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nbetterlife (220.♡.37.28)
2025년 10월 8일 PM 03:57 · 수정됨(21:16)
▷전우용 : 개천절이 왜 10월 3일인가. 혹시 아세요?
원래 이게 1909년에 *대종교의 종교축일로 만들어졌어요. 10월 3일로 정한 이유는 개천절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흔히 알고 있듯이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날이 아니고 환웅이 하늘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날이라 개천절이거든요. 그런데 그 날짜를 특정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고대에는 10월 달에 제천 행사를 지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10월을 상달이라 그랬다 해서 일단 10월로 정하고 3일로 정한 이유는 이 대종교가 환인, 환웅, 단군의 3신을 모시는데다가 삼신할매라는 말처럼 우리가 전통적으로 신을 셋으로 나눠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10월 3일로 일단 정했어요. 음력 10월 3일이에요.
그리고 3.1운동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다음에 대종교도들이 대거 임서정부에 가담을 했어요. 그때 처음에 3.1절을 독립기념일로, 국경일로 정했더니 우리가 독립만 한 나라가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그 앞에도 하나가 필요하다 해서 그래서 개천절하고 3.1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한 국경일이에요. 해방되고 나서 제헌절과 광복절이 추가됐던 거고요. 그래서 그 정도는 좀 짚고 넘어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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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교란?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운동 | 대종교가 한국사에 끼친공헌
오영섭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을사늑약 이후 한국사의 발전과정을 단군과 연결시켜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단군을 민족시조와 건국시조로 내세우는 대종교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점에서 대종교는 을사늑약 이후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민족주의의 산물인 셈이다.
대종교는 1909년 1월 15일(음) 나철이 창시한 민족종교이다. 나철은 을사오적 처단활동을 벌였고 자신회라는계몽단체를 조직한 애국지사였다. 그는 한민족은 모두단군의 후손이므로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모셔야 한다고하였다. 또 대한제국 황제와 민족시조 단군 가운데 단군이 황제보다 존귀한 존재라고 보았다. 이로써 그는 단군혈연의식과 민족주의사상을 융합시킨 대종교적 민족사상을 창립하였다. 이러한 사상논리의 밑바닥에는 환인환웅-단군을 일체로 보는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단군관이 깔려 있었다.
나철의 대종교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1909년 10월 3일(음)에 단군 탄생과 한국 최초의 국가 건설을 축하하는 개천절 행사를 처음으로 열었다.
둘째, 국민통합의 상징적 수단으로서 단기(檀紀) 연호의 사용과정착화에 노력하였다.
셋째, 만주에 기원을 두었던 여러민족을 모두 한민족이라고 하는 새로운 민족관념을 만들었다.
넷째,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한 모든 민족을 배달겨레로 파악하려는 대단군주의를 제시하였다.
이로써 대종교는 단기 연호, 개천절, 반만년의 역사의식, 백두산신성관념, 단군숭배의식 등을 민족통합을 위한 근대적정치사상으로 제시하였다.
경술국치 전후에 독립운동가들은 대종교의 단군사상을 일종의 종교처럼 받아들였다. 이는 경술국치가 가져온 국가 멸망이라고 하는 엄청난 충격을 사상적으로 이겨내려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대종교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민족정체성의 원형인 단군신앙을 강조하고 포교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벌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개창 이후 대종교는 국내외에서 포교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개창된 지 1년 반 만에 수만 명의 신도를 얻자, 일제는 대종교에 대해 탄압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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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이후 대종교도들은 독립운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첫째, 임시정부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신규식은 독실한 대종교도였다. 그는 상해에서 여러 단체와 학교에 관여하며 대종교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 많은 애국청년들이대종교의 단군신앙과 개천절 의식을 받아들였다. 당시 개천절 행사는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모여 항일의지를 다지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임시정부가 환국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신규식 외에도 박은식, 박찬익, 조성환 등 저명한인사들이 대종교 신도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둘째, 대종교도들은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1919년 2월에 작성된 대한독립선언서는 대종교 이념이 반영된 것인데, 이때 39인의 선언자 중에는 대종교 신도들이 다수였다. 또 대종교는 중광단을 조직하여 북로군정서로 발전시킴으로써 무장독립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1920년 10월 화룡현에서 벌어진 청산리전투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전과이다. 이때 대종교 교주 서일은 청산리전투에 참여한 군단들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대종교 신자인 김좌진, 나중소, 이범석등이 군단을 거느리고 직접 일본군과 전투를 치러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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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대종교도들은 한국근대의 여러 종교 가운데 일제로부터 가장 혹심한 탄압을 받았다. 당시 일제는 단군신앙의 강조가 독립의지의 고취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고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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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죽음이 한국민의 항일의지를 집결시킨 촉매제가 되었지만, 그러나 교단의 지도부가 몰살당하는 참극은 한국근대 종교사에서 전무후무한일이었다.
출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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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섭 교수, 의암대상 수상자 선정
학술부문 한국독립운동사 업적
강원도와 의암류인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강원도민일보사가 주최·주관하는 의암대상은 의암 류인석 선생의 구국 정신을 기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애국·애족 정신을 후세에 전승하기 위해 지난 2000년 제정한 상으로,매년 학술·공로부문으로 나눠 각 한명씩 수상자를 선정,시상하고 있다.올해 공로부문은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오영섭 교수는 한말 의병운동,안중근 가문의 독립운동,고종황제의 국권수호운동,한말 순국·의열투쟁,이승만의 독립운동 등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 왔다.특히 류인석 선생의 활동과 사상을 깊이 연구해 ‘유림의병의 선도자 유인석’ 등 여러 논저를 출판하며 학술 연구에 이바지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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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은 대종교의 종교 축일에서 유래했고,
종교라기 보다는 을사늑약 이후 새롭게 등장한 근대적 민족주의에 가까워 보이네요.
"(일제 강점기)당시 개천절 행사는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모여 항일의지를 다지는 자리"
단군에서부터 한반도의 역사를 잇는 민족의 단결의식과 독립운동 의식을 고취했군요.
독립운동사에도 큰 공헌을 했고요.
그리고 일제에 의해 교단의 지도부가 몰살 당했다고 합니다.
개천절하고 3.1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한 국경일이고요.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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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상여행
25.10.08 · 175.♡.6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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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스란디르
→ 세상여행
25.10.08 · 210.♡.129.172
둘다 쉬죠 뭐. -
세세상여행
→ 미스란디르
25.10.08 · 175.♡.69.67
까짓거 국군의 날도 넣죠 뭐... -
Aaka개마
25.10.08 · 118.♡.4.230
대종교 -
돌돌궁댕이
25.10.08 · 39.♡.147.122
3 을 좋아하는 데는 오랜 역사가 있는 것이였군요. -
하하마
25.10.08 · 211.♡.82.102
모르던 대종교에 대한 지식을 얻어서 갑니다(__) -
GGamjadori
25.10.08 · 122.♡.135.144
학교다닐때 국사시간에서는 왜 그냥 하나의 종교정도로만 배웠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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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쉬는 날이 없는 것도 이유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