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io (175.♡.141.121)
2025년 10월 10일 AM 01:29
댓글 열심히 달고 있었는데요. -_-a
* 다시보니, 있네요....
건국전쟁2 포스터의 인물은 박진경으로,
4.3 당시에 제주도민 소개(학살)작전을 지휘한 군인입니다.
산간지역으로 도피한 저항군(당시엔 폭도라 부르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던 김익렬 연대장이,
조병욱에 의해 좌천된 후 연대장을 맡은 인물입니다.
박진경은, 제주도민 토벌작전 중에 부하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김익렬 연대장의 기록에 의하면,
암살에 가담한 부하군인들은 제주도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박진경을 사살한 후, 자신들의 '기독교도'로서의 죄를 인정하고 순순히 사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의 신문 기록에는,
부하군인들은 남로당 소속인 군인이었으며,
북의 지령을 받아서 암살에 가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존경받는 군인으로 알려진 김익렬 연대장도,
제주도민 학살-소개작전에 반대하던 때에, 조병욱에 의해 공산당으로 몰리기도 했으니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민을 학살하던 박진경의 추모탑이 제주도내에 있습니다.
그의 추모탑은 여러차례 인위적으로 훼손되고 철조망에 둘러 쌓어 흉물이 되었다가,
근래에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고 들었습니다.
'...박진경 연대장은 일제 때 오사카 외국어학교를 나와 영어에 능통해 미군과 잘 통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제 말기 일본군(소위)으로 제주도에 주둔한 바 있다.
일본군 출신인 그의 취임사는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였다. 그리고 그는 딘 장군의 명을 받아 강경토벌작전을 감행했다.
특히 그는 ‘양민과 폭도의 구별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무조건 연행했으며, 딘 장군은 이를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해 그를 대령으로 특진시켰다.
이 당시 무장대의 숫자는 5백여명에 불과했다.
6월 16일 쓰여진 미군의 비밀보고서는 박진경 대령의 진압작전 결과에 대해 “이 작전에서 약 3000여명이 체포되고 심사를 받았다”라고 적고 있다. 또 6월 12일자 조선일보는 ‘이 기간 동안 경비대와 경찰에 체포된 자가 약 6천여명에 이른다’고 보도할 정도로 그는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체포하는 등 강경일변도 작전을 펼치다 결국 그의 부하의 손에 암살당한다.'
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7592
출처 : 제주의소리(https://www.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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