단보당 70, 80엔에서 300엔이다. 일본에서 1단보를 살 수 있는 금액으로 조선에서는 7단보를 살 수 있다. 토지 가격은 앞으로 더욱 오를 것이다.
회사로부터 양도받은 토지는 대개 철도나 일본인 부락 부근이다. 이미 회사가 경작하던 토지이기 때문에 홋카이도나 사할린 같이 새로이 개간된 토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교통도 편리하고 수해와 한해 염려도 없다.
- 우방 협회, “자료 선집 동양 척식회사”
즉 조선의 조정과 농민에게서 빼앗은 땅을 헐값에 일본인에게 넘기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일본에서 가난하거나 땅을 가지고 싶어하는 하층민들이 조선으로 건너오게 되죠.
그리고 그 건너온 일본인들은 원주민인 조선 사람들을 소작인처럼 부리며 갑질을 하면서 두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먼저 하층민이던 일본인들을 조선으로 이주시켜 사회 불만을 줄이고 일본 내의 식량사정을 개선시킬 수 있죠. 당시 일본은 심심하면 하층민들이 잇키나 쌀폭동 등을 일으켰고 일본 열도 내부에서 식량 사정이 좋다고 할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이 일본인들이 마치 크리오요처럼 중산층에서 지배층을 형성해서 조선을 장악하므로 지배력이 강화되고 설령 조선이 독립해도 기득권이 된 일본인과 거기에 부역하던 초선인들로 인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지금도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하듯 말입니다.
훗날 같은 방식으로 중국 동북지역을 침략한 후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을 저런식으로 또 보내서
중국인과 만주족, 몽골족 등을 간접지배 겸 이간질을 시도하기도 하죠.
댓글 (9)
-
FFV4030
25.09.17 · 210.♡.27.130
저러고 일제가 패망하자 저들이 일본에 돌아가서 3급시민 대우 받은 것도 코미디죠. -
노노르웨이고등어
→ FV4030
25.09.17 · 104.♡.45.123
사실 저기 간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이었을리가 없기도 하니까요. 일제는 일관되게 브라질, 대만, 조선, 만주 등 식민지로 자국의 이등식민을 내쫓고 싶어했습니다. 1950년대에도 변하지 않아 해방이 되자 재일교포를 어떻게든 내쫓고 싶어 북한의 재일교포 탄압을 뻔히 알면서도 적십자와 함께 적극적으로 북송을 홍보했고요. 저런 귀국 일본인들을 히키아게샤라 하는데 일제는 이들을 당연히 이등국민 취급했고, 살 곳이 없으니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에 살도록 합니다. 그게 나리타 공항 부지이고, 거기 살던 사람들을 내쫓으려 하니 일어난게 나리타 공항 반대 시위였죠. -
결결혼잘했네
→ 노르웨이고등어
25.09.17 · 59.♡.92.190
선생님 제가 참 궁금했던 건데요
남미에 왜 일본인 이민이 그렇게 많았는지 혹시 아시나요? 특히 브라질, 페루(심지어 일본인이 대통령이었던 시절도!) 에 많은것 같던데, 우리나라 개회기때 하와이나 멕시코로 간 선조들처럼 그런 역사가 있습니까? -
노노르웨이고등어
→ 결혼잘했네
25.09.17 · 104.♡.45.123
위의 히키아게샤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서민층들을 내쫓을 요량으로 이민을 장려한 것이죠. 한국의 경우 국가 단위에서 이민을 시킨 것은 아니고 이민자의 수도 그리 많지 않지만 일본은 그 수가 막대합니다. -
결결혼잘했네
→ 노르웨이고등어
25.09.17 · 59.♡.92.190
아 그렇군요...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노르웨이고등어
25.09.17 · 104.♡.45.123
1920년대 이후엔 농민 뿐 아니라 각종 대기업들도 적극 진출해 흥남비료, 반도호텔, 미쓰코시백화점 경성 등 민간의 대규모 건설도 이뤄졌죠. 하지만 해방 이후 이들은 미군정에 의해 불하되어 여러 적산기업이 되었고요. 미쓰코시 같은 굴지의 대기업은 식민지의 막대한 자산을 상실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조지야백화점 같은 작은 회사들 특히 식민지의 사업이 주이던 회사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조지야백화점은 가업으로 돌아가 아주 작은 수제 양복점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건물이 명동 미도파백화점이었죠.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롯데영프라자로 남아있습니다. -
BBigHeadAZ
25.09.17 · 1.♡.205.104
가진 재산을 버리기 싫어서 남은 토왜인들이 많았다고 하니.. 그 기득권이 지금 대한민국의 기득권이 아닌가 싶을정도입니다. -
감감정노동자
25.09.17 · 1.♡.170.113
저렇게 온 일본인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아서 조선인인 척하다가 지금은 한국사람인 척 한다는거군요. 친일파가 아니라 그냥 왜인들이군요. 욱일기 내다거는 사람들이나, 왜왕 생일잔치에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 이거나 후손이겠네요 - 서
서권기
25.09.17 · 121.♡.157.99
월산명박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