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군인 우리 전투기 KF-21 탑승 순간! "애국심이 차오른다"[경남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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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ja7 (211.♡.163.13)
2025년 10월 10일 AM 11:07 · 수정됨(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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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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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도
25.10.10 · 123.♡.19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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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inja7
→ 포도 작성자
25.10.10 · 211.♡.163.13
1970년에 11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군인 경력의 최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1년 8월 실미도 사건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경질되었다.
->> 다음은 2006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나온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의 진술이다.
“실미도 부대가 공군 소속이었지만, 공군이 자체적으로 부대를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창설한 부대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공작원들의 신분은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71년 1월쯤 중정과 협의를 하도록 정래혁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는데, 장관은 ‘알았다, 연구해 보자’고만 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정 장관을 찾아갔지만 ‘선거철이라 바쁘니까 10월까지 기다려라, 그때 가서 해결해주겠다’고 답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 장관은 이후락 중정부장에게 실미도 부대 해체 안 등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대해 정 전 국방부 장관은 “김두만으로부터 실미도 부대 해체 등의 건의를 받은 적 없고, 김두만이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90730
달아주신 댓글의 정보가 나무 위키라 정보가 애매하긴하네요. -
디디누김
25.10.10 · 106.♡.160.72
저 인도네시아 깃발은 이제 지워도 되는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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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16일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났다.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촌이 있는 일본 교토부에서 자랐다. 소학교 시절 학교 위를 나는 비행기를 보고 파일럿을 꿈꾸기 시작했다. 1943년 일본 육군 소년비행학교에 입학해 쿠알라룸푸르 등에서 비행 훈련을 받았다. 당시 주로 탑승했던 기체는 Ki-27이었는데, 주로 급강하와 초저공 침투 훈련에만 치중했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 카미카제로 투입될 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캄보디아 왕국(괴뢰국)에서 일본의 패망을 목격했고, 베트남으로 옮겨져 프랑스군 관리 하 수용소에서 생활하다 1946년 귀국길에 올랐다.
귀국 후에는 한동안 매부네 일을 돕고 고물을 주우며 경제적, 언어적 문제로 고생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1948년 일본군 전투조종사의 대부 역할을 했던 김정렬의 권유로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한동안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이듬해 공군사관학교 설립 이전 임시 간부교육기관이었던 육군항공학교가 설립되자 1기로 입학했다. 임시소집 형태로 정규 사관학교는 아니었고 현재의 공군학사사관과 비슷한 제도였다. 김두만은 3개월 간의 훈련을 거쳐 소위로 임관했다. 6.25 전쟁 전까지 L-4, L-5를 타고 정찰을 담당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T-6, F-51 등을 몰고 출격했다. 전쟁 중 1952년 1월 11일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했으며 김신 등과 함께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도 참가했다.
전후에는 제1전투비행단에서 12전투비행대대장, 3교육비행대장, 작전처장, 1교육비행전대장 등을 맡았고 공군본부 인사국장, 제10전투비행단 단장,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2대 공군작전사령관, 공군사관학교장, 공군참모차장 등을 역임했다.
1970년에 11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군인 경력의 최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1년 8월 실미도 사건으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경질되었다.